저자 서문¶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中国电子竞技幕后史 自序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10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09949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관자》 권수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무를 기르는 데는 십 년이 걸리고, 사람을 기르는 데는 백 년이 걸린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 말은 인재를 기르는 일을 두고 한 것이지만, 시야를 조금 넓히면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국 e스포츠는 이미 십몇 년을 걸어왔고 규모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것이 문화로 쌓이는 일은 이제 막 시작이다. 이 이면사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 e스포츠가 지나온 처음 12년의 발전을 기록해 훗날의 연구에 참고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왜 중국 e스포츠 이면사인가?
이 시대에는 e스포츠 스타의 이름을 줄줄이 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 최초의 WCG 스타크래프트 2대2 세계 챔피언 마톈위안(马天元), 만리장성 챌린지 대회에서 처음으로 100만 위안 상금을 받은 멍양(孟阳), WCG 세계 대회 우승을 두 번 차지한 리샤오펑(李晓峰, WE.SKY), 도타 세계 챔피언 우성(伍声, 2009), 그리고 새로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챔피언에 오른 WE.Ruofeng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무대 뒤의 사람은 몇이나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몇 되지 않을 것이다. e스포츠란 이런 선수와 해설자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중국 e스포츠에는 무대 뒤의 사람이 너무 많고 무대 뒤의 이야기도 너무 많다. 그 대부분은 한 번도 대중 앞에 드러난 적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들 사이의 우정과 갈등, 함께 나눈 영광과 굴욕, 수없이 반복된 모색과 시도와 벽에 부딪힘이 있었기에 지금의 중국 e스포츠 구도가 만들어졌다.
판 밖에서 보면 e스포츠는 잔잔해 보인다. 그러나 판 안에서 보는 e스포츠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글은 우리 e스포츠 사람들 눈에 비친 e스포츠가 어떤 모습인지 알리려고 쓴 것이다.
자, 처음의 그 질문으로 돌아가자. e스포츠란 무엇인가?
예전에 국가체육총국이 아주 교조적인 정의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 정의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바이두 백과에 있다. 내가 이해하는 e스포츠를 말하겠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공정하게 승부를 가리는 과정, 그것이 e스포츠다.
e스포츠 종목이란 무엇인가?
공정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비디오 게임, 그것이 e스포츠 종목이다.
여기까지 읽고 욕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한 이 개념이 그들 마음속의 신성한 "e스포츠"를 모독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은 e스포츠가 될 수 없다,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리는 게임은 e스포츠가 될 수 없다, 정신적 아편과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이런 말이라면 지난 십몇 년 동안 더 험한 것까지 다 들어 봤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그런 욕은 모두 자기기만이고, 제자리에 머물며 밖을 보지 않는 태도이며, 많은 아이들이 게임하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쓰는 핑계다.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그 핑계를 써 봤기 때문이다. 나도 e스포츠를 내 방패로 삼았다. 우리 모두 속으로는 잘 알고 있고, 다만 아무도 입 밖에 내려 하지 않을 뿐이다.
2010년까지,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모두가 인정하는 중국의 e스포츠 종목은 사실 많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카운터 스트라이크, 워크래프트 3, 도타. 한 손으로 꼽힌다. 정말 이게 다냐고? 진정하고 계속 읽어 보시라.
트럼프 카드에 비유하면 이 넷은 조커에 해당한다. 관객층의 크기와 영향력의 깊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더 잘게 따지면 카운터 스트라이크 이전의 퀘이크(Quake) 시리즈, 델타 포스(Delta Force) 시리즈, 듀크 뉴켐(Duke Nukem) 시리즈가 있고, 그 뒤로는 크로스파이어(CrossFire)가 있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시기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문명이 있었고, FIFA와 위닝 일레븐, 니드 포 스피드도 있었으며, 심지어 킹 오브 파이터즈나 스트리트 파이터를 꼽는 사람도 있다. 앞서 내가 말한 기준, 곧 공정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은 e스포츠 종목이라는 기준을 따르면 이것들은 모두 e스포츠 종목이다. 다만 나는 이 종목들의 운이 나빴다고 본다. 왜 그렇게 말하는가?
세 가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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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태어났다. 1998년 이전 중국에서는 인터넷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1999년까지도 여섯 자리 이하의 QQ 번호를 신청할 수 있던 시절이다. 이 게임들에도 무대 뒤에서 판을 꾸리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활동 범위가 아주 좁았다. 집 옆 골목의 오락실이나 컴퓨터방을 제패하고 다른 동네로 도장 깨기를 하러 가는 정도였다. 컴퓨터방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중국 PC방의 전신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나도 그런 일을 해 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시대는 이 종목들에 공인된 e스포츠 종목이 될 만한 배경 조건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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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취향이었다. 이건 말하면 욕먹는 이유다. 게임 골수팬들은 자기가 하는 게임이 소수 취향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나 문명이 그렇다. 이 게임들의 골수팬은 자기 친구도 자기 주변 사람도 모두 이 게임을 하는 것으로 보이니 그런 느낌을 갖기 쉽다.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관객층의 크기는 상대적인 이야기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주변이 다 바둑을 두는 것 같고, 축구를 하는 사람은 주변이 다 축구를 하는 것 같다. 어느 쪽이 크고 어느 쪽이 작다고 하겠는가. 중국은 인구가 워낙 많아서 0.00몇 퍼센트만 되어도 적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건 비교의 문제일 뿐이다.
- 포지셔닝이 분명하지 않았다. 포지셔닝이 분명하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인가? 이건 상당히 복잡한 이유로, 우리가 경쟁 게임이라는 제품을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그리고 브랜드를 어떻게 만드는지와 얽혀 있다. 그 종목 자체가 애초에 e스포츠 쪽으로 자리를 잡지 않았거나 하려다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 실제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계속 다루겠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역사를 쓰려니 골치가 아팠다. 이 가운데 내가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종목도 있고, 그 종목의 무대 뒤 사람들이 직접 남긴 자료도 아주 적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망설임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고민하던 중에 오컴의 면도날 원칙이 떠올랐고 시야가 트였다. 나는 이 종목들을 일단 내려놓고 내가 직접 겪은 주선의 종목들을 먼저 끝내기로 했다. 나머지는 앞으로 천천히 채워 나가면 된다. 어쩌면 이 거친 첫 시도가 더 적임인 사람들을 끌어내 완성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e스포츠가 부딪힌 어려움과 장애물에 대해서.
중국 e스포츠의 발전이 더딘 것은 국가가 중시하지 않고 올림픽에 e스포츠 종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잘못 짚은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굳혀 온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운동선수는 국가가 길러야 하고, 어릴 때부터 가둬 놓고 훈련시켜, 자라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 나라를 빛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말 없는 양 떼와 같다. 어려서부터 길러지고, 털이 깎이고, 끝내는 먹힌다. 그러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는 체육 자체의 기원과 목적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전 국민의 체력 증진에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었다. 우리를 대신해 금메달을 따 올 특수부대 한 무리를 길러 내는 데 있지 않다. 그런 금메달은 우리의 신체 능력 수준을 대표하지도 못하고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미국의 금메달리스트는 중학교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완성된 기초 체육 교육의 사슬에서 나온다. 반면 우리 올림픽 선수의 양성 과정은 우리 중고등학교, 대학과 거의 다른 차원에 있다. 이래서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국민 체력을 어떻게 끌어올리겠는가.
1998년 중국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PC방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중국 e스포츠는 마침내 오락실과 컴퓨터방에서 걸어 나왔고, 대규모의 교류와 토론이 이뤄지는 장이 만들어졌다.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나는 이때를 중국 e스포츠의 진짜 시작으로 본다. 그리고 그때부터 국가가 e스포츠를 지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다.
다만 그 시절에는 우리 자신조차 e스포츠가 무엇인지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고, 국가와 정부의 눈에 우리는 여전히 게임하는 아이들 무리였다. 그래서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이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 e스포츠는 그때부터 제 힘으로 커 나가기 시작했다. 어려서 산에 버려진 스파르타 아이처럼 끈질기고 외롭게 길을 더듬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지 발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환경에서, 지난 십몇 년 동안 e스포츠는 중국 캠퍼스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널리 퍼진 놀이가 되었다. 돈이 적게 들고, 사양이 낮아도 되고, 조직하기 쉽고, 재미가 크다는 특성 덕분에 e스포츠는 한 시대의 기억이 되었다.
이로써 진짜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사슬이 완성되어 있으며, 보급률이 대단히 높은 체육 종목 하나가 중국 땅에 태어났다. 중국 e스포츠는 중국 대학 시장을 거의 통째로 쥐고 있었다.
이런 때에 올림픽에 e스포츠 종목이 생기기를 기대한다고? 국가가 자기들 방식으로 어린아이 때부터 올림픽 챔피언을 길러 내기 시작하기를 기대한다고?
e스포츠 자체가 신체 활동과 체력 소모를 중시하는 올림픽 종목의 원칙과 어긋난다는 점은 접어 두자. 시장경제 아래에서 태어나 잘 자라고 있는 것을 계획경제 체제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것 자체가 역사의 후퇴다.
그러나 e스포츠는 줄곧 돈이 되지 않았다. 금광 위에 앉아 있으면서 캘 줄을 모르는 이 어색한 상황은 2010년까지 이어졌다. 그 무렵 선수와 해설자들이 스스로 인기를 만들고 그 관심을 타오바오에서 수익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마침내 불안정한 광고와 후원에 기대지 않아도 되었고, 그제야 e스포츠는 스스로 피를 만드는 독자적인 모델을 실천으로 찾아냈다.
특히 짚어 둘 것은 이 모델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e스포츠 사람들이 계속 체면을 내려놓지 못해 많은 기회를 놓쳤다. 이 이야기도 뒤의 글에서 비중 있게 다루겠다.
광전총국이 무료 지상파 채널의 e스포츠 방송을 막은 것은 그들이 몰라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건 더 크게 틀렸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들은 게임과 e스포츠가 이용자를 얼마나 끌어당기는지, 그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다만 다른 계산이 있었을 뿐이다. 그 안에는 부처급의 권력 다툼이 얽혀 있었는데, 그 살벌함은 첩보전에 못지않았다.
시기로 보면 각 종목의 황금기는 이렇다.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워크래프트 3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도타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다. 대체로 5년 안팎이고, 대개 3년째가 정점이라 스타와 고수가 쏟아져 나온다. 4년째는 안정 속에 조금씩 내려가고, 5년째에는 하락이 빨라진다. 그 뒤로도 사라지지는 않고 다만 천천히 변두리로 밀려난다. 때와 조건과 사람이 맞아떨어진 e스포츠 게임이 중국에서 거치는 정상적인 생명 주기로, 내가 관찰한 결과가 그렇다.
이 글의 서술 방식은 되도록 가볍게 쓰려고 한다. 사람을 쓰는 것을 중심에 둔다.
마지막으로 먼저 사과해 둔다. 이 글은 분명히 많은 사람을 빠뜨릴 것이다. 중국 e스포츠의 무대 뒤에는 이름 없는 영웅이 너무 많고, 나조차 이야기만 들었을 뿐 만나 보지 못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되도록 두루 챙기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이 역사의 참여자라면 함께 빠진 부분을 채워 주기를 바란다. 우리 청춘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함께 완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