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WE 리그 오브 레전드 팀 주장, 뤄펑 Misaya¶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二 WE.LOL队长 若风Misaya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12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5952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2007년 어느 날, 뤄펑은 또 한 번 학업 문제로 부모와 다퉜다. 이번 다툼은 전보다 훨씬 격했다. 그는 혼자 집을 뛰쳐나가 멀리까지 달렸고, 긴 길 위를 걷고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셌다. 그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자기가 바람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롭고 거리낄 것이 없을 텐데. 그의 아이디 뤄펑(若风)은 여기서 나왔다. 바람 같다는 뜻이다.
시간을 5년 뒤로 돌리면, 2012년 10월 28일 중국에서 가장 이름난 e스포츠 클럽의 리그 오브 레전드 팀 주장 뤄펑은 팀 동료들과 함께 WEM 우승 시상대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담담했다. 경기 뒤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했고 팀 동료들과 함께 고쳐 나가 더 많은 우승과 명예를 얻겠다고 했다.
수없이 지고 다시 일어선 투사가 마침내 여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까지 그는 다른 e스포츠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몰이해와 고된 단련을 숱하게 겪었다.
반항¶
뤄펑은 1992년 10월 19일 후난성(湖南省) 사오둥(邵东)에서 태어났고, 뒤에 부모의 일 때문에 가족이 샹탄(湘潭)으로 옮겼다. 뤄펑의 아이디는 Misaya이고 중국 이름은 위징시(禹景曦)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 그가 쓰던 이름은 다른 이름, 위징슝(禹竞雄)이었다. 뒤에 어머니가 아들의 반항심이 너무 센 것이 이름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 지금의 위징시로 바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벌어진 일 하나가 뤄펑에게 깊은 학교 혐오를 남겼고, 몇 차례 가출까지 했다. 어머니는 몹시 애가 탔고 어쩔 수 없이 뤄펑을 다른 학교로 옮겨 줬다. 그런데 새 학교로 옮긴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뤄펑이 교복 입는 것을 잊었다는 이유로 학년 주임이 교문 앞에서 그를 크게 욕했다. 특히 전학생이라는 신분을 콕 집어 처음부터 끝까지 욕했고 뤄펑에게 해명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았다. 이 일로 뤄펑의 자존심은 완전히 찢어졌다. 그는 그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2008년 뤄펑은 몹시 막막했다. 그는 축구와 게임과 문학을 좋아했지만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시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학업에도 완전히 흥미를 잃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부모의 실망, 그리고 자신의 고집¶
아버지는 박사후 과정을 거친 대학 교수였으므로 어려서부터 그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컸다. 그러나 그 시기 아버지는 뤄펑에게 극도로 실망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거의 깨지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중학교 영어 교사였는데 아들 때문에 속을 다 태웠다. 한편으로는 그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너무 몰아붙이지도 못했다. 아들이 또 집을 나가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뤄펑이 PC방, 곧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에 가지 않도록 컴퓨터를 한 대 사 줬다. 그 시기 그는 몹시 답답했다. 자기가 고른 이 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뤄펑은 온종일 집에서 미친 듯이 도타를 연습했고, 밥을 먹을 때도 되도록 부모의 눈길을 피했다. 날마다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지느냐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2년을 했다.
강해지겠다는 바람을 안고 뤄펑은 미친 듯한 훈련을 시작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잤고 도타 경기 리플레이와 강좌를 끊임없이 봤다. 인터넷에서는 후난 톈마(天马) 팀의 주장 Aayaya를 알게 되었고, 연습 경기에서 보여 준 실력으로 그 팀의 온라인 선수가 되었다. 한때는 후난 지역의 상을 거의 다 쓸어 담기도 했다.
두 번 무너진 프로의 길¶
08년에 우한(武汉)의 어떤 사람이 프로 팀을 꾸리겠다고 했다. 그때는 도타 프로 팀이 아주 적었고 뤄펑은 프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므로, 자기가 모아 둔 세뱃돈 1,000위안을 들고 그리로 갔다. 뒤에 그 사람이 집세 같은 것을 내야 하는데 현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뤄펑은 그때 겨우 열여섯 살이었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상대를 믿어야 한다고 여겨 그 돈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은 사라졌다. 뤄펑은 결국 몹시 난처한 처지로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뒤 뤄펑에게 뜻밖이었던 것은 어머니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그가 이 일을 아주 진지하게 하고 있으며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북돋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무너진 프로의 길도 뤄펑의 꿈을 멈추지는 못했다. 2009년 8월 그는 이름난 도타 선수 ZSMJ를 알게 되어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10월 어느 날 ZSMJ가 좋은 소식을 알려 왔다. 뒷날 주선(九神), 곧 아홉 신이라 불리게 되는 우성(伍声, 2009)이 꾸린 FTD 팀에 자기와 함께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심사를 거쳐 ZSMJ와 뤄펑은 FTD 팀의 마지막 두 자리를 채웠고, 뤄펑은 항저우(杭州)로 가서 프로 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FTD는 전체 전력을 조금이라도 강하게 하려는 뜻이었는지 주력으로 뛰던 선수 다섯을 모아 팀을 꾸렸다. 그런데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다섯 가운데 아무도 서포터 자리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뤄펑이 서포터를 맡게 되었다. 그때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 자리를 해 본 적이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에는 역할 분담이 있으므로 그는 악마 마법사(恶魔巫师), 곧 라이온(Lion)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서포터를 잘해 보려고 그 시기 많은 사람에게 묻고 배웠으며 날마다 이 영웅 하나만 연습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그는 몹시 풀이 죽었고 자기가 팀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겨, 팀 동료들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났다.
두 번이나 프로의 길이 막힌 것은 뤄펑에게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그는 훈련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2010년 WCG에서 기회를 하나 만났다. TOT 팀의 chuan이 외국 국적이어서 WCG 중국 지역에 나갈 수 없었으므로, 팀은 뤄펑을 급히 불러들여 chuan을 대신해 주력 자리를 맡겼다. 뤄펑은 쑤저우(苏州)에서 보름 동안 집중 훈련을 하며 날마다 430과 KSSSS 같은 이름난 프로 선수들과 겨냥한 연습을 했다. 경기에서 기회가 많았는데도 결국 그때 이미 이름을 알린 NV와 LGD, EHOME 팀에 졌다. 뤄펑은 몹시 아쉽게도 다시 한 번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2010년 WCG에서 진 뒤 뤄펑은 철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그는 2년 동안 돈을 벌지도 학교에 다니지도 않았으므로 가족에게 몹시 미안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타에서 자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해 이 길이 자기에게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를 조금 위로하고 싶었다. 그는 다시 책을 잡고 보충 공부를 시작해 후난 미디어대학(湖南传媒大学)의 전문과정에 합격했고,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열린 부모, 아직 끝나지 않은 약속¶
뤄펑의 어머니는 e스포츠라는 꿈을 대하는 아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고 뤄펑과 약속을 하나 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뤄펑이 프로를 하고 싶다면 부모는 절대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2010년 9월 뤄펑은 학교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고 또 한 번의 여정을 시작했다.
당시 뤄펑과 Ayaya는 창사(长沙)의 Dream 팀에 있었고, 지금 WE의 감독인 Joker를 알게 된 것도 그때다. 텐센트가 연 TGA 대상 대회에 나가려고 팀은 날마다 온라인에서 훈련했다. 한 달 만에 중국 서버 30위 안에 들었고 마지막에는 온라인에서 모든 팀을 이겼다. 마지막 경기가 있던 그날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기숙사 사람들이 모두 그가 경기하는 것을 지켜봤고, 그는 팀 동료들과 음성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겼을 때는 이미 새벽에 가까웠다. 뤄펑이 그때 크게 한 번 고함을 질렀는데 건물 전체가 다 들었을 것이다. 정말 시원하게 이긴 경기였다. 아쉽게도 뒤에 TGA 오프라인 결승에서 그들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한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팀이던 EHOME에 졌다. 그래도 이 일로 그들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e스포츠 명문 WE의 초대¶
뤄펑과 팀 동료들의 뛰어난 활약을 WE 클럽의 매니저 페이러(裴乐, KinG)와 저우하오(周豪, ZAX)가 아주 눈여겨봤다.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뤄펑과 팀 동료들은 멀리 상하이로 가기로 결단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e스포츠 클럽 Team WE에 들어가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프로 선수가 되었다.
WE에 들어간 뒤의 생활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때 중국에는 아직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가 없었다. 뤄펑과 팀 동료들은 실력을 올리려고 200에 이르는 핑 지연을 견디며 날마다 밤 12시부터 이튿날 낮 12시까지 미국 서버에서 외국 팀들과 맞붙었다. 당시에는 대회가 적었으므로 상금이 몇천 위안인 대회에도 수준 높은 팀이 여럿 몰려들어 다퉜다. WE 팀의 그 시절은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다.
WE의 안정된 훈련 환경과 여러 해 쌓인 운영 경험 덕분에 뤄펑과 팀 동료들의 성적은 눈에 띄게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1년 10월 1일 광저우(广州)에서 열린 IEM 세계 대회에서 WE.LOL 팀은 당시 세계 강팀이던 미국 CLG와 유럽 AAA, 싱가포르 Flash 팀을 잇따라 꺾고 첫 세계 우승을 차지해 상금 1만 5,000달러를 받았다. 이어 11월에는 TGC 대상 대회 우승으로 상금 20만 위안을 받았다. 2012년에는 더 좋은 소식이 이어져 WGT와 NGF, TGA 2012 등 여러 대회에서 우승했고, 8월에는 한국으로 가서 한 달 동안 OGN 대회에 참가했다.
뤄펑은 WE 리그 오브 레전드 팀의 주장으로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든 미국 라이엇(Riot)의 초청을 받아 중국 프로 선수를 대표해 미국에서 열린 라이엇의 연례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중국을 대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이 연 시즌 2 월드 챔피언십(S2)에 나갔다.
아버지의 사랑은 산보다 무겁다¶
2011년 WCG 중국 지역 결승에서 iG에 진 뒤 뤄펑은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WCG는 그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고 그는 몹시 이기고 싶었는데 졌기 때문이다. 그는 30분 동안 울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처음으로 자기가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는 그 자신도 이상하게 여겼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으므로 함께 지낸 날이 적고 떨어져 지낸 날이 많았다. 한동안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몹시 반발해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도 잔소리라고 여겼다. 뒤에는 아버지도 그를 어쩌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이렇다 할 대화가 없었다.
그날 뤄펑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 여러 해 동안 부모를 실망시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그를 북돋우며 그가 지금 하는 일을 인정해 줬다. 여러 해에 걸친 벽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금 그들 부자는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 자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 뤄펑은 그것이 몹시 기쁘다.
위징시가 바람이 되었을 때, 그는 자랐다. 뤄펑 Misa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