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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클럽에서 연맹으로의 변천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十八 从俱乐部到联盟的演变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7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2128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Zax와 KinG은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WE 클럽은 선수를 어떻게 뽑는가?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난처해진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수치로 나타낼 수 있으면서 100퍼센트 정확한 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아는 것은 어렵고, 사람을 제대로 고르는 것은 더 어렵다. 예로부터 늘 그랬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락(伯乐)과 천리마 이야기, 유백아(俞伯牙)와 종자기(钟子期) 이야기가 천 년 넘게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락은 천리마를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고, 종자기는 유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유일하게 알아들은 사람이다.

e스포츠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다. 게임을 한 사람만 한다면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그래서 e스포츠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강호(江湖)가 생긴다. 강호는 문파와 개인의 의리로 얽힌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강호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복잡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이번 장은 e스포츠의 관점에서 사람의 본성을 들여다본다.

소속감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에 이미 팀을 짜고 경기를 잡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사람은 어딘가에 속하기를 바라고 자기와 같은 부류를 찾고 싶어 한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스타크래프트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대에 군단식 팀들이 전국에 등록 선수를 두었고 그 수가 걸핏하면 만 명을 넘었던 것이 그 예다. 인터넷과 웹 기술이 활짝 피면서 그 시대의 소속감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군단식 조직은 관리가 아주 느슨했고 분명하고 고정된 관계도 없었다. 그래서 그 한 시기만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과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최초의 프로 e스포츠 팀

아마추어 시대와 반프로 시대의 클럽 형태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대부분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중국 최초의 프로 e스포츠 팀이라고 보는 팀을 이야기하겠다. 2003년 무렵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대에 비교적 활발했던 China.V다. 이 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전에도 카운터 스트라이크만 놓고 봐도 이름난 "프로" 팀이 이미 많았고, 스타크래프트 시대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China.V가 어떤 팀이었는지 끝까지 들어 보기 바란다.

China.V의 팀을 이끈 사람은 CJ였다. 그는 부잣집 2세가 아니었고 이 팀에는 후원사도 없었다. 이 배경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2001년 무렵 그는 광시(广西) 출신이 주를 이루는 열여섯 살 안팎의 아이 다섯을 뽑아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을 만들었다. 이 다섯은 그때 이미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고강도 훈련을 거친 뒤 이들은 전국을 도는 유격전을 시작했다. 상금이 걸린 대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기차를 타고 갔다.

위의 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에게는 밋밋하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 대다수 사람은 e스포츠를 여가와 오락으로만 여겼고, 대다수 팀은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놀이 조직일 뿐이었다. 후원도 없고 넉넉한 집안도 뒤에 없고 최소한의 보장도 약속받지 못한 상태에서 China.V는 상어처럼 사냥만으로 살아남겠다고 나섰다. 개혁 개방 초기에 국영 기업의 평생 직장을 버리고 장사에 뛰어든 사람들과 비슷했다. 여기에는 강한 자신감과 실력만이 아니라 진짜 용기와 안목이 필요했다.

China.V는 당시 중국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강심제 한 방을 놓았다. 사람들은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대회 상금을 다 합치면 이미 상당한 액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 전 스타크래프트 시대에는 대회 상금이 높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많은 대회가 규칙을 쓰면서 한 팀이 여러 지역 예선에 겹쳐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래서 China.V는 전국 규모의 카운터 스트라이크 대회를 따라다니며 지역 예선을 하나씩 돌면서 상금을 챙기는 일이 잦았다.

이런 사나움 뒤에는 e스포츠의 실제 수준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었다. 날마다 겨룰 상대를 찾아다니는 무술가와 비슷하다. 자기 실력이 더 빨리 오르기도 하지만, 자기 지역에서 고수 소리를 듣던 사람들에게 격차를 깨닫게 해 주기도 한다.

내가 China.V를 중국 최초의 진짜 프로 팀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방식은 적극적이고 늑대 같았다. 잔인하기는 했지만 판 전체에는 이로웠다. 팀을 정말로 직업으로 삼은 프로 팀이었다.

China.V는 2002년과 2003년에 크게 이름을 날렸다. 남에서 북까지 크고 작은 대회를 돌았다. 상금 수입은 두둑했지만 팀 전체의 나이가 너무 어렸고, 흔들리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부작용도 계속 드러났다. 2002년 WCG에서는 3위에 그쳤고, 2003년 ESWC 결승에서는 AS에 졌다. 그 뒤 AS가 중국을 대표해 프랑스에 갔다. China.V는 그때부터 조금씩 흩어졌고 선수들도 뒷날 5E 같은 팀으로 갈라져 갔다.

나와 CJ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 왔다. 가끔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늘 아쉬워하며 말한다. 가부장식 관리만 있었을 뿐 계약 관계가 없었고, 결국 형제의 의리는 곁에 있는 사람의 말을 이겨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두고 뒷말을 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하려는 말은 사람의 본성이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인정만으로 팀을 이끄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e스포츠 역사의 세 차례 거품 전쟁

거품 전쟁이란 무엇인가? e스포츠에서는 현재 시장 가격을 크게 웃도는 급여로 선수를 빼 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한 시기 안에 선수의 몸값이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선수들 사이에 비교와 이적이 생기고, 이것이 각 팀 운영에 치명타가 된다. 게다가 안정적으로 돈을 만들어 내는 구조가 없기 때문에 거품 전쟁의 후반부는 악순환이 된다. 투자자는 대개 1년도 지나지 않아 마음이 식어 손을 떼고 떠나며, 그 뒤로 많은 자산이 빠르게 값을 잃고 거품이 터진다. 그러면 여러 방면에 강한 부정적 영향이 남는다.

스타크래프트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대에도 선수를 빼 가는 일은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한계 탓에 금액이 큰 사례는 아주 적었으므로 여기서는 넘어가겠다.

MYM이 일으킨 첫 번째 거품 전쟁

2006년 Sky가 워크래프트 3에서 WCG 2연패를 이룬 뒤, e스포츠의 위상은 중국에서만 오른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이 신흥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유럽의 MYM을 필두로 몇몇 클럽이 미친 듯이 선수를 빼 가기 시작했다.

MYM은 MeetYourMakers의 줄임말이다. 마르크 페테르 메르크 프리스(Marc Peter Merc Friis)가 2000년에 만든 오락형 카운터 스트라이크 팀이었고, 뒤에 세계 각지의 정상급 선수를 거느린 세계적인 프로 e스포츠 클럽으로 자랐다. MYM의 본부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었고 독일에 자회사를 두었으며, 팀은 Esports I/S라는 회사의 소유였다.

2006년 MYM은 워크래프트 3의 이름난 선수 Moon과 연봉 1억 원, 미화로 약 10만 달러에 계약하며 e스포츠 첫 거품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많은 e스포츠 클럽이 선수를 지키려고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이것은 당시 상금으로만 버티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지 못한 중국 e스포츠에 큰 타격이었다. 당시 WE의 한국 분팀은 몇 차례 인상을 요구했고 우리도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올렸다. 그러나 액수는 MYM이 띄운 그 숫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한국 선수들은 전부 떠났다.

이 일로 당시 WE의 전력은 크게 흔들렸다. 게다가 infl과 TED 같은 어린 선수들이 막 들어온 참이라 WE는 세대가 이어지지 않는 상태에 빠졌다. 그래도 우리는 이를 악물고 이 거품 전쟁에 들어가지 않았고, 내부에서 설득 작업을 많이 했다. 다행히 WE의 중국 선수 중에는 이 일로 팀을 옮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뒤에 우리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부풀려진 시장이었고, MYM도 e스포츠에서 돈을 버는 효과적인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이 일은 e스포츠를 밀어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MYM의 쇠락을 앞당겼다.

2009년 3월 20일, MYM 팀의 전 모회사인 ESNation이 운영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MYM 팀을 넘겨받은 덴마크 회사 Frontspawn은 ESNation 및 MYM이라는 상표와 맺은 모든 협력 관계를 끝낸다는 성명을 냈다. MYM의 전성기도 이렇게 한 단락을 맺었다.

BET가 일으킨 두 번째 거품 전쟁

BET(Beijing E-sports Team)는 2007년 무렵 이름을 떨친 중국 팀이지만 그 배경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겉으로는 유럽 SK 팀의 중국 분팀이었고, 2007년에 SK와의 관계를 끊고 독립했다. 실제로 그 뒤에는 베이징시 체육국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무게가 실린 배경이었다.

베이징시 체육국이라고 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론상 베이징시 체육국은 국가체육국만큼 대단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의 시점을 함께 봐야 한다. 2008년 올림픽은 베이징 올림픽이라고 불렸지 중국 올림픽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올림픽의 실제 집행 권한은 베이징 체육국 손에 있었다. 그리고 내부 소식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 체육국은 국가체육국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국가체육국에 맞설 수 있는 체육 부문이라니, 그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라.

BET의 책임자 가운데 쉬줘(许卓)라는 핵심 인물이 있었다. BET를 실제로 굴린 사람이다. 나이는 우리와 비슷했지만 아주 조용하고 실무형이었다. 집안 배경이 붉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 자신은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관가에서 자랐고 e스포츠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이런 이력 덕분에 쉬줘는 한편으로 중국 정부의 억센 일 처리 방식을 잘 알고 거기에 익숙했고, 다른 한편으로 e스포츠판과도 아주 가까웠다. 우리와도 다 친했고 사람이 착실하고 겸손해서 자주 다리를 놓아 주고 도와줬다. 혁명 원로 집안의 3세대 중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런 배경이 있었으니 BET가 처음부터 벌인 판은 상당히 컸다. 국내외 스타급 e스포츠 선수를 높은 급여로 대거 뽑아들인 것은 물론, 정부 공식 기관의 자세로 통합 팀 리그, 통합 대회 관리, 통합 대외 창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한마디 끼워 넣겠다. 중국 e스포츠의 지난 십몇 년 동안 자원을 통합하겠다, 시장을 바로잡겠다, 중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대회를 만들겠다고 나선 조직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는 배경이 두텁고 재력이 탄탄한 곳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버틴 곳은 하나도 없다.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유는 아주 많다. 간단히 정리해 본다.

  1.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 입에는 e스포츠가 있지만 마음은 e스포츠에 있지 않다. 간판만 e스포츠일 뿐 속은 다른 것이다. 실제 목적을 이루면 떠나고, 일은 그대로 흐지부지된다.

  2. 정말로 e스포츠를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고 묻지도 않는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감으로 밀어붙인다. 그 결과 요령을 잡지 못하고 좋은 뜻으로 나쁜 결과를 낸다. 사람들 마음만 들뜨게 해 놓고 판을 내던진 채 급히 접는다.

  3. 역할이 너무 뒤엉킨다. 대회 주최자이면서 참가자이고 규칙 제정자까지 되려 한다. 여러 신분이 겹치면서 뿌리에서부터 모순이 생기고, 이 모순은 언젠가 모두의 의심과 반발로 바뀐다.

  4. 모델이 틀렸다. 능력도 배경도 있고 e스포츠도 알지만 세운 모델이 맞지 않는다. 이것은 탐색의 실패다.

  5. 운이 나쁘다. 때도 자리도 사람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운이 없는 것이다.

성공은 아주 어렵다. 너무 많은 요소가 필요하고, 위의 실패 이유들이 뒤섞여 있을 때도 있다. BET의 문제는 아주 복잡했다.

BET의 높은 급여는 당시 많은 프로 e스포츠 선수의 마음만 흔든 것이 아니라 대회 주최자들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이들이 내놓은 안은 전부 베이징에 모여 리그를 치르자는 것, 대회의 배타성, 그리고 후원의 통합과 공유였다. 뒤의 두 가지가 눈에 익지 않은가?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 관가의 일 처리 방식이다. 단순하고 거친 계획 경제식이다.

여기서 나는 그들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비판하고 있다. 독점의 사고방식은 중국 문화 깊숙이 박혀 있다.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앉혀 놓으면 새 사람들이 다르게 할 것 같은가? 그들도 똑같이 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의 본성은 완전하지 않으므로 합리적인 제도로 묶고 제한해야 하고, 그래야 이런 단순하고 거친 결정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BET는 2008년 초부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달력처럼 정확하게 되풀이되었다. 선수들이 떠났고 잇따라 은퇴해 다른 일로 옮겼다. 워크래프트 3의 생명력도 2008년에 끝에 이르렀다. 이때 도타는 아직 조용히 익어 가고 있었다.

세 번째 거품 전쟁

세 번째는 사실 2010년 이후에 일어났다. 주인공은 도타였고 걸린 금액도 역사 기록을 깼다. 이 글은 2010년 이후의 일을 다룰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앞에서 말한 것과 견주어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자 논리다. 추론하는 방법과 도구를 보여 줬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왜 일어날지는 스스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거품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지만 나쁜 점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한 번 넘어질 때마다 그만큼 지혜가 는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중국의 주요 팀들은 인정 말고도 다른 구속 수단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팀은 정식 회사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고, 계약은 선수를 받는 전제가 되었다.

사람의 본성을 알고, 인정과 법이라는 두 가지 수단으로 팀을 이끌 줄 아는 것. 이것이 현대 e스포츠 클럽의 특징이다. 수많은 뼈아픈 경험에서 뽑아낸 것이므로 이 과정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좋은 클럽을 세우고 싶다면 이 두 가지는 토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계약 조항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더 나은 내부 동기 부여 체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좋은 회사 문화와 결속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런 것들은 법이나 규정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각자가 더듬어 찾아 나가야 한다.

연맹의 변천

먼저 말해 둘 것이 있다. 어떤 연맹이든 일시적인 공동 이익이 하나로 드러난 것이다. 연맹의 존재와 유지는 공동 이익이 일치한다는 전제 위에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개체의 이익 자체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마다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주 복잡하고 계속 바뀌는 것과 같다.

간단히 말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형태의 연맹이든 불안정하다.

연맹은 불안정하지만 있어야 한다. 일시적인 필요도 일시적으로는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중국 e스포츠 연맹은 다 이름뿐이었다. CCSK와 CGA는 이름에 연맹이 들어가 있었지만 실제로 유효하게 굴러가는 것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중국 최초로 유효한 연맹 체제를 세운 것은 2004년의 CEG다. 산하 클럽의 정식 선수가 되면 선수에게 급여를 줬고, 정기적인 대회가 있었고, 선수의 행동을 규율했으며, 이적이나 선수 빼 가기 같은 일에 대한 유효한 처리 방법을 만들었다. 이 문장에서 "유효한"이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전에도 영향력과 여론 같은 실체 없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 보려 한 조직이 있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 뒤 2007년 BET가 세워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더 뒤로 가면 국가 배경이 있는 e스포츠 조직은 모두 물러났고, 민간 조직은 대체로 뜻은 있어도 힘이 없었다.

그러다 2012년 도타가 쇠퇴한 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새로운 e스포츠 인기 종목이 되었다. 도타로 시작해 선수와 클럽을 주체로 삼은 ACE 연맹이 리그 오브 레전드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텐센트도 e스포츠의 사고방식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더 깊이 다루기 시작해 ACE 연맹을 실제로 자금으로 뒷받침했다. 2013년 초에는 상하이 자베이(闸北)의 다닝 국제(大宁国际) 근처에 ACE 연맹 사무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ACE 연맹은 이미 e스포츠 업계 노동조합의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실체를 갖추면 중국 e스포츠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일이 많다. 말을 듣고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2010년 이후의 일이므로 이 e스포츠 이면사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그래도 역사의 흐름을 근거로 몇 가지 판단은 할 수 있다.

미국의 할리우드를 보라. 배우에게는 배우 조합이 있고, 각본가에게는 각본가 조합이 있고, 감독에게는 감독 조합이 있고, 기자에게는 기자 협회가 있다. 서로 다른 집단이 각자의 공동 이익을 갖는다. e스포츠라고 이것을 참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나로 크게 묶으려 하기보다 이렇게 잘게 나누는 편이 낫다. 선수, 대회, 미디어, 운영사가 각자 자기 조직을 찾아 뭉쳐서 여러 방면의 이익을 조율하고, 서로 억제하고 받쳐 주면서 끝내 함께 이기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분쟁이 많아지고 효율도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이 중요한가, 건강하게 오래가는 것이 중요한가?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깊이 논의해야 할 문제일지 모른다. e스포츠 범위 안에서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