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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칼질 솜씨와 주방장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番外篇 刀工与大厨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13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11901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이 장은 조금 추상적이다. 얼핏 보면 e스포츠와 상관이 없지만 뒤에 올 이야기의 밑바탕을 까는 글이다.

칼질 솜씨와 주방장

60여 년 전, 한 남자가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달아났을 때 자기 신분증을 잃어버린 데다 보증을 서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간첩으로 의심받아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어느 군 부대 밖에서 남의 자전거를 고쳐 주며 지냈다. 그때는 대만 해협 정세가 팽팽해서 아무도 말썽에 얽히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 그를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마침 그 부대에 붓글씨 쓰기를 좋아하는 젊은 장교가 있었다. 어느 설에 기분이 좋아 대련(对联)을, 그러니까 설에 문 양쪽에 붙이는 대구 글귀를 두 폭 더 써서는 자전거 고치는 사람에게 그냥 건네주었다. 자전거 고치는 사람은 기뻐서 장교를 붙들고 기어이 재주를 하나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 재주라는 것도 아주 별났는데, 채소 썰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것에 흥미를 두지 않겠지만 마침 이 장교의 집이 식당을 하고 있어 그쪽으로 아는 것이 있었고, 그래서 일단 한번 보아 주었다. 그 한 번이 사달이었다. 장교는 홀린 사람처럼 그에게 칼질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뒤 이 장교의 칼질은 어느 정도까지 갔을까. 손바닥 너비에 팔뚝만큼 굵은 동아를 썰어 펼쳐 놓으면 한 조각 한 조각이 자로 잰 듯 고르게 나왔다. 게다가 그는 칼을 급하게도 느리게도 놀리지 않았고, 손안의 재료가 점점 작아져도 참을성 있게 한 칼 한 칼 남김없이 갈라냈다. 특히 "칼 한 번에 생선 등뼈 바르기(一刀沥鱼脊)"라는 요리가 있었는데, 단 한 번의 칼질로 생선 뼈와 머리를 갈라낼 수 있었고 잔가시가 부러지지도 남지도 않았다. 쓰는 것은 칼의 앞뒤 끝이었다. 뒤로 가르고 앞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번개처럼 짧은 한순간에 끝났다.

중년 이후로 그는 칼법을 호흡과 하나로 녹여 냈다. 채소를 썰 때 두 무릎을 살짝 굽히고 두 발은 나란하지도 벌어지지도 않게 두었다. 칼질이 가늘어질수록 두 고관절을 더 벌리고 기운을 발뒤꿈치까지 가라앉혀 그 뜨는 힘을 칼끝으로 보냈다. 채소도 썰고 몸도 튼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자 장교는 밥도 짓지 않고 칼도 잡지 않았다. 게다가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굳이 곱고 세밀한 것을 그렇게 따질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다. 칼법은 서예 안으로 되돌아갔고, 둥글고 부드러우며 온화해 한 유파를 이루었다. 이것은 다 뒷날의 이야기다.

장교가 아직 젊었을 때로 돌아가면, 그는 제대한 뒤 집안의 식당을 물려받았고 한때 쩡(曾)이라는 성을 가진 주방장을 들인 적이 있었다.

이 쩡 선생은 주방장이라고는 하지만 요리사의 흰 상의와 높은 모자를 걸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더울 때는 물빛 청색 삼베 사선 여밈 적삼 한 벌, 겨울 추위에는 달빛처럼 흰 긴 도포 한 벌이었고, 깔끔하고 속되지 않았다. 주방이 아무리 바빠도 그가 직접 요리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늘 태연한 얼굴로 계산대 뒤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런데 손님이 쩡 선생이 짠 연회석을 요구하면 값이 훨씬 비쌌다. 많은 사람이 이상하게 여겼다. 주방장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알아 둘 것이 있다. 주방에서 오래 굴러먹은 요리사들은 흔히 닳고 닳게 마련이다. 군에 오래 있어 뺀질뺀질해진 병사와 같아서, 재료에서 못한 것을 좋은 것인 양 섞어 넣고 몰래 바꿔치기해 제 주머니를 채우거나, 게으름을 피우느라 화학조미료로 닭 육수를 대신하는 따위의 작은 요술을 부린다. 보통 사람은 그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방장 앞에서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주방장이 눈으로 한 번 훑고 입에 한 번 넣어 보면 바로 정체가 드러난다. 이것이 주방장의 쓸모다. 쩡 선생이 짠 자리가 좋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무도 감히 속이지 못하니 자리가 자연히 좋았다.

쩡 선생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알딸딸하게 취하면 더욱 거침이 없었다. 한번은 매운맛과 단맛 이야기가 나왔다. 매운맛은 모든 맛의 왕이라 왕자의 기운이 있고 다른 맛과 쉽게 섞이지 않으니 군자가 스스로를 무겁게 지키는 도리가 있다고 했다. 매운맛은 세게 써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가 되어 기강이 조각조각 잘려 나가고 누구나 업신여기게 되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 이치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단맛은 왕비의 맛이라 매운맛을 가장 잘 풀어 주고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하며 가을 달과 봄바람 같다고 했다. 다만 단맛은 옅게 쓰는 것을 높이 치니 그것이 숙녀의 덕이고, 지나치게 느끼한 단맛은 사람을 가장 역겹게 하는 노골적인 아첨이라고 했다.

쓴맛과 짠맛에 대해 쩡 선생은 짠맛이 가장 속되고 쓴맛이 가장 높다고 했다. 보통 사람은 하루도 짠맛 없이 지낼 수 없지만 쓴맛은 이틀을 잇달아 감당하지 못한다. 게다가 쓴맛은 모든 맛이 흩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느껴지니 맛 가운데 은자다. 늦가을의 국화, 겨울눈 속의 매화 같은 것이다. 반면 짠맛은 혀에서 가장 쉽게 풀려 입에 넣는 순간 바로 느껴지고 더없이 흔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짠맛이 극에 이르면 도리어 쓴맛이 된다. 그러니 흔한 것 속에 가장 흔하지 않은 데가 있는 법이다.

장교는 쩡 선생을 무척 부러워했다. 그는 자기가 칼질에 능하지만 그 칼질에 갇혔고 이번 생은 칼잡이 팔자일 뿐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칼질은 삼 년, 불은 오 년, 먹는 것은 평생이다."

칼잡이는 삼 년이면 꼴이 잡히고 불 조절은 오 년이면 스승 곁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먹는 것은 평생을 들여야 몸으로 알게 되고, 게다가 좋은 것을 좀 먹어 본 사람이라야 주방장이 될 수 있다. 골동품을 감정하는 전문가가 진품을 좀 보아야 눈이 트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기를 때 서예를 가르치되 연습을 다그치지 않았고, 바둑을 가르치되 급수를 올리라고 부추기지 않았고, 요리를 물려주되 스승을 두게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맛만 보여 조금 알게 하는 데서 그쳤다. 마지막에는 아들에게 글씨 한 폭을 주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한 가지 쓰임에만 맞춘 그릇이 아니라는 《논어》의 구절이다.

칼질 솜씨와 주방장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래는 편하게 하는 이야기다.

사람은 때때로 자기가 잘하는 것에 갇힌다. 그릇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큰 학문이다. 이 10년 동안 나도 어떤 때는 그릇이 되어 남에게 쓰였고 어떤 때는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 노릇을 분명히 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나서야 그릇과 그릇 아님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어서, 물처럼 정해진 모양이 없고 바람처럼 정해진 방향이 없다.

위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래의 생각들을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서다.

  1. 정말로 e스포츠인이 되려 한다면, 특히 무대 뒤의 일을 하려 한다면 어느 한 게임에 빠지지 마라. 이 십몇 년 동안 내 동료 상당수가 이미 이 판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e스포츠를 깊이 사랑했지만 모두 어느 한 게임을 너무 편애했다. 그러나 어떤 e스포츠 종목에도 생명의 주기가 있다. 황금기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자기 취향을 굳게 지키는 것은 작게 보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이지만 크게 보면 그 사람들도 그 종목이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과 함께 변두리로 밀려난다. 물론 떠난 사람들은 더 좋은 곳으로 갔을 수도 있다. 다만 꿈은 거기서 다른 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e스포츠판에 지금도 남아 있는 옛사람들 상당수는 게임을 알되 게임을 잘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페이러(裴乐, KING), ZAX, SKY는 모두 스타크래프트 시대에 시작해 카운터 스트라이크, 워크래프트 3, 도타를 거쳐 지금의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왔다. 그들은 다 게임을 할 줄 알고, KinG은 축구 게임과 NBA 게임도 한다. 그러나 KinG은 어느 한 게임에도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WE도, 그리고 WE의 전신인 lion과 YollinY도 이 십몇 년 동안 게임 하나가 시들었다고 함께 시들지 않았다.

이것이 e스포츠에 대한 큰 사랑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도 e스포츠가 온라인 게임 쪽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하는 사람은 크로스파이어를 하는 사람을 깔보고, 도타를 하는 사람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사람을 깔보며, 예전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이 워크래프트 3를 하는 사람을 깔보았다. e스포츠 종목이 옛것에서 새것으로 넘어갈 때마다 늘 이랬다. 그러나 사람들은 e스포츠 자체가 도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e스포츠 종목은 한 번 바뀔 때마다 더 열리고 더 성숙해졌다. 이 십몇 년 동안 팀의 성격만 해도 그저 놀이였던 것에서 지금의 회사 형태 클럽까지 발전했고, 대회도 작은 PC방에서 큰 콘서트장 규모의 무대로 나왔다.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e스포츠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래서 모두가 칼질에 갇히지 말고 주방장의 자리에 서서 이 잔칫상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칼질을 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틀리지 않았다. e스포츠 팀에서도 누구는 선수를 하고 누구는 팀 매니저를 하고 누구는 미디어를 하고 누구는 마케팅 운영을 하는 것과 같다. 각자 전공하는 분야가 있고 개인의 취향이 다를 뿐이다.

  1. 주방장이 되고 싶다면 계속 읽어라.

먼저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자기 이미지에 신경 써야 한다.

얼마 전 어느 대회 현장에서 크게 시끄러웠던, 남자 해설자가 여성에게 강제로 들이댄 사건이 바로 그 반대의 예다. e스포츠판의 어지러운 모습 가운데 일부는 스타크래프트 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대에는 나체 화상 채팅이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 폭로된 일도 있었으며, 워크래프트 3 시대라고 없었던 것이 아니라 판이 성숙해져 사생활을 지키는 법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특정한 어느 판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명리를 좇는 판이 어지럽다는 이유가 업계의 윤리를 어겨도 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자기 욕망과 성질을 다스리는 것은 남에 대한 존중이다. 젊을 때 잘못을 좀 저지르는 것은 괜찮다. 거둘 줄 알면 된다.

그다음은 많이 말하고 많이 하는 것이다. "적게 말하고 많이 하라"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아니다. 요즘 세상에는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남이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해도 두려워하지 마라. 고칠 수 있다. 게다가 말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말만 하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말만 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영영 나아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모르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주 좋은 자원을 들고 이 판에 들어와서는 묻지도 않고 함께할 사람을 찾지도 않는다. 기어이 돈을 부어 남과 똑같은 것을 혼자 만들려 한다. 자원은 낭비되고 값은 올라가며, 끝내 요령도 잡지 못한 채 1년을 헤매다 발을 뺀다. 그러고는 주방에서 거품이나 닦는 설거지꾼이 된다. 사정을 아는 사람은 좋은 뜻으로 나쁜 일을 했다고 하고, 모르는 사람은 돈세탁을 했다고 한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큰 일이다.

마지막으로, e스포츠인은 부딪히는 문제마다 e스포츠 산업의 자리에 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취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e스포츠의 흐름과 전략적 판 짜기를 살피는 법을 배워야지, 자신을 그저 한 명의 CSer, 한 명의 Dotaer, 한 명의 LOLer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e스포츠인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다. 3년, 5년, 나아가 10년 뒤의 e스포츠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산업 전체의 규범과 발전을 밀어 올리려면 어떤 힘들을 함께 묶어야 하는가?

그때가 되면 너는 한 팀의, 나아가 한 산업의 지도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주방장이 되고 나면 채소를 썰고 볶는 일이 더는 네가 할 일이 아닌 것과 같다. 네가 생각할 것은 식당 전체의 운영, 고객 시장의 개척과 서비스 품질 관리, 그리고 팀 구성원의 선발과 육성이다. 나아가 자주 밖으로 나가 다른 식당이나 다른 업종을 둘러보고 다른 운영 관리의 사고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e스포츠인이지 그저 한 명의 게이머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있고 길은 자기가 고른 것이다. 다만 e스포츠라는 이 판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면, 먼저 자기 마음에 물어보는 것도 좋다. 설거지꾼, 칼잡이, 주방장, 너는 어느 쪽이 되고 싶은가?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칼질 솜씨와 주방장〉 이야기는 타이완사범대학 쉬궈넝(徐国能) 교수의 저서 《아홉 번째 맛(第九味)》에서 나왔다. 이번 생에 얻은 것이 많아 여기에 특별히 감사를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