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텐센트, 뭘 하려는 걸까?¶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十四 腾讯,他想干嘛?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2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28896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텐센트(腾讯)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텐센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좀 더 직접적일 것이다. 우리 회사 XMA가 2013년 여름에 열기로 했던 제8회 StarsWar e스포츠 갈라가 텐센트의 TGA와 LPL 리그의 빽빽한 일정에 밀려 날짜를 아예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은 온갖 행사가 몰리는 성수기다. 같은 시기에 대회를 여는 다른 주최자들도 이 일을 두고 불평이 많았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보면 이렇다. 요즘은 택배를 가져다주는 청년도 내 화면에 띄워 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보면 몇 마디쯤은 그냥 주고받는다. 우리 행사의 무대 순서를 짜 주는 안무 선생님도 뤄펑(若风)과 차오메이(草莓)를 안다. 큰 행사장을 섭외하러 갔더니 담당자가 WE 팀 팬이었다.
이런 일을 이미 겪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일이 쌓이다 보면 알게 된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그 텐센트가 e스포츠를 예전의 캠퍼스 문화에서 끌어내 훨씬 넓은 사회 문화의 층위로 옮겨 놓았다는 것을.
텐센트의 게임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e스포츠가 온라인 게임 쪽으로 기우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처럼 지난 십몇 년 동안 e스포츠 종목 네다섯 개의 흥망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그 게임들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어도 e스포츠의 혼은 그대로 이어졌고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 지금 중국 e스포츠의 판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좋다. 정책에 기대지 않고, 부잣집 2세에 기대지 않고, 저질 마케팅에도 기대지 않는다. 관객은 날마다 볼 경기가 있고 게임 운영사는 평판과 돈을 함께 번다. 스타와 팀은 국내외에 나갈 대회가 널려 있고 심심찮게 100만 위안이 넘는 상금도 받는다. 온갖 제조사가 돈을 넣으려 하고 해설자와 미디어까지 덕을 본다. 중국 e스포츠 산업의 사슬 전체가 이렇게 발맞춰 돌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좋고 싫음은 잠시 옆에 두고 텐센트 게임의 이면사를 살펴보자.
2005년,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른 시점부터 텐센트는 경쟁형 온라인 게임에 전략적으로 판을 깔기 시작했다. 자체 개발한 QQ 스피드(QQ飞车)에서 크로스파이어로, 다시 리그 오브 레전드로 이어지며, 텐센트는 다른 온라인 게임보다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가 훨씬 낮은 e스포츠 종목에 큰 비용을 계속 쏟아부었다.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묻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텐센트, 뭘 하려는 걸까?
물론 무엇을 하려는지 알려면 먼저 무엇을 해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짚어야 한다.
텐센트와 e스포츠, 동갑이지만 운명은 달랐다¶
1998년 중국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그해 11월 작은 펭귄 텐센트가 태어났다. 바로 그해에 수많은 싱글 플레이 게임 애호가가 인터넷을 통해 진짜 e스포츠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니 텐센트와 중국 e스포츠의 나이가 비슷하다고 말하면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이어지는 몇 해 동안 텐센트와 중국 e스포츠가 놓인 자리는 거의 같았다. 열광하는 애호가들이 있었고 사회의 관심도 컸다. 그때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것은 QQ로 대화한다는 뜻이었고, 온라인으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와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한다는 뜻이었다. 더 뜨거울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러나 텐센트 사람들도 e스포츠 사람들과 똑같이 막막했다. 양쪽 다 자기 손에 뭔가 큰 것이 걸렸다고 느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2001년 텐센트가 사용자 5,000만 명을 만들었을 때에도 회사에는 열여덟 명뿐이었다. 다행히 2001년 초에 휴대전화 과금 채널인 몬터넷(移动梦网)이 나왔다. 텐센트는 이 서비스를 바탕으로 QQ 멤버십 같은 초보적인 부가 서비스 과금을 내놓았고, 2001년 말에 현금 흐름을 흑자로 돌렸다.
이 무렵 중국 e스포츠도 작은 정점을 맞았다. 2001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한국 서울에서 열린 WCG 세계 결승에서 MTY와 DEEP, 본명 마톈위안(马天元)과 웨이치디(韦奇迪)가 스타크래프트 2대2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여기서 한마디 끼워 넣는다. 관례대로 WCG 결승일에는 FIFA 종목이 스타크래프트보다 앞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그해 FIFA 2대2 세계 챔피언이 된 중국 선수 Windboy와 톈치(天启), 본명 린샤오강(林晓刚)과 옌보(阎波)가 중국 역사상 첫 WCG 금메달의 주인공이다. 스타크래프트의 그 우승만 아는 사람이 많으니 짚어 둘 필요가 있다.
2001년 말 텐센트와 중국 e스포츠는 둘 다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지식재산권의 토대가 서로 달랐던 탓에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텐센트는 QQ 멤버십에서 시작해 QQ 쇼(QQ秀) 같은 수익 모델을 내놓으며 더듬어 가는 가운데 계속 자랐다. 2003년 등록 사용자가 2억 명이 되었을 때는 자체 개발한 QQ 게임, 곧 캐주얼 게임 커뮤니티 플랫폼을 내놓았다. 회사는 이미 선순환 단계에 들어섰고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졌다.
반면 2003년까지 온 중국 e스포츠에는 여전히 분명한 수익 모델이 없었다. 그 두 해에도 e스포츠 애호가는 적지 않았고 재능과 꿈을 가진 이상주의자도 꽤 모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많은 e스포츠 조직이 끊임없이 재편되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스타크래프트 대회는 계속 줄었으며, 애호가들도 다른 게임과 다른 오락으로 계속 빠져나갔다.
내가 지금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스스로 피를 만드는 방식이 없으면 그 눈덩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서고, 시간이 갈수록 작아질 뿐이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텐센트는 퍼블리싱이든 자체 개발이든 실전 경험을 대량으로 쌓았다. 특히 2008년 전통적인 RPG를 버리고 세분화된 캐주얼 게임 시장으로 방향을 튼 뒤로는, 게임이라는 저비용 소비가 경기 역행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 경제가 가라앉은 시기에 오히려 물을 만난 듯 크게 성장했다.
이때 중국 e스포츠는 여전히 몽유 상태였다. 2004년 국가체육총국과 중신타이푸(CITIC Pacific)가 뒤를 받친 CEG가 있었고, SKY가 2005년과 2006년 WCG 세계 대회를 2연패한 일 같은 사건의 영향도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 e스포츠는 신기하게 높은 관심을 유지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조혈 모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서 2009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텐센트는 온라인 게임 동종 업계를 서서히 앞질러 중국 온라인 게임 1위 자리에 앉았고, e스포츠 쪽 사람들은 죄다 흩어져 대부분 여러 게임 회사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쓸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것이다.
2007년 여름 QQ에 창이 하나 떴다. 텐센트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채용 공고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 팝업은 텐센트 게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었다. 이 공고를 보고 텐센트 게임에 들어간 사람이 많았고, 그 일로 인생이 바뀐 사람도 적지 않다.
2007년 8월 21일 《Cross Fire》의 중국어 정식 명칭이 《촨웨훠셴(穿越火线)》으로 정해졌다. 그때 텐센트는 이미 한국 스마일게이트에서 CF, 곧 크로스파이어를 들여오기로 확정한 상태였다. 스타크래프트 시대의 이름난 e스포츠인 한위량(寒羽良)도 도입 작업에 참여했다. 본명은 천위(陈宇)이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텐센트 게임 퀀텀 스튜디오(量子工作室)를 이끌고 있었다.
텐센트 게임의 게임 프로젝트는 보통 운영과 마케팅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품 운영은 프로듀서가 맡고 마케팅은 마케팅 부서가 맡는다.
CF 운영 책임자는 CF 프로젝트의 프로듀서 우이민(吴裔敏)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다와 디지털 테크놀로지(大蛙数字科技)의 창업자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실력도 높아서 텐센트 사내 카운터 스트라이크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CF의 메인 기획자는 쉬광(许光)이었다. 뒷날 CF의 프로듀서가 되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텐센트 FPS 프로젝트의 책임자였으며, CF의 게임 손맛을 개선한 사람이 그다. CF 대회 책임자는 류하오보(刘浩博)였다.
당시 마케팅 쪽에서 브랜드 매니저는 랴오칸(廖侃)과 진이보(金亦波)였다. 랴오칸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텐센트 FPS 마케팅 책임자였고, 진이보는 텐센트 TGA 책임자이자 리그 오브 레전드 마케팅 책임자였다. 두 사람은 마케팅 총괄 허우먀오(侯淼, Mars)에게 보고했다. 프로젝트 팀 전체는 열 명 남짓이었는데, 모은 자료가 한정되어 한 사람씩 다 적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텐센트가 CF의 퍼블리싱 권한을 가져온 원래 의도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시장을 먹는 것이었다. 우이민의 말로는 당시 집계할 수 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숫자가 플랫폼 동시 접속 200만에서 300만이었고, 여기에는 수많은 랜 서버 안의 플레이어 수가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보면 이 시점 중국 FPS 게임의 전망은 꽤 밝았다.
그러나 처음 그들 앞에 놓인 CF 테스트 버전은 차마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FPS 게임은 서든어택과 스페셜포스였는데 텐센트는 여러 이유로 둘 다 계약하지 못했다. CF는 사실 또 다른 게임 A.V.A(중국 출시명 战地之王)와 묶여서 텐센트에 넘어온 한국 게임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가 높지 않았다. 게다가 CF 초기 세 차례 테스트와 그 반응은 우이민 일행의 마음을 아주 싸늘하게 만들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유저가 보기에 CF는 그래픽도 게임성도 몹시 나빴고, 테스트 결과 고수급 FPS 유저도 초심자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CF 프로젝트 팀은 이 게임을 다시 자리매김했다.
그들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유저를 끌어오는 노선을 겨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작의 복잡도를 낮추고 K/D 비율, 곧 킬과 데스의 비율을 높였다. 간단히 말해 헤드샷 확률을 올리는 식으로 초보도 고수를 죽일 확률이 더 높아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케팅 목표를 카운터 스트라이크 유저를 쫓는 데서 새로운 FPS 유저를 길러 내는 쪽으로 옮겼다.
온라인 게임 회사에게 e스포츠와 온라인 게임의 운영 개념은 서로 다르다.
e스포츠는 피라미드를 만들고 사람들의 눈은 주로 꼭대기를 향한다. 온라인 게임 회사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그들의 눈은 주로 거대한 밑변의 인구를 향한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의 사고방식은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올려 더 많은 사람이 CF를 알게 하는 것이었다.
CF의 처음 계획은 다른 브랜드의 힘을 빌려 자기 이미지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CF가 2008년 4월에 WCG 합류와 정식 종목 채택을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의 브랜드 협업은 CF와 레이저(Razer)의 협업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를 텐데, 레이저는 1999년 퀘이크 시대에 이미 고급 기계식 마우스 브랜드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2008년까지 이어져 레이저 데스에더 마우스의 디자인은 아주 세련되고 새로웠다. 그래서 CF는 데스에더 출시와 묶여 함께 나갔다. 한마디 더 하면,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이 레이저와 맺고 있는 긴밀한 협력 관계도 그때 닦아 놓은 토대에서 나온 것이다.
텐센트가 CF를 다시 자리매김하고 밀어 올린 이 일련의 동작을 좀 더 자세히 보자.
텐센트는 먼저 자리매김의 문제를 예민하게 찾아냈고 FPS의 문턱을 과감히 낮췄다. 그다음 CF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에 묶는 방식으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이 단계에서 텐센트 내부의 CF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치도 올라가기 시작했고, 제품 홍보의 강도를 키우기로 굳혔으며, 양이 쌓여 질로 바뀌는 발전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이야기할 것은 텐센트 마케팅 쪽의 핵심 경쟁력이다.
텐센트의 프로모터 체계¶
여기까지 왔으니 그 전에 있던 지상 프로모션(地推) 체계를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다. 지상 프로모션 팀은 텐센트만의 것이 아니었고 여러 게임 회사에 다 있었다. 당시 가장 이름났던 것은 자이언트(巨人)의 팀, 곧 건강보조식품 나오바이진(脑白金)과 온라인 게임 《정투(征途)》의 홍보를 해낸 팀이었다. 그때로서는 아주 강력한 홍보 방법이어서 중국의 3, 4선 도시까지 파고들어 PC방과 캠퍼스에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다만 이 방식은 상당한 수의 지상 인력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지상 프로모션 팀에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노동 집약형 직군이라 관리가 어렵고 비용이 높았으니 이 모델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지상 프로모션 팀을 두는 회사가 사실상 없다.
그래도 지상 홍보라는 일 자체는 여전히 필요했다. 이때 새로운 발상이 나왔다. 프로모터 체계다.
프로모터 체계란 무엇인가. 아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2008년 9월 텐센트는 바이청 리그(百城联赛), 곧 백 개 도시를 도는 리그를 열기 시작했다. 20개 성을 고르고 성마다 도시 3곳, 도시마다 PC방 2곳을 정해 주말에 두 PC방에서 각각 한 경기씩 치렀다. 다 합치면 PC방 120곳이고 도시는 다달이 바뀌었다.
이 바이청 리그의 비용을 텐센트가 전부 냈다면 비용만 해도 상당히 무서웠을 것이다. 실행의 난도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새로 내놓은 게임이라면 이렇게 하는 것은 위험이 아주 컸다.
이때 프로모터 체계가 힘을 발휘했다. 텐센트가 QQ를 여러 해 운영하며 쌓아 올린 플랫폼 자원은 마르지 않는 모체였다. QQ 자원을 각 지역의 공급자와 맞바꾸면, 아주 적은 PC 대관 비용과 약간의 선물 꾸러미만 내고도 전국 동시 홍보를 해낼 수 있었다.
이것은 다른 게임 운영사가 알고 있어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텐센트가 이 프로모터 체계로 쓰는 홍보 비용은 경쟁자보다 언제나 훨씬 적고 훨씬 빨랐다.
그렇게 텐센트의 프로모터 체계는 CF의 대회와 함께 자랐고, 새 게임을 빠르게 퍼뜨리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이 방법은 2010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에도 똑같이 쓰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하룻밤 사이에 사방에 깔린 것처럼 느껴진 이유가 이것이다.
2011년 CFPL, 곧 《크로스파이어》 프로 리그의 텔레비전 리그가 베이징 GTV에서 막을 올렸다. 기획부터 실행의 세부까지 아주 공들여 만들었고 선수 포장과 스타 만들기도 일류였다. 지금의 LPL에도 CFPL의 그림자가 많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이것이 CF의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제 CF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온라인 게임의 관점에서 보면 CF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세계 1위의 동시 접속자 수와 거대한 매출을 냈다. 그러나 주류 e스포츠판에서 CF는 성공한 e스포츠 종목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왜일까.
첫째, CF는 끝내 캠퍼스 시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e스포츠의 주체인 대학생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고,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다.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랜 모드가 없다는 것이다. 랜이 없으면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스스로 대회를 꾸리기가 어렵고 기숙사 안에서 저절로 퍼져 나가게 할 수도 없다. 물론 이것은 현 단계의 온라인 게임 회사가 바꿀 수 없는 국면이고 캠퍼스 네트워크 사정도 나아질 리가 없다. 교육망(教育网)이 대학에서 갖는 위치는 특수한 의미가 있어 흔들 수 없다. 이 점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적어도 앞으로 5년은 그럴 것이다. 중국 대학의 네트워크도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체제 안의 세계다.
둘째, CF에 스스로 퍼져 나갈 힘이 없었을 때 홍보 작업도 e스포츠의 사고방식이나 산업의 구도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았다. CF의 사슬을 보자. 스타, 클럽, 대회, 미디어, 운영사. 이 다섯 부분 가운데 운영사만 아주 윤택하게 살았고 나머지 넷은 수와 이름값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데이터로 말하면 가장 잘나가는 CF 스타가 연 타오바오 가게조차 월 매출이 평범한 도타나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자와 비슷한 정도였다. 아주 아까운 일이다.
CF를 역사적으로 공인된 e스포츠 종목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이런 것이 보인다.
CF는 터질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결국 인기는 얻고도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대중이 인정하는 e스포츠 고전 종목들과 그 역사적 위치가 딱 한 걸음 차이인데, 바로 그 한 걸음이 모자랐다. 중국에서 돈은 거의 벌지 못한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그 안에 들어갔고, 세계 최고 동시 접속 온라인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쥔 CF는 문 앞에 멈춰 섰다.
A에서 A+로 가는 길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일지도 모른다.
이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야기하자.
리그 오브 레전드는 운이 좋았다. 중국에 나온 시점인 2010년이 마침 도타가 정점을 지나 기울기 시작한 해였다. 그리고 텐센트는 QQ 스피드, 던전앤파이터, CF를 거치며 온갖 단련과 경험을 쌓은 끝에 마침내 맞는 시간에 맞는 자리에서 맞는 게임을 만나 맞는 일을 했다. 이것이 운이다.
2010년 텐센트 QQ의 등록 계정 총수가 10억 개에 가깝고 동시 접속자가 1억 명을 넘었다는 자료가 있다. 그해 텐센트 게임 카니발에서 텐센트 게임은 완전히 새로운 로고와 그 아래 서브 브랜드 4개의 구조를 발표했다. 텐센트 게임 카니발(TGC), 텐센트 게임 경기 플랫폼(TGA), 텐센트 게임 길드(TGG), 텐센트 게임 공익연맹(TGSR)이다.
텐센트가 지금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는 방식은 온라인 게임에 e스포츠를 더한 사고방식이다.
간단히 말해 온라인 게임은 넓게 가고 e스포츠는 높게 간다. 한편으로는 프로모터 체계와 바이청 리그 같은 온라인 게임 수단으로 밑변을 계속 넓혔고, 다른 한편으로는 e스포츠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피라미드형 지원 체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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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에 참가하는 클럽은 3개월마다 5만 위안의 고정 보조금에 상금을 더해 받는다. 성적이 가장 나쁜 팀도 5만 위안의 상금을 받고, 클럽은 상금의 일정 비율을 클럽 몫의 보상으로 따로 받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 3개월 동안 규정을 어기지 않고 제때 경기에 나가기만 하면, 리그에 들어온 클럽은 최소 10만 위안을 가져간다. 이것이 가장 낮은 액수이고, 우승 상금은 50만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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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Riot)은 e스포츠의 발전이라는 관점을 더 중시한다. 이들은 전 세계에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를 만들었고 경기 규칙도 비슷하다. 주 2일 경기, 8개 팀, 단판제(BO1), 4회 순환의 28라운드이며, 모든 국가와 지역의 우승 팀이 9월에 미국에 모여 세계 결승을 치른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갔고, 이것은 e스포츠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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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의 해설자와 스타를 포장해 홍보하고, 노출을 늘리도록 돕고, 무대에 설 기회도 모두 준다. 이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다만 미디어 쪽에서 텐센트가 한 일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일부 독점적인 행위가 일부 미디어의 반발을 불렀다. 이 득과 실은 그들 스스로 재 보라고 두겠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성공이 중국 e스포츠가 살아가는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진짜 선순환이고, 이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지고 빨라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텐센트가 보여 준 성공적인 e스포츠 운영은 다른 온라인 게임 회사들에게 위기감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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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핵심 이용자의 성장이 멈췄고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근시안적인 온라인 게임 몇몇이 유저에게서 돈을 긁어내는 데만 매달렸다. 유저는 큰돈을 쏟아붓고 나서 한번 정신을 차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금광은 언젠가 바닥이 난다. 그래서 ARPU는 높지 않지만 규모가 거대한 중국 e스포츠 시장이 그들 눈에 새로운 금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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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센트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돈은 적게 쓰고 시간은 많이 쓰는 게임이라는 특징을 이용해, 한편으로 e스포츠 시장을 울타리 안에 넣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 온라인 게임 시장, 특히 경쟁자의 시장을 잠식했다. 상당히 매서운 수였다. 유저가 텐센트에서 게임을 하는 습관을 길러 주면서 동시에 상대를 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른 게임 회사들도 정신을 차린 뒤 저마다 자기 e스포츠 종목을 서둘러 올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다수 회사는 지금 방어에 지쳐 있을 뿐, 포위를 풀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내놓지 못했다.
지금의 판세로 보면 텐센트는 이미 선수를 다 잡았고 서두르지 않고 군대를 움직이는 중이다. 텐센트 전략이 뛰어난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 텐센트가 진작에 쥐고 있는 몇 장의 필살 카드는 아직 세지도 않았다. 아마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공개될 것이다.
자, 이제 글 맨 앞의 그 질문으로 돌아가자.
텐센트, 뭘 하려는 걸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