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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둬완의 비장의 카드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 多玩的绝招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10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4259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99가지 수로 그를 칠 거라면, 왜 한 수로 끝내 버리지 않는가? 환쥐스다이(欢聚时代) 창립자 리쉐링(李学凌)

2012년 11월 22일, 환쥐스다이(Nasdaq: YY)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6억 600만 달러였다. 환쥐스다이는 둬완 게임망(多玩游戏网)과 YY의 모브랜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여전히 둬완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므로 이 글에서도 둬완이라고 부른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둬완은 e스포츠로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 그래서 e스포츠 이면사에 넣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발전사를 들춰 보면, 둬완의 오래된 직원 상당수의 출신 배경을 보든 지금 그 아래에서 크게 인기를 끄는 음성 채팅 서비스 YY 음성(YY语音)과 리그 오브 레전드 박스(英雄联盟盒子)를 보든, 둬완이 중국 e스포츠 이면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고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거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미래를 더 잘 지켜볼 수 있다.

둬완 게임망의 탄생은 대단히 화려했다

창립자 리쉐링과 총경리 장윈판(张云帆, 뒷날 178의 창립자)은 2005년 4월 둬완을 세우면서, 동시에 진산 소프트웨어 주식회사(金山软件, Kingsoft)의 회장이자 뒷날 샤오미(小米科技)의 창립자가 되는 레이쥔(雷军)에게서 100만 달러의 엔젤 투자를 받았다.

둬완 게임망의 출발점은 높았지만, 국내의 다른 많은 게임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수익이 골치 아픈 문제였다. 광고 수입으로는 회사의 일상 운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실제로 둬완 스스로도 2011년까지 계속 적자였다고 인정한다. 수입은 꾸준히 늘었지만 지출도 나날이 커졌다. 많은 사람이 모를 텐데, 둬완은 YY 프로젝트 팀의 기술 인력만 500명이 넘었다. 여기에 마케팅과 운영, 고객 지원과 유지 보수 인력, 그리고 막대한 서버와 대역폭 비용은 아직 넣지도 않은 것이다. 다행히 이 몇 해 동안 그 전망을 좋게 본 투자자들이 계속 있었고, 그래서 둬완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니 둬완의 이면사도 꽤 고달팠다. 처음부터 이야기해 보자.

철학과 출신의 IT인 리쉐링

1997년 리쉐링은 중국인민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니 전형적인 문과생이라 할 만한데, 그는 뉴스 보도뿐 아니라 IT 기술에도 대단히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프로그래머(程序员)》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소후 IT의 편집장도 했으며, 넷이즈(网易)의 편집장도 했다. 그의 인맥도 미디어 쪽에서 IT 쪽까지 걸쳐 있었다. 지금 둬완의 최대 주주인 레이쥔도 그가 베이징에서 IT 기자를 하던 시절에 알게 된 사람이라고 한다.

왜 리쉐링의 IT 애착을 이야기하는가? 그것이 뒤에 일어난 많은 일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지금 둬완의 사옥은 광저우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청 창의산업단지(羊城创意园) 안에 있다. 회사는 웹사이트, YY, 게임 사업부의 세 사업군으로 나뉜다. 번듯한 독립 사옥에 직원이 1,000명이 넘고, 주하이(珠海)에도 수백 명 규모의 연구개발 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의 둬완은 사람을 뽑는 것조차 어려웠다.

2005년, 리쉐링이 어떤 사람을 면접했다. 이야기가 잘 통했고 리 대표도 아주 괜찮다고 봤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며 나가더니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리쉐링은 이 일을 회사에서 여러 해 동안 이야기했다.

회사는 처음에 직원이 아주 적었다. 2006년 말에 싼무(三木, 지금 둬완 게임 편집장)가 입사했을 때 그의 사번은 35번이었다.

사람은 적었지만 회사 내부의 경쟁 구조는 치열했다. 프로젝트 PK 제도가 그때부터 생겼다. 좋은 게임 프로젝트는 누구나 맡고 싶어 했고, 맡고 싶으면 자기 기획안을 내서 경쟁해야 했다.

둬완 게임망의 초기 성장은 비교적 느렸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용자의 최초 축적이 가장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2006년 싱글 게임과 휴대용 게임기, 콘솔 게임 쪽은 하루 페이지뷰가 5만에 그쳤다. DKP 시스템과 길드 쪽은 얼마간 기색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했다. 직원들이 다 같이 게임 안에 들어가 사용자를 끌어오려고 외치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퍼펙트 월드(完美)의 《우린와이좐(武林外传)》 전용 구역을 만들어 페이지뷰 10만을 넘긴 뒤에야 둬완은 비로소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2006년 무렵,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이었다.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하고 싶어 했고 둬완과 둬완의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둬완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전용 구역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NGA, 곧 아제로스 국가지리(艾泽拉斯国家地理)는 이미 아주 잘 자라 있었다. 사용자는 NGA 포럼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런 습관은 바꾸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NGA 포럼은 여전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가장 활발한 포럼이다. 그러니 당시 둬완이 마주한 상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시장 구도에서 자기 사이트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둬완은 먼저 경쟁 상대와 플레이어의 수요를 꼼꼼히 분석했다.

논의와 분석 끝에 그들은 NGA의 약점 몇 가지를 찾아냈다.

  1. NGA는 줄곧 포럼 형태로 운영해 왔다. 사람들이 글을 올려 서로 이야기하고 반응하는 방식인데, 사실 이것은 온라인 게임 상위 사용자의 수요와 던전 관련 의문을 푸는 수요만 채워 줬다. 그때 NGA에는 편하게 검색할 수 있는 상세한 데이터베이스도, 분류가 또렷한 전용 구역 첫 화면 기능도 없었다. 그래서 초보 플레이어가 시작하기 어려웠다.

  2.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NGA에는 해외 내용을 번역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글 하나하나의 내용이 체계를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포럼은 글이 밀려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서 사용자가 어떤 사안의 전모를 또렷이 파악하기 어려웠다.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아야 이길 기회가 생긴다.

둬완은 NGA의 이런 문제들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했다.

  1. 완성도 높은 장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필터 방식을 다듬었다. 크고 작은 데이터를 사용자가 편하게 찾을 수 있게 했다.

  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전용 구역 페이지를 만들어, 해외에서 번역해 온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상세한 분류 배치로 정보를 한 페이지에 담아 플레이어가 편하게 볼 수 있게 했다.

  3. 게임의 밑바닥 사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주목했다. 각 서버에서 나오는 최신 문제를 모아 포럼에서 토론을 일으켰고, 낮은 단계 던전의 공략을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카라잔 10인 던전에 관한 모든 질문을 모아 정리했고, 심지어 각 직업이 그 던전에서 쓰는 특수한 운영법까지 정리해 냈다.

피라미드 밑바닥 사용자의 수요를 끝까지 파고든다는 둬완의 이 자리매김은 엄청난 보상으로 돌아왔다. 전략을 바꾼 뒤, 2008년 중반까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전용 구역이 페이지뷰 500만에 이르는 데 반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특히 짚어 둘 것은, 중하위 사용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주목하는 이 전략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둬완 리그 오브 레전드 박스의 추천 페이지에는 그때그때의 화제를 두고 벌이는 토론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며 남긴 경험이다.

2008년 둬완의 갈림길

2008년 둬완은 직원이 100명 남짓이었다. 광고 수주가 이미 많았는데도 여전히 적자였다. 당시 성다와 퍼펙트 월드 같은 국내 대형 게임 회사들이 둬완을 인수하고 싶어 했다. 아무래도 여론을 쥐는 편이 광고를 넣는 것보다 훨씬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외부 요인과 여러 내부 요인이 겹쳐 둬완 경영진 사이에도 큰 이견이 생겼다.

둬완 총경리 장윈판은 둬완을 팔고 싶어 했지만 리쉐링은 동의하지 않았다. 둬완이 앞으로 더 높이 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윈판은 둬완을 떠나 베이징으로 갔고, 리쉐링은 일부러 베이징까지 가서 장윈판과 며칠 밤낮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돌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끝내 장윈판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게임 미디어를 만들고 싶어 하던 투자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장윈판, 그리고 지금 178의 대표인 먀오신위(苗新宇)와 함께 178 사이트를 세웠다. 178도 e스포츠와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가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니 나중에 하겠다.

YY의 부상

2008년 7월, 디즈니 산하의 벤처캐피털 스팀보트(Steamboat)가 YY 음성의 잠재 가치를 높이 보고 둬완에 2차 투자로 500만 달러를 넣었다. (1차 투자는 2007년 2월 모닝사이드 벤처스(晨兴创投, Morningside Ventures)가 넣은 400만 달러였다.) 같은 해 YY는 동시 접속 30만 명을 넘겼다.

YY를 처음 만들 때는 기능도 기술도 아직 여물지 않아서 리쉐링은 날마다 각 채널에 들어가 사용자 불만을 들었다. 어떤 사용자는 정말 솔직해서, YY 안에서 욕이 모자랐는지 일부러 그의 QQ를 추가해서 마저 욕했다. 리쉐링은 그것도 참아 냈고, 이 습관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여전히 직접 회사 제품을 써 보며 사용자 경험을 꾸준히 개선한다.

YY는 왜 성공했을까? 심지어 그토록 강력한 텐센트와 겨룰 수 있었을까?

리쉐링은 늘 이렇게 말한다. 99가지 수로 그를 칠 거라면, 왜 한 수로 끝내 버리지 않는가?

이 말은 나에게 오컴의 면도날을 떠올리게 한다. 둬완은 이렇게 생각했고 이렇게 했다. 가장 핵심적인 지점을 붙잡아 핵심 문제를 풀고, 나머지는 채워 넣는 정도로만 한다.

이 말이 YY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둬완이 YY 플랫폼의 핵심 문제 세 가지를 빠르고 집중적으로 해결한 일이다. 렉이 없을 것, 접속이 끊기지 않을 것, 지연이 없을 것. 나머지는 천천히 고쳐도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이 둬완의 비장의 카드에 따라 YY는 플랫폼들이 흔히 하는 방식도 많이 걷어 냈다. 예를 들어 YY에는 팝업 광고가 없고, 로그인할 때 뜨는 뉴스 창도 없으며, 곳곳에 붙는 광고 띠도 없다. 필요 없이 실체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단히 뛰어난 전략이고 상당히 무서운 회사 문화다. 안정되고 정확하고 매섭다. 실용주의이고, 겉만 그럴듯한 동작은 하지 않으며, 실속 없이 띄우는 일도 하지 않는다. 먼저 심장에 칼을 꽂고, 나머지는 그다음에 이야기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YY도 그랬다

지금 사람들이 보는 YY는 오랜 기술 공략과 세부 수정을 거친 모습이다.

YY 1차 버전의 배치 화면은 아주 단순했다. 2차 버전의 패널 디자인은 지금 둬완망 YY 음악 사업부 총경리인 천저우(陈洲)가 했다. 이것은 YY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편이었고 이후의 화면 양식에 큰 영향을 줬다. 또한 YY는 오락과 음악을 진입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천저우는 YY의 운영과 성장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다.

둬완 사람들 자신의 말로 하면, YY의 성장은 사용자가 떠밀어서 이뤄졌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좋아하는 스타에게 꽃 같은 아이템을 선물할 수 있는 기능도 사용자가 제안한 것이다. 둬완은 그 위에 스타와 아이템 수익을 나누는 방식을 만들었고, 이 방식이 YY 특유의 건강한 생태계를 이뤘다. YY가 일반인 출신 스타를 붙잡아 두고 더 큰 결집력과 핵심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이 생태계다.

2012년에 이르러 YY의 게임 영상 생중계는 동시 접속 50만에서 60만을 기록했고, 많은 e스포츠 대회와 해설자가 YY를 중계 매체로 쓰기 시작했으며 수입도 꽤 볼만해졌다. 예를 들어 YY 90001, 곧 WE 클럽의 채널에서는 24시간 누군가 경기 해설을 하고, 잘하는 해설자는 아이템 수익 배분으로 한 달에 1만에서 2만 위안까지 가져간다. 대형 오락과 노래 채널의 수익은 더 높다. YY는 평범한 사람이 이름을 얻고 돈을 벌 수 있는 지름길이자 무대가 되었다.

YY도 여러 풍파를 겪었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어떤 회사의 부사장이 해커를 고용해 YY를 공격해서 한동안 YY가 자주 멈췄다. 둬완은 오래 조사한 끝에 공격한 해커를 잡았고, 그 실마리를 따라가 이 부사장을 찾아내 감옥에 보냈다.

YY의 곤경과 약점

YY는 이미 거대한 사용자층과 매출을 가졌지만, 전통적인 오락 방식의 수용자 규모에 견주면 여전히 비교적 작은 무리다. 예를 들어 YY에서 나온 일반인 가수와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 《중국 하오성인(中国好声音)》에서 나온 일반인 가수를 견주면 어느 쪽으로 보든 차이가 엄청나다. 이것은 YY라는 플랫폼이 아직 충분히 크지도, 충분히 높지도 않다는 뜻이다.

업계는 YY가 앞으로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폭발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많은 요인에 달려 있다.

기술 쪽에서 보면 모바일 광대역의 보급과 품질 향상, 요금 인하, 그리고 동영상 스트리밍 생중계가 더 빠르고 매끄러워질 수 있는지가 폭발의 병목이 되었다. 시장 쪽에서 보면 YY 주력 사용자인 1990년대생의 소비력이 자라는 속도, YY가 다른 연령층으로 시장을 넓히는 정도, 그리고 일반인을 스타로 다듬고 만들어 내는 수준이 YY의 현재를 바꿀 열쇠가 되었다. 이 모두는 YY가 앞으로 세울 발전 전략과 그 실행 효과에 달려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현 단계에서 YY는 텔레비전의 영향력과 아직 한참 멀고, 경쟁 상대들도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사용자층 성장은 기술과 시대 발전의 병목에 걸려 있다. 게다가 자체 비용이 너무 커서 수익을 내기가 더 어렵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풀리기 어렵다. 미래는 분명 좋아지겠지만 이 어중간한 시기가 얼마나 길지는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크게 갈 것인가 안정되게 갈 것인가. to be or not to be, 둬완이 어떻게 거는지에 달렸다.

둬완 박스

둬완이 e스포츠 정보 사이트를 만든 것은 아주 늦었다. U9 같은 게임 사이트는 2004년 무렵 워크래프트 3 RPG 지도 사이트 시절부터 e스포츠를 해 왔고, 그 덕분에 뒤이은 도타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황금기까지 상당히 많은 사용자를 자기 사이트에 모아 두었다. 리쉐링은 이것을 줄곧 부러워했고 e스포츠를 늦게 시작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2011년 2분기에 둬완은 리그 오브 레전드 전용 구역을 만들기 시작했고, 6월에 리그 오브 레전드 박스를 정식으로 내놓았다.

장기 유망주인 YY에 견주면 박스는 정말로 빠르고 효율 좋은 프로젝트였다. 어떤 게임이 인기면 그 게임을 만들면 되고, 기술 인력은 이미 갖춰져 있는 데다 다들 경험이 많았다. 사용자는 게임을 켜기 전에 먼저 박스를 켜는 습관이 들었고, 뉴스와 포럼의 화제가 플레이어 앞에 곧바로 밀려 나왔으며, 트래픽 유입은 대단히 정확했다. 게다가 남의 게임이 인기를 끌수록 박스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 박스 하나가 둬완 자체 사이트의 콘텐츠와 YY, 기술 자원을 전부 통합했다. 정말 좋은 물건이었다.

박스 팀의 책임자는 후톈위(胡天宇)다. 프로그래머 출신이고 예쯔주(叶子猪)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둬완에 소프트웨어를 팔러 왔다가 리쉐링에게 붙잡혀 합류하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둬완의 임원 대부분은 기술 인력 출신인데, 나는 이것이 리쉐링의 IT 편애와 관계가 크다고 짐작한다. 이것이 둬완의 실용주의적인 회사 색깔도 다져 놓았다.

처음에 리그 오브 레전드 박스는 사용자가 아주 적었다. 기능이 적었고 사용자 수요도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다른 플러그인과의 경쟁도 많았다. U9이 낸 LOL 어시스턴트(LOL助手), 178의 다자오(大脚), 17173의 선덩(神灯) 같은 것들이다.

2011년 9월, 박스는 같은 편과 상대편의 승률 정보를 볼 수 있는 기능을 내놓았다. 그때는 다들 게임 안의 초보 팀원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터라 이 기능은 나오자마자 널리 환영받았고 큰 시장 점유율을 가져갔다.

2011년 말, 박스는 여세를 몰아 전투력 시스템을 내놓아 남과 견주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의 욕구를 채웠고, 2012년 초에는 아이템 추천 기능을 내놓아 초보 플레이어의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이렇게 빠른 연속 공세를 거친 뒤 박스는 다른 경쟁 상대들의 시장 점유율을 사실상 다 잠식했다. 이후 1년 동안 둬완은 뉴스, 포럼, YY 소대 음성 채팅, YY 대회 생중계 같은 기능을 박스와 통합해 묶었다. 이로써 둬완은 이 판을 완전히 홀로 차지하게 되었다.

2011년 11월, YY 음성의 연간 음성 서비스 시간은 4,210억 분으로 같은 시기의 스카이프를 넘어섰다. 2012년 2월, 둬완 게임망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는 1억을 넘었다.

지금 환쥐스다이는 회사 자원의 통합을 마쳐, 둬완 게임망이 콘텐츠를 만들고 YY와 박스가 통로가 되며 게임 운영으로 수익을 내는 순환 발전 모델을 이뤘다. 또 2009년부터 전 직원에게 주식을 배분해 착실하고 안정된 회사 문화를 세웠다.

끝으로, 환쥐스다이가 중국 e스포츠에 더 많은 발전 기회를 만들어 주기를, 그래서 함께 e스포츠라는 파이를 더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