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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WCGC에서 쓴 KULOU.CSA의 한국 여행기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에 함께 실린 사료 단편. 글쓴이 kulou.csa는 첫 WCGC에 나간 중국 스타크래프트 대표 선수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KULOU.CSA韩国之旅 写于2000年WCGC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6년 11월 18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23774762

이 번역은 2026년 8월 4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글. kulou.csa. 2000년 WCGC에 참가하고 돌아온 뒤에 씀.

초가을, 중국 스타크래프트 대표팀의 선수 네 사람이 한국에서 열리는 WCGC 대회에 중국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6일, 우리는 베이징 서우두 공항(首都机场)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시간 반을 날아 한국에 닿았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공항에 사람을 따로 보내 중국 대표팀을 맞이했다. 조직위원회는 아주 세심했다. 우리를 맞은 사람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한바탕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겉면에 World Cyber Game Challenge라고 찍힌 대형 버스에 올랐다.

차 안에서 안내를 맡은 사람이 알려 주었다. 저녁에 주최 측이 서울의 이름난 신라호텔에서 큰 연회를 열어 참가 선수 전원을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말을 배우면 저 말을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안내원의 친절이 고마웠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주최 측이 다른 선수들을 서울의 어느 공원으로 데리고 나간 뒤여서, 그 자리에는 늦게 도착한 선수 몇 사람만 있었다. 우리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직원 몇이 커다란 판을 메고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대회 추첨이 끝난 조 편성표였다. 그래서 우리는 호텔 밖으로 뛰쳐나가 그 판을 쫓아 달렸고, 직원들은 큰 트럭 앞에서야 겨우 멈춰 섰다.

각자 자기 조를 살펴보았다. 반가운 쪽도 있었고 걱정스러운 쪽도 있었다. 그래도 다들 겹겹의 예선을 뚫고 한국까지 온 선수들이니 누구를 만나든 만만할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선수가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전체가 순식간에 붉은 바다로 바뀌었다. 선수들이 모두 조직위원회가 나눠 준, World Cyber Games라고 찍힌 붉은 경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광경은 대단히 장관이었다.

모두 배틀넷에서 이름을 떨친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마음이 절로 들떴다. 같은 자리에서 겨룰 수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었다. 속으로도 생각했다. 이 드문 기회를 꼭 살려서 외국의 이름난 고수들에게도 중국을 알려야겠다고.

저녁에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중간에 노래와 춤 같은 순서가 몇 가지 마련되어 있었고, EA 아시아 사장이 나와 발언했다. 마지막에는 북소리 속에 연회가 끝났다.

연회가 끝난 뒤 버스가 선수들을 숙소로 데려갔다.

숙소는 리조트였다. 둘레가 아주 조용했고 시설도 꽤 좋았다. 우리 스타크래프트 대표팀은 3층 맨 끝에 묵었다. 방에는 가구가 조금 있었고 텔레비전과 전화와 욕실이 있었다. 게다가 취사도구까지 있어서 직접 해 먹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온돌이 있으니 감기에 걸릴 일은 절대 없었다. :)

안에는 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컴퓨터실이 두 곳 있었다. 아쉽게도 컴퓨터가 조금 모자라 한 사람에 한 대씩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옆에 서서 외국 고수들끼리 붙는 것을 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각국 선수들은 금세 서로 어울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데가 조금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게임에 미친 사람들이었고, 언어가 우리 사이의 대화를 막지는 못했다. 외국 고수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쉬웠고 잘난 척하는 법도 없었다. 우리도 이 기회에 그들과 몇 판 겨뤄 보았다.

그런데 한창 열을 올리며 붙고 있을 때 주최 측이 쉬라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연회에 갔으니 좀 피곤하기도 했고, 대회는 아직 여러 날 남아 있어서 고수들과 겨룰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해가 이미 높이 떠 있었다. 방 안의 방송이 선수들에게 아래층에 모이라고 재촉했다. 곧 경기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경기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숙소에서 경기장까지는 차로 45분쯤 걸렸고, 우리는 금방 경기장에 닿았다.

대회는 한국에서 가장 큰 놀이공원인 에버랜드에서 열렸다. 안에는 놀이 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었고, 대회에 온 선수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긴장된 경기가 끝난 뒤 놀이공원 안에서 마음껏 쉴 수 있었다.

이날은 개막식만 있었고 정식 경기는 없었다.

우리는 먼저 에버랜드 안에 있는 PC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PC방은 대단히 호화로웠고,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와 얼마나 다른지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안에는 200대 가까운 컴퓨터가 있었고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가운데에 컴퓨터 네 대를 놓고, 나머지 컴퓨터는 모두 그 네 대를 둘러싸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이 PC방에는 한국의 프로 선수들이 자주 들어와 연습 경기를 했고, 한가운데의 네 대는 그들의 연습 전용이었다. 게다가 옆 벽에는 초대형 화면이 걸려 있어서 프로 선수들끼리 하는 연습 경기를 그대로 중계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 큰 화면으로 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뒤에 며칠 동안 경기를 치르면서 본 광경이다.

한동안 인터넷을 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놀이공원 안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었다. 대회 기간에는 점심과 저녁을 모두 놀이공원 안의 식당에서 먹었다. 참가 선수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쪽 선수여서인지 대회가 선수들에게 내놓는 음식은 모두 양식이었다. 그래서 우리 중국 선수들은 몹시 익숙하지 않았고, 중국 선수 대다수가 잘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마친 뒤 우리는 정식 경기가 열리는 곳으로 갔다. 에버랜드 안에 있는 극장이었고 관객석이 몇백 석 있었다. 무대 좌우에 큰 화면이 두 개 있어서 관객에게 명승부를 그대로 중계했다.

오후에 이곳에서 개막식이 열릴 예정이어서 무대 한가운데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지 않았다. 기다린 끝에 WCGC 개막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선수들은 훌륭한 노래와 춤을 많이 보았는데, 중국 국내의 게임 대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측은 한국에서 가장 이름난 남자 가수를 무대에 올려 선수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었고, 심지어 한국 문화부 장관까지 불러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게 했다.

문화부 장관이 게임 대회 현장에 직접 왔다는 것만 봐도 한국에서 게임의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막식이 끝난 뒤 우리는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전시 구역 몇 곳을 둘러보았고, 그것으로 이날 일정은 끝났다. 버스가 선수들을 모두 리조트로 데려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수들이 앞다투어 컴퓨터실로 내달렸다. 늦으면 자리를 잡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낸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우리 몇 사람이 느긋하게 컴퓨터실에 갔을 때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빈자리는 말할 것도 없이 없었다. 우리는 옆에서 고수들의 대결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 선수 몇 사람이 특히 눈길을 끌었고, 그들 뒤에는 구경하는 선수들이 가득 서 있었다. 내가 받은 느낌은 한국 선수 몇 사람의 손이 무서울 만큼 빠르다는 것이었다. 번개처럼 빠르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대체로 느린 편이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다음 날 경기가 있어서 우리는 몇 판만 보고 쉬러 갔다. 조금 긴장되면서도 조금 기대가 되었다. 어쨌든 이만한 규모의 국제 대회에 나갈 기회는 처음이었다.

10월 8일, WCGC가 드디어 정식 경기의 막을 올렸다.

경기 일정은 이렇게 짜여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와 퀘이크 3가 하루, FIFA 2000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가 하루, 이렇게 네 종목이 하루씩 번갈아 열려 대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경기 시간이 대단히 넉넉했다. 선수 한 사람이 하루에 치르는 경기는 보통 세 판을 넘지 않았고, 선수들은 쉬면서 몸 상태를 조절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경기의 수준도 그만큼 지킬 수 있었다. 어쨌든 경기가 볼만한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다.

첫날은 스타크래프트와 퀘이크였다. 그래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FIFA에 나가는 여덟 사람은 우리와 함께 출발하지 않고 리조트에 남아 연습하기로 했고, 스타크래프트와 퀘이크에 나가는 우리 여덟 사람은 채비를 마치고 나섰다.

11시, 우리는 인솔을 맡은 acep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탄 것이 바로 한국 팀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차 안에서 내내 웃고 떠들었고, 중국 쪽 몇 사람은 하나같이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마 다들 이런 대회가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던 것 같다.

에버랜드 안의 경기장에 도착한 뒤에는 먼저 식사를 했다. 이건 더 말하지 않겠다. :) 오후 경기가 곧 시작될 참이었다. 극장 무대에는 컴퓨터가 30여 대 놓여 있었고, 먼저 20분 동안 선수들에게 기기를 시험해 보게 했다. 그제야 경기용 컴퓨터의 사양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경기용 컴퓨터는 상당히 좋았다. 모두 펜티엄 3 800에 메모리 256MB였고, 퀘이크 3를 돌리면 초당 130프레임쯤 나왔다. 물론 다른 종목 선수들은 컴퓨터에 그리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키보드와 마우스만 손에 맞으면 되었고, 대부분의 선수는 자기 마우스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경기용 컴퓨터를 두고 선수들이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마우스가 없어서 경기장에서 주는 것을 썼는데 쓰기에 괜찮았다.

대회 주최 측은 꽤 친절했고 선수가 무엇을 물어도 다 답해 주었다. 게다가 영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따로 불러 경기장에서 진행을 맡겨서, 말이 통하지 않아 경기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일을 막았다. 기기를 시험하는 동안에는 꽤 유창한 중국어를 하는 여성이 와서 문제가 없는지 물었다.

기기 시험이 끝나고 정식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중 HeNRY_HO의 컴퓨터는 USB 드라이버 문제로 몇몇 키가 잘 듣지 않았다. 결국 타이완 선수와 프랑스 선수에게 한 판씩 내주고 아쉽게 탈락했다.

PBY.csa와 ID_eat은 한 판씩 이기고 한 판씩 져서 32강에 올랐고, 나는 두 판을 이겨 역시 32강에 올랐다.

퀘이크 쪽에서는 ID_CHJ가 조별 상대들의 실력이 모두 강해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고, 나머지 세 선수는 모두 무난히 32강에 올랐다.

전적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저녁에 리조트로 돌아왔다. 9일에는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없어서 우리는 컴퓨터실이 문을 닫을 때까지 놀다가 나왔다. 그런데 12시면 문을 닫았으니 좀 이른 편이었다. :)

9일은 하루 종일 리조트에서 연습했다. 저녁에 소식이 왔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FIFA 선수들이 모두 1라운드를 통과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종목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들을 위해 기뻤다.

그러나 10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잇따라 무너졌다. 13일에는 모든 선수가 탈락했다. 4강에 들어 상금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우리가 국제 대회에 처음 나간 것이니 이만한 성적이면 괜찮은 편이다. 대단히 아쉬운 것은 내가 스타크래프트에서 12강에 그쳐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일이다.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경기가 이어지면서 탈락하는 선수가 계속 나왔기 때문에 대회 측은 서울 관광 일정을 마련했다. 10일부터 14일까지 날마다 선수들이 고를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있었고, 민속 구역과 전자 상가 같은 곳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12일까지 경기가 있어서 가지 못했고, 탈락한 뒤에는 놀러 나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도 가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다녀왔고 저마다 한 보따리씩 사 왔다.

11일 저녁에는 주최 측이 파티도 열었다. 뷔페가 나왔고 한국식 고기구이도 있었다. 한국식 고기구이가 아주 맛있다는 말은 진작에 들었는데 이번에 마침내 제대로 된 것을 보았고, 맛은 정말 좋았다. 식사를 마친 뒤 모든 선수가 리조트 광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여러 나라 선수들이 무대에 올라 격렬한 춤을 추었는데 몹시 웃겼다. 즐거운 밤이었다.

14일에는 우리가 모두 탈락한 뒤였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선수 전원과 acep이 에버랜드 옆의 수영장에 가서 한 바퀴 놀고 왔다. 마음을 풀고 나니 패배도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음가짐을 다잡고 앞으로의 도전을 맞을 준비를 했다.

14일과 15일은 결승의 날이었고, 한국 선수들의 날이기도 했다. 이틀 동안 네 종목의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 번 승리를 외쳤다. 그들은 퀘이크에서만 전면적으로 밀렸을 뿐, 나머지 세 종목의 우승을 모두 가져갔다.

그중에서도 FIFA가 특히 심했다. 한국 선수들이 상위 네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상위 네 자리 가운데 셋을 차지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서도 한국 선수 두 명이 4위 안에 들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었다.

15일 저녁에는 모든 종목이 끝났다. 이어서 시상식이 있었다. 유력 인사 몇 사람이 각 종목의 입상자에게 금메달과 은메달과 동메달을 걸어 주고 큰 수표와 꽃다발을 건넸다. 그리고 종목마다 시상이 끝날 때마다 큰 화면에 우승자의 나라 국기가 떠오르고 국가가 울렸다.

얼마 전 끝난 올림픽 시상식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바깥에서 World Cyber Game Challenge를 게임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상대 위에서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시상대에 중국 사람이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 WCGC에서 중국 선수들이 모두를 놀라게 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시상식은 금방 끝났고, 주최 측은 에버랜드의 어느 광장에서 환송 행사를 열었다. 또 한 번 뷔페였고 한국식 고기구이도 있었는데, 모두 한국 요리사들이 그 자리에서 구워 냈다. 그날 밤은 기온이 아주 낮았지만 선수들은 그래도 실컷 먹었다.

배불리 먹고 마신 뒤에는 한국 춤 공연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무대 위로 몰려 올라가 디스코를 추었다.

이때가 되니 선수들 사이에는 경기도 없고 경쟁도 없었다. 남은 것은 우정과 즐거움뿐이었다. 다들 마지막 시간을 놓치지 않고 서로 연락처를 남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I_love.star와 GoRuSh를 찾아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승자와 준우승자와 함께 남긴 기념이었다.

리조트로 돌아가기 전 에버랜드 하늘에 눈부신 불꽃이 올랐다. 리조트로 돌아온 뒤에도 많은 선수가 방에 모여 밤새 술을 마셨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은 다 말할 수 없었다.

열흘 동안의 한국 여행에서 나는 한국 사람들이 게임에 얼마나 뜨거운지, 그리고 게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꼈다.

이를테면 이번 대회를 위해 에버랜드 한복판에 큰 화면을 세워 두고, 경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대회 광고 같은 것을 쉬지 않고 내보냈다. 놀이공원에 놀러 온 손님이라면 대개 그것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무대도 따로 세워 두고, 행사 도우미들이 온종일 손님들에게 WCGC를 소개하고 전단을 나눠 주었다.

에버랜드 극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아래쪽에는 게임에 관심 있는 손님들이 자주 가득 모여 경기를 보았다. 마지막 결승에는 관객석에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텔레비전에서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생중계로 보는 일이 잦았고, 한번은 서른 몇 살쯤 된 부부가 2대2 경기를 하는 것도 보았다.

한국에서는 게이머의 나이 폭이 대단히 넓다. 마흔, 쉰이 되어서도 게임을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반면 중국에서는 서른이 넘은 게이머를 보기가 드물다. 게다가 한국에는 여성 게이머가 대단히 많고, 텔레비전에서 본 스타크래프트 경기는 거의 다 여자 경기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여성 게이머는 아마 진귀한 동물처럼 여겨질 것이다.

아, 중국 게이머에게 봄은 언제쯤 올까?

WCGC 대회는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한국에서 보낸 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