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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증언. NeoTV 전 총경리 슝젠밍(熊剑明, Neo)이 직접 말하다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를 위해 모은 당사자 증언.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当事人篇 NeoTV前总经理熊剑明Neo亲述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23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21437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편집자 BBKinG의 말. 내가 쓴 《중국 e스포츠 이면사》의 제8장 "NeoTV와 PLU, 은원의 기록"이 나간 뒤 그 글은 여러 방면의 관심을 받았고, 특히 그때의 당사자들이 잇따라 자기 견해를 밝혔다. 나는 그것을 모아 정리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 둘 것이 있다. 이 글의 내용은 모두 정보를 제공한 당사자의 확인을 거쳤다. 나는 역사를 정리하는 사람으로 존재할 뿐이고, 사람마다 각도와 경험이 다르니 빠짐과 잘못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나 개인은 누구를 칭찬하거나 깎아내릴 뜻이 없다. 그것은 내가 이 연재를 쓰는 목적이 아니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만 독자가 주의할 것이 있다. 당사자가 직접 말한 내용 가운데 일부는 주관적인 감정과 이해관계가 뚜렷이 배어 있을 수 있다. 여러 이야기를 서로 견주어 가며 스스로 가려 읽을 필요가 있다.

아래는 NeoTV 전 총경리 슝젠밍 Neo가 직접 쓴 글이다. 그는 따로 메일로 게재를 허락해 주었다. 문단 형식과 문장 부호 몇 개를 빼면 나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글. 슝젠밍 Neo

BBKinG의 블로그를 보니 많은 장면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BBKinG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잘 썼다. NeoTV에 관한 세부에 틀린 곳이 많기는 하지만.

어느새 e스포츠를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몇 가지 기억은 지금 적어 두지 않으면 나 자신도 곧 잊어버릴 것 같다.

1. e스포츠, 그리고 유시펑윈(游戏风云)과의 인연

BBKinG이 나를 등장시키며 쓴 첫 문장은 이렇다. "2005년, 텔레비전 미디어 쪽 출신인 슝젠밍(Neo)이..." 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텔레비전 미디어에서 만든 것은 줄곧 게임 콘텐츠였다. 나는 몇몇 친구에게 늘 말해 왔다. 내가 중국에서 e스포츠를 처음 화면에 올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2002년 말, 스물세 살이던 나는 신화통신사와 전신(电信) 같은 국유 기업의 괜찮은 대우를 버리고 급여를 깎아 가며 한 사람과 창업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황하오(黄昊)다. 그때 우리는 《유뎬펑쾅(游点疯狂)》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상하이 텔레비전 라이프스타일 채널(生活时尚频道)에서 매주 금요일에 나갔고, 종합 게임 정보와 특집 프로그램 말고도 "CS 텔레비전 대회"라는 고정 코너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당시 상하이 지역 시청률은 종합 프로그램 가운데 줄곧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래서 2003년 그 무렵 상하이에 CS 열풍이 일었고, 중국의 인터넷 카페인 PC방(网吧)마다 자리가 꽉 찼다. 서른 살이 넘은 상하이 게이머 상당수는 그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e스포츠를 처음 화면에 올린 사람"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다른 것이라고는 여행 위성 채널 뤼유웨이스(旅游卫视)의 《유시둥시(游戏东西)》뿐이었고, 그마저 비디오 게임 소식을 다루는 정도였다. 다른 프로그램은 본 적이 없다. CCTV의 《e스포츠 세계(电子竞技世界)》는 거의 1년 뒤에야 방송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이미 CS 텔레비전 대회, FIFA 텔레비전 대회 같은 텔레비전 경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상하이 지역에만 머물렀다.

원광(文广)의 진행자 주전(朱桢)과 주리예(朱丽叶)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진행자 가운데 "다샤(大虾)"라고 불린 장루이(张锐)가 있었다. 다샤는 중국 인터넷에서 고수를 부르는 말이고, 글자 그대로는 "큰 새우"다. CS 경기 해설은 우창(吴强)과 페이잉(飞影)이었다. 페이잉은 "나는 그림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들을 보면 유시펑윈 사람들에게는 낯익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SiTV가 GamesTV를 막 만들었을 때의 그 무리다.

나는 왜 GamesTV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때 그 프로그램 회사는 나와 황하오, 프로듀서 천란란(陈岚岚) 세 사람이 전부였다. 장루이는 인턴이었고 우창도 자기 일이 따로 있었다. 나는 2004년에 이 프로그램을 떠났다. 프로듀서가 번 돈을 규모를 키우는 데 쓰지 않고 자기 집을 사는 데 썼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콘텐츠 기획, 대본, 연출, 촬영, 후반 작업, 특수 효과를 도맡았고 가끔 진행까지 겸했다. 그때 나는 홧김에 그 회사를 나왔다.

최고의 폭로. 후난 위성TV의 간판 왕한(汪涵)이 하마터면 e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가 될 뻔했다.

나는 줄곧 게임 프로그램을 좁은 시장에서 대중 오락 시장으로 끌어내고 싶었다. 회사를 떠난 또 다른 이유도 더 나은 투자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2003년 말 우리는 차오양로(曹杨路)에 1000제곱미터가 넘는 공간을 지었고, 나는 《뎬완싱둥(电玩行动)》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사진) 이것은 e스포츠를 예능 프로그램 형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이고 한 회가 한 시간이었다. 파일럿을 찍을 때는 텔레비전 스타 쑨싱(孙兴), 당시 국가대표 축구 스타 치훙(祁宏) 등을 불렀다. 스타 효과로 게임 프로그램 붐을 일으키고 싶었다.

진행자로는 그때 아직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왕한을 찾았다. 왕한은 그 무렵 상하이 둥팡 텔레비전(东方台)에서 《훠룽촨치(火龙传奇)》라는 예능 게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왕한이 유머 있고 재치 있다고 보아 그의 매니저를 찾아갔다. 왕한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때 내가 프로그램을 만들던 방식, 그리고 그전에 만난 진행자들의 방식은 다 이랬다. 우리가 원고와 대본을 써 주면 그들이 그대로 읽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미리 준비를 마쳤고, 파일럿을 녹화하는 날 왕한을 만나 두툼한 원고 뭉치를 건넸다. 그는 한 번 훑어보더니 필요 없다고 했다. "감독님,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과 이루려는 목표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완성된 파일럿이 내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왕한은 현장 분위기를 계속 끌어올렸고 모두를 크게 웃게 만들었다. 그가 있는 이 프로그램은 아주 돋보였다. 파일럿을 다 찍고 나는 곧바로 그의 매니저와 1년 계약을 논의해 회당 금액까지 정했다.

다음은 둥팡 위성 채널(东方卫视)과 방송을 논의하는 일이었다. 그때 둥팡 위성 채널 부사장 완룽(万荣)과 쉬웨이(徐威)를 각각 만났다. 완룽은 현재 중국 미디어 그룹(中国传媒集团) 부총재다. 쉬웨이는 뒷날 상하이 엑스포 홍보부장을 지냈고, 나는 2010년에 그와 다시 협력했으며, 그는 현재 상하이시 정부 신문판공실 주임이다. 내 프로그램을 위성으로 올려 전국에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방송국에 파일럿을 심의받았고 방송 조건도 합의해 주말 시간대 하나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그때 투자자는 1000만 위안을 추가로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4년 4월 무렵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던 때에 비극이 일어났다. e스포츠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비극이다. "4월 12일, 국가광전총국이 《컴퓨터 온라인 게임류 프로그램의 방송 금지에 관한 통지》를 정식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다음이 없었다.

그리고 왕한은 후난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징스(经视)에 있었고, 나중에 위성 채널의 프로그램 하나를 맡았다. 《슈퍼 걸(超级女声)》이다.

하늘은 왕한에게 나쁘지 않았다. 내 프로그램 때문에 슈퍼 걸을 놓치지는 않았으니.

2. NeoTV의 설립

어느새 2005년이었다. 그해 나는 스물다섯이었다.

그해 인터넷 영상이 막 시작되었고, 국가도 디지털 텔레비전 산업을 세우는 일에 착수했다.

BBKinG이 NeoTV를 여는 장면으로 쓴 대목으로 돌아가자. "2005년, 텔레비전 미디어 쪽 출신인 슝젠밍(Neo)이 게임 텔레비전 채널 기획안을 들고 당시 상하이 문화계에서 제법 무게가 있던 사람인 장순더(张顺德)를 찾아갔다. 이 사람이 이 글을 쓰는 시점에 NeoTV의 사주인 린위신(林雨新, Ken)의 작은아버지다. 장순더가 기획안이 괜찮다고 보아 린위신 가문이 돈을 냈고, 2006년 초 NeoTV가 세워졌다. 당시 Ken은 아직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슝젠밍이 그때 NeoTV의 실무 책임자였다."

사람과 시기는 맞다. 그러나 진짜로 무게가 있던 사람은 장순더가 아니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해 보겠다.

2005년, PPS와 PPLive와 QQLive가 나오고 국가가 디지털 텔레비전 콘텐츠를 만들자고 부르는 흐름 속에서 나는 게임 프로그램의 두 번째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때 휴대전화 영화 프로젝트 하나 때문에, 아직 선장 영상(申江影视)에서 총경리로 있던 장순더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내 프로젝트가 괜찮다고 보았고 자기 형이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그의 형 장성더(张圣德)를 만났다. 지금 NeoTV를 이끄는 린위신의 아버지다. 장씨 집안은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내 프로젝트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장성더는 원래 정부에서 부동산을 관리하던 사람이고 주된 사업은 부동산 거래였다. 그는 내 프로젝트를 들고 여기저기 투자자를 찾아다녔다. 몇 차례 실패한 끝에 장씨 집안과 사이가 아주 좋던 부동산업자 한 사람이 첫 자금 20만 위안을 냈다.

진짜로 무게가 있던 사람은 양보(杨博)다. 상장사 주하이 헝퉁 그룹(珠海恒通集团)의 전 회장이다. 유명 감독 셰진(谢晋)이 살아 있을 때 가장 많이 함께 일한 투자자로, 여러 편의 영화와 상하이 사범대학의 셰진 예술학교 투자가 여기 들어간다. 셰진 예술학교의 원래 이름은 셰진헝퉁 예술학교다. 이 투자자는 장씨 집안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본래 협력할 뜻은 없었다. 나를 알게 된 뒤 두 번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튿날 변호사를 불러 투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사실 NeoTV를 세운 첫해에 장씨 집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 프로젝트를 쓰고 자기 집안 변호사가 판을 짜서, 투자자가 증자 자금이라고 여긴 돈을 기존 주식을 사는 돈으로 바꿔 놓았다. 그렇게 시작부터 대주주이자 진짜 투자자에게서 200만 위안을 먼저 빼 갔다. 이 일은 내가 투자자에게 면목이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양보는 내 프로젝트의 앞날을 보고 협력을 이어 갔다.

NeoTV 설립 초기에 린위신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른바 임시 대리인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NeoTV가 왜 NeoTV겠는가. 나를 아는 사람은 안다. Neo라는 이름은 내가 1999년에 UO, 곧 《울티마 온라인(网络创世纪)》을 하던 때부터 쓰던 것이다.

NeoTV에는 그때 마스코트도 하나 있었다. 곰이다. 내 성 슝(熊)이 곰이라는 뜻이다.

3. GamesTV, PLU와의 "은원"

e스포츠판 사람들은 아마 이 대목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은원"이라는 두 글자를 나 개인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CEO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 두 동종 업체의 생각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BBKinG의 글을 보니 한 번 돌아보고 나를 살펴보고 싶어졌다.

2006년 뒤 우창, 황하오, 장루이 등 한 무리는 《유뎬펑쾅》이 방송을 멈춘 뒤 게임 프로그램을 다시 띄울 플랫폼을 찾아냈다. 원광의 SiTV다. SiTV는 처음에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고, 게임 가상 화폐 거래를 하는 회사 하나가 투자로 들어오고서야 사정이 나아졌다.

솔직히 그때 GamesTV의 예산은 NeoTV의 네다섯 배가 넘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체제 안의 기업에서 나온 사람은, 그런 자리에 앉은 책임자들이 무대를 예쁘게 꾸미는 것 말고는 미디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돈을 낭비하는 것 말고 큰일은 해내지 못한다. 게다가 IGE 쪽 투자자는 텔레비전 미디어를 전혀 몰랐다. 그때 원광과 맺은,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통째로 넘기는 식의 협력은 언젠가 다 짜인 뒤 삼켜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신경 쓴 것은 가진 것 없이 열정만 가득한 한 무리였다. 아주 힘든 환경에서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플레이어 길드(PLU) 말이다. 처음 PLU에 가서 왕줴(王珏)와 동료들의 그 허름한 스튜디오와 허름한 방송 장비를 보았을 때, 존경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도 GamesTV와 사이가 틀어진 이야기를 먼저 끝내고, 내가 PLU에 무엇을 했는지 말하겠다.

GamesTV와의 "원한"은 WCG에서 비롯되었다. WCG는 내가 NeoTV를 세울 때 첫 번째로 따내려고 계획한 "상품"이었다. 새 기업에는 자기만의 돋보이는 상품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하니 콘텐츠가 곧 상품이었다. 그리고 그때 e스포츠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무게가 있는 것은 당연히 WCG였다.

BBKinG의 글에는 Cody가 나온다. 텐센트 e스포츠 플랫폼의 전 책임자다. 그와 나는 내가 게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던 때 이미 알던 사이다. NeoTV를 세우던 무렵은 마침 텐센트가 WCG 인터넷 협력을 따낸 해였다. Cody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에게 나와 WCG 사이의 협상을 도와 달라고 했다.

머지않아 나는 WCG의 중국 주최권이 텐센트가 아니라 중앙텔레비전 산하 상장사인 CTV 중스촨메이(中视传媒)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스촨메이와 몇 달을 협상해 우리는 WCG 중국 지역 인터넷 독점 중계 권리를 얻었다.

그때 GamesTV가 중국 지역 중계권을 얻지 못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권리가 CCTV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CCTV가 원광에 줄 리는 없었다. NeoTV는 CCTV가 잘 키울 수 있었던 새로운 미디어 상대였다. 아쉽게도 뒤에 내가 물러나면서 일이 그 방향으로 가지는 못했다.

(내가 좀 거만해 보이는가. 간단히 증명해 보겠다. 떠난 뒤 지금까지도 나는 중앙텔레비전과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지금 내가 경영하는 회사는 중앙텔레비전 10번 과학교육 채널의 시왕즈싱(希望之星) 영어 경연 대회 전국 조직위원회의 협력 기관이고, 나 자신은 방송국 총편집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시왕즈싱 전국 조직위원회 위원이다. www.cctvoe.com 공식 사이트에 명단이 있다.)

그러니 GamesTV 사람들은 그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우리를 못마땅해했다. 사실 우리는 다투지 않았다. 그 일이 그들 손에 갈 수도 없었다.

두 번째로 사이가 틀어진 것은 WCG 세계 결승 중계 때문이다.

BBKinG은 이렇게 썼다. "하나는 그해 Neo가 100만 위안을 내고 중계권을 샀다는 말이 있는데, 이 일은 Ken조차 몰랐다. 이것이 뒷날 Neo가 Ken에게 팀에서 밀려난 주된 이유가 되었다."

첫째. 나는 총경리이자 주주이고 창업자였다. 이사회 결의나 내 발로 나가는 것 말고 누가 나를 내보낼 수 있는가. 그것도 Ken이 내보냈다고. 물론 BBKinG도 이건 들은 이야기라고 적어 두었다.

둘째. WCG 중계권은 돈을 주고 산 것이 맞고, 이 일은 모든 이사가 강하게 지지했다. 또 이것은 회사가 뒤에 WCG 주관권을 따내고 NeoTV가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일이다.

이 사실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WCG 세계 결승 중계권 때문에 생긴 작은 은원을 이야기하겠다.

그때 GamesTV는 아직 우창이 이끌고 있었다. 위쪽 책임자들이 WCG 세계 결승 중계 권리를 반드시 따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원광의 자금과 예산은 내 1년 치의 대여섯 배쯤 되었다. WCG 중국 지역을 얻지 못한 것만으로도 이미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그들은 세계 결승을 가져가겠다고 공언했다. 우리가 1년 동안 앞에서 밑작업을 해 준 셈이 되게 말이다.

먼저, 중계권을 돈 주고 사는 일은 내가 먼저 꺼낸 것이 아니다. GamesTV가 끼어들면서 한국 쪽에 값을 올릴 여지가 생겼다. 다만 뒤집어 말하면 한국 쪽도 어리석지 않았다. 돈 말고도 여러 요소를 당연히 함께 따졌다.

NeoTV에는 여러 강점이 있었다.

  1. 그해 중국 지역 결승의 현장 중계는 삼성 사장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동시에 텐센트의 Cody가 우리와 손발을 맞춰 그해 WCG 방송 전체의 아주 좋은 데이터 보고서를 그들에게 건넸다. 전파력은 삼성이 대단히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2. 나는 중스촨메이를 통해 삼성에 압박을 넣었다. 세계 결승을 따내는 일은 나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하던 때 중스촨메이는 중국 국가 텔레비전 방송국의 이름으로 WCG 조직위원회에 보증을 서며, 우리와의 협력을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서한은 표현이 아주 적절했고 나는 지금도 그것을 갖고 있다.

1년을 준비했으니 결승 중계에서는 당연히 GamesTV보다 나았고, 마지막에는 한국 쪽도 값을 불렀다. 우리는 몇 차례 흥정을 거쳐 WCG 세계 결승 2년 협력 계약을 맺었다. 조건은 10만 달러였고, 이듬해는 이 금액에서 10%를 넘지 않기로 했다.

동시에 WCG는 NeoTV를 WCG 글로벌 공식 사이트 첫 화면에 올려 미국의 GGL과 나란히 두었다.

GamesTV는 우리가 콘텐츠 값을 올려놓았다고 줄곧 말한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e스포츠 대회 세계 결승 독점 중계에 10만 달러가 비싼가. 같은 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3년 치 중계권을 5000만 달러에 팔았다. 외국 상대에게 콘텐츠를 공짜로 달라고 할 셈이었는가.

게다가 나는 뒤이어 PPS, PPLive, QQLive와의 광고 협력으로 그 돈을 도로 벌었다.

그 뒤 WCG는 NeoTV가 앞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그때 GamesTV는 WCG 생중계를 위한 준비를 이미 많이 해 둔 상태였고, 업계의 영상 사이트들에 여기저기 말까지 흘려 둔 상태였다. 우리가 WCG 독점 중계권을 얻자 그들은 대단히 놀랐다. 뒤이어 당시 유시펑윈의 어느 책임자가 친구 소개로 내 사무실에 찾아와 함께 방송하는 협력을 논의해 보려 했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브랜드를 세우는 일이 급했고 독점권을 산 마당에 그것을 어떻게 SiTV에 다시 내주겠는가.

그다음에 벌어진 일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창피함이 화로 바뀐 친구들이었으니.

  1. 우리가 유럽 위성 신호를 받아 중계해야 했으므로, 그들은 먼저 우리 자격 문제를 신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중앙텔레비전 관련 부서의 승인을 받아 두었다.

  2. 문화 감찰대에 우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과 인터넷 영상 자격 문제를 신고했다. 우리는 곧바로 방송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 경영 허가를 받아 냈다.

  3. 원광 산하 기관이 위성 중계 장비 차량을 어디에도 빌려주지 못하게 막았다. 공교롭게도 상하이에서 원광 소속이 아닌 유일한 위성 텔레비전 전송 회사의 사장이 여러 해 된 내 친구였다. 소식을 들은 어느 책임자가 사람을 시켜 우리와 협력하지 말라는 말을 넣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 사장의 정의감을 건드렸다. 그는 "사람을 너무 우습게 본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를 보내 우리 회사 옥상에 3미터짜리 위성 수신 장비를 세워 주었고, 기사를 우리 회사로 보내 장비를 맞춰 주었다. 덕분에 수십만 위안을 아꼈다.

WCG 권리를 얻은 것은 내가 PLU를 상대로 인력 빼내기 공세를 펴는 데도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 자금과 자원과 힘이 나보다 몇 배인 GamesTV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정작 내 마음에 걸린 것은 자금도 자원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열정만 가득한 PLU였다.

나는 Friend와 황정강(黄正刚)을 만나 본 적이 있다. 이 둘을 뚫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직감했다. PLU는 그들에게 목숨과 같았다. 이런 감정은 기업 경영에 때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런 비이성은 팀을 어려움의 나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때 PLU는 확실히 어려운 시기였다. 콘텐츠를 수입으로 바꾸기가 아주 힘들었다. GamesTV처럼 원광이라는 플랫폼과 수천만 위안의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처럼 좋은 콘텐츠와 수백만 위안의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e스포츠에 홀린 듯 미쳐 있는 애호가 한 무리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BBKinG은 글에 이렇게 썼다.

"여자의 청춘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들 한다. 방송 진행을 전공한 왕줴의 여자친구 안자(安佳)는 더욱 마음이 급했다. 그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청춘이 빠르게 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NeoTV가 게임 분야의 미녀 진행자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자는 PLU에서 NeoTV로 옮긴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BBKinG의 말처럼 나의 첫 돌파구는 확실히 안자였다. 그러나 상처가 될 수 있는 사실을 말하면, 안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PLU에서 빼 오려던 사람 명단에 없었다. PLU 포럼이 그를 아주 세게 띄우기는 했다. PLU가 일부러 스타 하나를 만들어 내려 했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아주 전문적인 게이머도 아니었고, 진행자로 보아도 그 정도 진행자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NeoTV는 그때 이미 샤오R(小R), 나오나오(闹闹) 같은 게임 진행자를 키우고 있었다. 미녀 진행자를 급히 키워야 해서 빼 왔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곁가지 하나. 다들 Neo가 사람을 빼 가는 것이 야박하다고들 하는데, 그때 먼저 사람을 빼 간 쪽은 GamesTV다. 내가 막 만들려던 샤오R과 황시(黄曦) 조합이 대상이었다. 황시는 우리가 키운 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것마저 빼 갔다. 누가 더 모진지 여러분이 말해 보라.)

이야기가 샜다. 안자를 정말로 찾아간 이유는, 그때 안자가 왕줴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 태도가 바뀌었다. 나를 속물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인재를 향한 갈망에 그 정도 속셈도 없다면, 그것은 기업 경영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경로로 빠르게 안자를 찾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내가 줄 수 있는 대우는 PLU에 없는 것이었고, WCG는 그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기회라고 나는 믿었다. 다만 더 강하게 믿은 것이 있다. 이것은 영리한 왕 감독이 그를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 살피고 떠보게 한 전초라는 것이다.

뒤의 역사는 다들 안다. 이 일에서 일련의 이직이 터져 나왔다. 왕줴, XiXi, 저우닝(周宁), 샤오써(小色) 등이다. 그들은 NeoTV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왔고 새 리그 NSL을 만들었다. 동시에 인터넷에서 긴 설전을 불러왔다. BBKinG의 글에 아주 자세히 적혀 있으니 나는 다시 늘어놓지 않겠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 일을 처음 벌인 사람으로서 이직에 대한 내 개인의 생각을 말하겠다. 먼저 나는 왕줴와 옛 PLU 직원 누구도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본다. 그들이 NeoTV에 온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e스포츠라는 판에 대한 뜨거운 마음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고, PLU의 지지자들은 그들이 신의를 저버렸다느니 이익을 좇아 의리를 버렸다느니 비난했다. 먼저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직업 선택이다. 회사에 들어가 근로 계약을 맺는 것이지 회사에 몸을 파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창업은 사장의 일이다. 직원에게도 사장과 똑같이 고생하며 살라고 요구할 이유는 없다고 나는 본다. 직원의 기본적인 생존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NeoTV가 터무니없이 높은 급여를 준 것도 아니고, GamesTV보다 많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때 내가 한 일은 하나뿐이다. 꿈을 가진 채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보장을 주었을 뿐이다. 자리를 옮긴 직원은 모두 WCG라는 플랫폼을 보고 왔다. 급여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사실 이 일로 인터넷에서 흥분한 팬들이 난리를 쳤다. 그러나 실제 당사자들에게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만큼 서로 못 견딜 일이 아니었다. 다들 겪은 것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쪽이 더 컸다.

4. Neo의 퇴출

BBKinG은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비극 한 편을 썼다. 그 글을 보고서야 나는 이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글에 쓰인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마 Cody에게 들었거나 Ken에게 들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내 쪽 이야기를 해야겠다. 들어 보면 다들 알게 될 것이다.

NeoTV를 세울 때 나는 스물다섯이었다. 그전에 잠깐 경영을 해 보기는 했지만 회사 법무나 관리 같은 부분에서는 확실히 부족했다. 이 회사는 세워질 때부터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회사였다. 이것은 내 아내가 2008년부터 투자 업계에 들어가고 주변에 투자 업계 친구가 늘면서 훨씬 또렷하게 알게 된 것이다. 아내가 간 곳은 유명 벤처 캐피털인 IDG 캐피털이다.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회사란 창업자와 팀이 가진 지분이 너무 적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는 아마 PLU가 우리보다 조금 더 건강했을 것이다.

그때 회사 전체 팀의 지분은 내가 대신 들고 있던 몫까지 합쳐 모두 22%뿐이었다. 실제 투자자인 양보 쪽 세 개 실체가 들어와 48%를 가졌고, 나머지 30%는 사실상 린씨 집안이 쥐고 있었지만 이 부분에는 돈이 들어간 적이 없다. 장순더가 투자자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발기인 자격의 무상 지분 9%를 받았고, 그의 형도 소개인 자격으로 무상 지분 9%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뒤 1차 투자자가 200만 위안의 웃돈을 받고 나서 남은 12%를 지금의 사주인 린위신에게 넘겼다.

WCG가 크게 성공하면서 나는 NeoTV를 게임 뉴미디어로 포장할 계획을 세웠고, 여러 VC가 접촉해 와 논의가 붙었다. 그 덕에 Ken의 가문도 이 사업이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그 집안은 부동산만 했다. 린위신은 이때 미국에서 돌아와 회사에 부사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할 일은 없었다.

같은 시기에 Cody도 텐센트를 그만두고 NeoTV에 들어왔고, 나는 그를 COO로 임명했다. Cody는 회사에 들어온 뒤에도 기존 이사회와 투자자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알지 못했다. 프로그램 쪽은 그전에 손대 본 적도 없고 관련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다지 바쁘지 않은 두 사람, Ken과 Cody가 가까워졌다.

뒤에 Cody는 지분 문제로 몇 번이나 나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때는 2차 투자 협상이 한창이라 바로 처리할 수 없었고, 나 역시 팀을 위해 더 많은 지분을 얻어 내려 애쓰고 있었다. Cody는 그 일로 마음이 상했다.

BBKinG은 글에 이렇게 썼다.

"2008년 초 린위신(Ken)이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회사가 Neo 때문에 발칵 뒤집혀 있었다. 왕줴는 화가 나서 회사를 떠났고, Cody는 Neo와 몸싸움까지 벌였다는 말이 있다. 당시 Neo의 구상에도 다들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게임 전문 영상 주문형 플랫폼을 만들려 했다. 지금 말로 풀면 독립된 유쿠(优酷) 게임 채널 같은 것이다. 이것은 프로그램 생산자가 되겠다는 왕줴 등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Cody와 몸싸움을 벌인 일은 실제로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발단이 회사 직원 한 명의 시말서 문제였다는 점이다. 그는 내가 자기 일에 간섭했다고 깊이 믿었다. 그가 영문도 없이 내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가기에 내가 따라가 따져 보려 하자, 갑자기 폭발해 손을 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역시 이사회에 들어가는 문제와 이익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회사의 복잡한 사정을 그는 전혀 몰랐고, 그의 이익을 지켜 주는 사람은 Ken뿐이었다.

물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그가 이제 NeoTV를 떠난 지금 그 자신이 아주 분명한 판단을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왕줴가 화가 나서 회사를 떠났고 몇 번이고 찾아가 청해 돌아왔다는 이야기, 그런 일은 없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와 왕줴 사이가 나빠진 적도 없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NeoTV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고, 나와 그는 지난해에도 작은 협력을 하나 했다.

그때 내가 떠난 이유를 정리해 보겠다.

  1. 투자 유치 실패다. 롄샹 투자(联想投资)를 비롯한 여러 VC가 이사회와 정식으로 회의를 열어 팀 지분이 너무 적다고 지적하며, 주식을 사서 일부를 팀에 넘기고 싶다고 했다. 린씨 집안이 거절했다.

  2. 2차 자금 유치가 순조롭지 않아 회사에 자금 압박이 생겼다. 그때는 인터넷 영상 산업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투더우왕(土豆网)이 우리 사무실 아래층에서 같은 시기에 창업해 큰 자금을 받는 것이 자극이 되었다. 우리는 게임 영상 공유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고, 인터넷 대역폭 지출 비용이 빠르게 커졌다.

  3. 이 경영 방향 문제 때문에 Ken은 주요 투자자 세 곳을 계속 만나며, 내가 "경영을 잘못하고 관리가 어지럽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4. 직접적인 도화선은 베이징의 어느 인터넷 광고 대기업 CEO와 합의해 둔 투자 계약이었다. 그 투자자는 이미 이사회 구성원 전원을 만났고 양쪽은 의향서까지 서명한 상태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손을 뗐다. 그 투자자는 내가 찾아내 협상한 사람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린씨 집안이 몰래 여러 차례 그 투자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5. WCG 세계 결승을 상하이에서 여는 협상이 잘 풀리지 않았다. 내가 주도해 상하이 다원광 그룹(大文广集团), 곧 원광의 상급 기관과 WCG 세계 결승의 상하이 개최를 논의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그때 다원광 총재 쉐페이젠(薛佩建)을 만났고 본래는 관심이 아주 컸다. 그러나 한국 쪽과 여러 차례 협상한 끝에 조건이 너무 가혹하다고 여겨 더 이어지지 않았다. (상하이의 책임자들은 본래 눈높이가 높다. 디즈니든 엑스포든 안 해 본 것이 없다. 한국 쪽은 상하이의 책임자들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WCG 세계 결승은 중국에서 청두 같은 2선 도시로 갔다. 나는 그것이 브랜드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6. 2007년 어느 날, Ken이 이사회 7인 회의를 소집해 30%의 표로 나를 총경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상무 부총경리를 맡으라고 요구했다. 실제 투자자 세 곳 가운데 두 곳이 동의했다. 셰진 감독의 투자자였던 양보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스물여섯이었고 젊고 혈기가 넘쳤다. 회사 안의 권력 다툼 따위는 당연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 부사장 자리도 맡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이사회에 사표를 냈다. 이 일은 지금 돌이켜 보면 실제 투자자인 양보에게 면목이 없다. 뒤에 양보는 나를 찾아 몇 번이나 이야기했고, 덩샤오핑(邓小平)이 세 번 밀려나고 세 번 돌아온 이야기까지 들어 나를 타일렀다. NeoTV에 남기를 바란 것이다. 나는 그래도 거절했다. 그 뒤 나는 내 지분을 넘기고 NeoTV를 떠났다.

2008년 1월 나는 정식으로 NeoTV를 떠났다. 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투자자 세 곳도 지분을 넘기고 빠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린씨 집안이 그들과 가격을 합의했고 그들도 2008년에 손을 뗐다. 지금의 NeoTV는 Ken 집안의 기업이다.

그러니 내 퇴장은 BBKinG의 글에 나오는 것만큼 극적이지 않았다. 보통 기업 안에서 권한이 넘어가는 정상적인 과정이었을 뿐이다.

위에 쓴 내용이 Ken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권력을 노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NeoTV를 온전히 넘겨받은 뒤 그는 많은 투자를 더 넣었다. 지금의 NeoTV는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 한 사람이 키를 잡는 편이 여럿이 겨루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이 판이 원래 생각하던 것만큼 큰돈을 벌기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때 내가 Ken에게 받은 인상은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것이었다. 별 능력 없이 외국에서 어영부영 지내다 돌아왔는데, 집안 친척과 내가 벌인 프로젝트가 그럴듯하고 돈이 될 것 같아 보이니 자기가 쥐려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나는 그때 어렸고 많은 일을 아주 주관적으로 처리했다. 경영 방향에서도 잘못한 곳이 많았다.

그러나 내가 떠난 지 5년이 지나도 NeoTV는 여전히 남아 있다. 투자 업계 친구의 말처럼, 회사를 3년 넘게 살려 낸 창업자는 누구든 위대하다. NeoTV가 오늘까지 이어졌으니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그때 내 생각은 틀렸다고.

5. e스포츠에 대한 생각

NeoTV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e스포츠 관련 일을 했다. 그때 미국 뉴스 코퍼레이션(新闻集团)이 산하에 CGS라는 프로 메이저 리그를 만들었다. NBA처럼 18개 클럽이 있었다. 댈러스 베놈, 싱가포르 소드처럼 이름만 들어도 NBA 같다. 경기는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 방식에 가깝게 만들었고 성적은 팀 단위로 계산했다. 예를 들어 FIFA 경기라면 졌다고 그냥 끝이 아니라, 몇 골을 따라붙어 총 득실 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남는다. 그러니 볼거리가 많다. 시즌마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였고, 리그의 모든 선수가 급여를 받았다. 최소 연 3만 달러였다.

뉴스 코퍼레이션의 총투자액은 5000만 달러였다. 산하의 미국 최대 위성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제작을 맡았고, 싱쿵 위성 채널(星空卫视) 국제 채널과 스카이 방송(天空广播电视台) 등에서 방송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아시아 지역의 프로그램 세 개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내가 늘 바라던 e스포츠의 대중화에 가장 가까이 간 한 번이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그들의 프로그램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8년 말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터졌다. 이 사업 모델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뉴스 코퍼레이션은 이 프로젝트를 접었다. 접기 직전에 나는 마침 CCTV 디지털 텔레비전과 CGS가 협력 양해각서를 맺도록 이끌어 낸 참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들여올 생각이었다.

그 뒤 2009년에 나는 따로 회사를 세워 중앙텔레비전 과학교육 채널과 협력했고, 차츰 어린이 교육 분야로 들어갔다. 지금은 우리 제품을 개발해 두었다. 어린이를 겨냥한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제품이다. 이것은 거대한 시장이다.

돌아서서 다시 e스포츠를 보면, 열정도 충분하고 자기를 바치려는 젊은이도 충분하다. 그러나 사업 모델은 광고 후원 말고 새로 뚫린 것이 없다. 떠받칠 사업 모델이 부족하니, 이 판에서는 내가 아는 친구들이 계속 조용히 떠나간다.

나 개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이 판에 봄을 가져오고 싶었을 뿐이다. 경제적인 돌파가 없으면 판의 발전도 없다. 이 판에 들어온 뒤로 나는 인터넷의 다툼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기업 경영에는 미적거릴 여유가 없다. 쓰라림과 피눈물은 스스로 삼켜야 한다. 그래도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에서 말한 일들은 다 자질구레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은 원한이랄 것도 없다. 대부분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일 뿐이다. 일에서는 내 회사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도덕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때로 일하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같이 하는 일을 위해서였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상하게 한 친구들이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란다.

NEO

2013년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