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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왼손이 춤추는 남자, suhO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五 左手会跳舞的男人 suhO

BBKinG이 2004년에 쓴 글이다.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16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8219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쑤하오(苏昊), 영문 이름은 suhO다. 왼손으로 키보드를 정확하고 빠르게 다룬다고 해서 e스포츠 애호가들은 그를 왼손이 춤추는 남자라고 부른다.

1983년 음력 6월 30일, suhO는 허난성(河南省) 남부 신양시(信阳市)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외아들이었고, 부모가 각자의 집안에서 모두 맏이였으므로 장방장손(长房长孙), 곧 큰집의 맏손자라는 말로 쑤하오가 집안 전체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설명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집안에서 가장 반듯하게 길러졌을 이 장방장손은, 그러나 스무 해 뒤인 2003년과 2004년에 어른들 눈에는 전자 헤로인이던 컴퓨터 게임 《워크래프트 3(Warcraft III)》을 거의 완벽하게 다뤄, 한국과 미국에서 열린 WCG 세계 e스포츠 대회 워크래프트 3 종목에 나간 두 명의 중국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또한 산시성 체육국(陕西省体育局)과 계약해 국가 체육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부드러운 앞머리에 둥근 얼굴과 작은 눈, 수박 밀크티를 좋아하고 마른 미륵불처럼 생긴 이 쑤하오가 내 맞은편에 앉아, 보통 사람 눈에는 몹시 별나 보일 성장 과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쑤하오는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이 말을 세 번 되풀이했다. 평범한 가정이라고 한 것은, 쑤하오의 집이 1980년 이후에 태어난 다른 아이들의 집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 교육을 받았고 초등학교 성적은 아주 좋았다. 게임은 숙제를 다 끝낸 뒤에만 했다. 그런데도 오락실에서 부모에게 붙들려 집으로 끌려가 매를 맞는 일이 잦았다.

"그건 다 그때 언론이 컴퓨터 게임의 나쁜 면만 크게 부풀려서 게임을 무슨 재앙처럼 만들어 놓은 탓이다." 매 맞던 기억을 떠올리는 쑤하오의 말투는 눈에 띄게 세졌다.

쑤하오는 겨루는 게임만 좋아했다. 그는 e스포츠에 타고난 감각이 있는 듯했다.

어릴 때 친구들이 능숙하게 하던 오락실 게임도 쑤하오는 한 번 보면 요령을 알아챘고, 혼자 몇 번 연습하는 것만으로 친구들을 하나씩 다 이기곤 했다. 쑤하오는 비행기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남들은 몇 판까지 깰 수 있을지를 따졌지만 쑤하오는 모든 판을 다 깬 뒤 점수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를 따졌다. 비행기 게임을 하면서 그는 어떻게 판을 깰지 생각하는 동시에 조작을 다듬어 임무를 더 완벽하게 끝내려 했고, 그래야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더 높은 것, 더 좋은 것을 좇는 쑤하오의 완벽주의 성향은 어릴 때부터 자리를 잡은 셈이다. 어릴 적 쑤하오는 기억력도 아주 좋았다. 이야기 잡지나 소설을 한 번 읽으면 한참 뒤에도 그대로 옮겨 말할 수 있었다.

완벽을 좇는 성격과 좋은 기억력은 뒷날 쑤하오가 각국 정상급 선수들의 전술과 플레이를 분석하고 정리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중점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쑤하오는 이 말을 하면서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신양시는 아주 큰 곳으로 허난성 남부에서 상당한 지역을 차지한다. 쑤하오가 다닌 그 중점 고등학교(重点高中)는 그 가운데 가장 좋은 학교였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다 모여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그는 성적이 뛰어났고 성격도 밝고 활달했으며 친구가 아주 많았다. 가족과 친구와 선생님이 보기에 좋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중점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의 빛은 주위 고수들에게 묻혀 버렸고, 그는 차츰 선생님에게 자주 지적받는 학생이 되었다. 학생들 사이의 성적 경쟁이 치열해서 쉬는 시간에도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베란다에 잠깐 나가 서 있는 건 나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 몇 명뿐이었다." 쑤하오는 스스로를 놀리듯 말했다. 학교에서 하루 열두 교시 수업에 한 달에 이틀 쉬는 생활은 그에게 도무지 맞지 않았다.

차츰 예전의 자신감과 밝음이 사라지고 깊은 열등감과 자기 폐쇄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 시기는 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쑤하오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잘난 체하거나 뻐기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고 느끼고, 오히려 몹시 수줍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다 고등학교 시절에 남은 자국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 동창들은 사실 아주 성숙했다. 그래도 다시 고르라고 하면 나는 그 길을 고르지 않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이 지난 오늘도 쑤하오의 생각은 확고하다. 다만 중점 고등학교에서 보낸 그 시간은 쑤하오의 자신감을 무너뜨렸고, 자신감 있고 밝던 그를 말수 적은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

e스포츠는 쑤하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줬고, 그를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걸어 나오게 했다.

2001년 가오카오(高考), 곧 중국의 대학 입학 시험에서 쑤하오는 시안외사학원(西安外事学院)에 붙어 1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쑤하오는 원래 WCG 시안 지역 예선 스타크래프트 종목에 나갈 생각이었다. 2001년 국경절에 시안의 한 PC방 대회에서 우승한 참이었다.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다른 작은 대회에서도 몇 차례 입상해, 작게 실력을 시험해 본 그 맛이 WCG에 대한 마음을 부추겼다. 그런데 그해 WCG 시안 지역 예선의 접수 기간이 갑자기 이틀 앞당겨 끝나 버렸다. 원래 일정에 맞춰 허난에서 시안으로 돌아온 쑤하오는 접수 시간을 놓쳤고 몹시 실망했다.

마침 그해에 《스타크래프트》는 정점을 지나 기울기 시작했다. 쑤하오는 고민 끝에 스타크래프트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당시에는 CS(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이미 e스포츠 종목의 주류가 되어 있었으므로 쑤하오는 이 게임을 파기 시작했다. 날마다 국내외 사이트에서 유럽과 미국의 수준 높은 경기 데모(DEMO), 곧 녹화 파일을 내려받아 고수들의 전술을 연구하고 무기별 사용법을 분석했다. 그러다 한번은 쑤하오가 PC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기를 했는데, 아주 대담한 전술을 써서 몇 번 만에 여러 상대를 정리해 버렸다. 상대들은 그가 치트 프로그램을 쓴다고 여겨 몰래 쑤하오 뒤로 가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고, 결국 그가 치트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몹시 놀라며 쑤하오에게 말했다. 치트를 안 써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우리가 아주 혼내 줄 참이었다.

"그때 나는 CS를 아주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었다. CS가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 3》이라는 게임이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CS 종목의 프로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쑤하오는 농담처럼 말했다.

2002년 새 게임 하나가 차츰 중국 e스포츠 애호가들의 새로운 선택이 되었다. 블리자드가 유럽과 미국의 판타지 문학을 바탕으로 내놓은 대작 《워크래프트 3》, 줄여서 WAR3다. 이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실시간 전략 게임이고, 전술 사고에서는 샹치(象棋), 곧 중국 장기와 조금 비슷하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자원을 캐고 인구를 늘리며 자기 군대를 키운다. 군대는 병종에 따라 여러 역할로 나뉘어 서로 물고 물리며, 그다음은 익숙한 전술 운용으로 상대를 꺾어 승리를 얻는다. 블리자드가 WAR3를 내놓자마자, 한때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했던 쑤하오는 여기에 푹 빠졌고 WAR3 기술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WCG 2003 중국 지역 우승은 사실 운에 실력이 더해진 결과다." 쑤하오가 꾸밈없이 웃었다.

WCG 2003 중국 결승은 쑤하오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쑤하오 앞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힘든 승부를 뚫고 올라온 워크래프트 3 종목 정예 선수 스무 명 남짓이 있었다. 쑤하오가 이렇게 많은 정상급 선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WCG 2003 중국 결승 개막식에서 그는 대형 화면에 흐르는 가슴 뛰는 WCG 홍보 영상을 봤고, 투지를 북돋우는 음악이 나오자 온몸이 떨릴 만큼 흥분해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

그런데 대진 추첨 결과가 나오자 쑤하오는 자기가 가장 나쁜 자리를 뽑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진대로라면 중국에서 가장 이름난 정상급 워크래프트 3 선수를 거의 다 한 번씩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쑤하오는 이름 없는 신인이었고 그를 아는 관중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나는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이 싸움의 나팔을 울렸고, 그는 거의 불가능한 이 임무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12강에서 6강을 가리는 경기에 이르렀을 때 쑤하오는 한국 격파의 달인이라고 불리던 MagicYang을 만났다. 한국의 워크래프트 3 선수들은 실력이 세계 제일이었는데 MagicYang은 한국 선수들을 여러 차례 꺾은 선수였다. MagicYang은 배틀넷 아시아 서버 순위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고 관중 인기도 아주 높았다. 이런 천왕급 선수를 앞에 두고 쑤하오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흥분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데 너무 흥분해서 손이 키보드를 제대로 누르지 못할 정도였다." 쑤하오는 그때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쑤하오는 애써 긴장을 풀고 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처음으로 적과 마주쳤을 때 세력 차이에 쑤하오는 깜짝 놀랐다. 상대의 영웅이 이미 6레벨인데 자기 영웅은 4레벨이었기 때문이다. 병종은 크게 영웅과 병사 둘로 나뉘고, 영웅은 병사들의 우두머리로 싸움을 통해 레벨을 올리며 레벨이 높을수록 위력이 커진다. 영웅 레벨이 둘 차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실제로는 MagicYang의 전체 전투 체계 발전 속도가 쑤하오보다 두 배 빠르다는 뜻이었고, 이만큼 벌어진 실력 차이에 쑤하오는 적잖이 놀랐다.

"그때 나는 계속 되뇌었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 나는 반드시 이긴다. 그러다가 MagicYang이 아주 작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 쑤하오의 눈이 반짝였다.

알고 보니 그는 MagicYang의 부대와 마주칠 때마다 MagicYang이 늘 병사로 쑤하오의 병사가 아니라 쑤하오의 영웅을 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쑤하오는 자기 영웅으로 상대의 공격을 끌어들이고 자기 병사로 MagicYang의 병사를 잡았다. MagicYang이 쑤하오의 영웅을 거의 다 잡아 갈 때쯤이면 쑤하오는 곧바로 영웅에게 마을 이동 주문서를 쓰게 했다. 영웅을 전장에서 곧바로 빼내 본진으로 돌려보내는 기능이다. 본진에서 체력을 회복한 쑤하오의 영웅은 다시 달려 나가 상대의 공격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자 MagicYang은 자기 병사가 거의 다 죽은 반면 쑤하오의 병사는 별로 줄지 않았고, 게다가 쑤하오의 영웅은 싸움에서 적을 여럿 잡아 레벨까지 몇 단계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장의 우위는 단숨에 쑤하오 쪽으로 기울었고, 그는 기세를 몰아 상대 본진으로 쳐들어가 그 경기를 이겼다.

"그 경기 뒤로 내 운이 계속 좋아지는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에 당시 국내에서 가장 이름난 정상급 고수 CQ2000과 벌인 결승이 그랬다." 그 결승을 떠올리는 쑤하오는 조금 들떠 있었다.

당시 CQ2000의 대군은 곧 쑤하오의 본진 입구까지 밀고 들어올 참이었다. CQ2000은 주력 부대가 자리를 잡기를 기다렸다가 쑤하오의 본진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기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CQ2000의 영웅이 공을 조금 욕심낸 듯,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쑤하오의 영웅을 쫓아갔다. CQ2000이 한 번만 더 내리치면 쑤하오의 영웅을 죽일 수 있던 그 순간, 다른 곳에서 쑤하오의 병사들이 CQ2000의 병사 몇을 잡아 쑤하오의 영웅이 레벨을 올렸고, 레벨이 오르면서 쑤하오의 영웅은 생명력을 순간적으로 얼마간 되찾았다. 그래서 CQ2000의 그 한 방은 쑤하오의 영웅을 죽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을 욕심내다 방심한 탓에 CQ2000의 영웅이 쑤하오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매복 앞에서 CQ2000의 영웅은 그 자리에서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CQ2000의 군대는 이끌 영웅을 잃었고, 당시 워크래프트 3 버전에서 영웅은 혼자 열 몫을 하는 초인 같은 존재였으므로 이때 영웅을 잃는 것은 군대 전체가 쓸모없어진다는 뜻이었다. 쑤하오는 좀처럼 오지 않는 이 기회를 붙잡아 대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곧장 쳐들어가 적을 쓸어버렸다.

이겼다. 쑤하오는 이긴 뒤의 느낌을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은 오직 그 자신만이 눈을 감고 미소를 띤 채 천천히, 몇 번이고 혼자 되새겨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뒤이은 한국행은 쑤하오가 처음으로 국경을 넘은 일이었다. 한국에 대한 쑤하오의 인상은 몹시 깨끗하다는 것, 그리고 도로에서 차가 아주 빠르게 달린다는 것이었다. 대회 전 연습실에서 그는 막 유럽 챔피언이 된 4K.Grubby를 우연히 만나 연습 경기를 네 판 했고 쑤하오가 전승했다. 경기가 끝나자 4K.grubby가 다가와 악수하며 "Good Game", 곧 좋은 경기였다고 말했다.

"나중에 실제 대회에서는 그를 만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대회 경험이 없어서 연습 경기에서 실력을 감춰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해서 상대의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쑤하오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아주 진지하게 분석했다.

"WCG 세계 e스포츠 대회 한국 결승에 가기 전에 여권을 만들러 고향에 갔는데, 아버지가 절에서 점안을 받은 패를 하나 주셨다. 그때부터 내 운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쑤하오는 기분 좋게 말하면서 옷깃 안에서 금빛 패를 하나 꺼내 보였다.

집안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쑤하오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쑤하오의 아버지는 자기 한 달 치 월급을 털어 게임기를 하나 안고 왔다. 당시 흔히 훙바이지(红白机), 곧 빨간 흰 기계라고 부르던 패미컴 호환기다. 그때의 기쁨을 쑤하오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나 3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게임기는 집안 어른들 손에 잠겨 버렸다.

쑤하오의 가족은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을 몹시 반대했고 이것을 전자 마약이라고 여겼다. 그의 부모는 아주 전통적인 사람들이고 아들을 몹시 아꼈다. 대학에 다닐 때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는 시안에서 공부하는 쑤하오가 어떤 서러움도 겪지 않게 했다. 처음 2년의 학비로 부모 두 사람의 저축이 거의 다 나갔고 친척들에게 빌린 돈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쑤하오는 예전에 집에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몹시 부끄럽고 미안했고, 마음속으로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 일을 하고 싶었다.

쑤하오가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한 것은 여행이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대회에서 딴 상금이면 세계 어느 곳이든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돈은 모두 모아 부모에게 드렸다. 대학 뒤 2년의 학비와 지금의 생활비는 다 그가 대회에서 벌어 온 것이다. 지금 쑤하오는 집에 한 푼도 손을 벌리지 않을 뿐 아니라 때때로 돈을 벌어 집안 살림을 돕는다. 예전에 우리는 쑤하오에게 왜 나는 반드시 이긴다는 결심과 자신감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굳은 승리에 대한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이제 우리는 조금 알 것 같다.

WCG 2003 한국행 뒤로 집안의 게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WCG 2003 뒤로 쑤하오의 친척들은 게임을 하는 것도 하나의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 중앙텔레비전 스포츠 채널인 CCTV-5에서 《e스포츠 세계(电子竞技世界)》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쑤하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면서 그랬다. 그래서 금요일마다 그의 친척들은 농촌에 살든 도시에 살든 하던 일을 다 놓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쑤하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쑤하오가 나올 때마다 그가 자라는 것을 지켜본 친척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고, 어느 회차에 쑤하오가 나오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묻기까지 했다. 다들 e스포츠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중앙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아주 체면이 서는 일이라고 여겨, 쑤하오가 잘되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나는 지금 산시성 체육국과 계약해 산시성을 대표해 CEG 중국 e스포츠 리그(中国电子竞技联赛)에 나간다. 부모님도 이제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쑤하오는 이 대목을 말하면서도 미간을 펴지 않았다. 어쩌면 장방장손이자 아직 아무도 모르는 e스포츠 세계의 탐험자로서 그의 마음속에는 풀어야 할 매듭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e스포츠 산업에 대한 쑤하오의 생각

"e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폭은 아주 넓다. 나이나 체격, 성별, 심지어 국적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 e스포츠는 외국의 발전 방식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찾아야 한다." 쑤하오는 프로 e스포츠 선수의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이렇게 내놨다.

쑤하오가 처음으로 사인을 해 준 것은 WCG 2003 중국 지역 우승을 한 뒤였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정말로 좋았다." 쑤하오가 크게 웃었다. 그 뒤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쑤하오가 대회에 나갈 때마다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쑤하오는 이 일을 아주 진지하게 여긴다. 몇 시간 이어진 경기를 막 끝내 몸과 마음이 몹시 지친 뒤에도 그는 웃는 얼굴로 팬들의 요청에 성실히 응한다.

그런데 사인 가운데 한 번은 인상 깊게 남았다. 상하이에서 열린 어느 대회가 끝난 뒤 마흔이 넘은 여성이 쑤하오에게 사인을 청했다. 쑤하오는 몹시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열 살 남짓한 자기 아들을 위해 사인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아들이 쑥스러워 오지 못했다는 말에 쑤하오는 곧바로 건너가 그 어린 팬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 어른이 아이를 대신해 사인을 청하는 일이 계속 생겼고, 쑤하오는 그때마다 자기를 쫓아다니며 붙잡던 옛날 부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늘날 중국의 부모는 열린 마음으로 가르치고 바르게 이끄는 면에서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쑤하오가 대회에 나가면서 울고 싶었던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WCG 2003 중국 지역 우승을 했을 때인데 울고 싶기는 했어도 울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선양(沈阳)에서 열린 중한 대항전(中韩对抗赛)에서 만난 뜨거운 둥베이(东北) 관중 앞에서였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한국의 정상급 프로 e스포츠 선수 네 명을 보내 왔고, 중국을 대표해 나선 것은 쑤하오와 MagicYang 같은 선수들로 짜인 황금 조합이었다. 모두 정상급 선수였지만 한국은 e스포츠 발전이 잘 갖춰져 있어 그들의 e스포츠 선수 수준은 중국 선수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한국 쪽은 천왕급 선수 check[pooh]까지 불러들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중국 선수들의 형세는 곧바로 불리해졌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둥베이 관중의 응원 소리에 쑤하오의 마음은 뜨거워졌고, 나라를 위해 이름을 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절로 솟았다. 쑤하오는 이 자리의 관중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마지막에 쑤하오는 상대 선수 네 명을 모두 끌어내렸고, 한국의 제일가는 선수 check[pooh]를 꺾어 중한 대항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 순간 주위 관중이 파도처럼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있으면 평소 이상의 실력이 나온다. 그렇게 원래 불가능했던 임무를 끝냈다." 그 경기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쑤하오는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들떠 있었다.

대학생인 쑤하오는 e스포츠가 대학가에서 갖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베이징 대학생들의 열기에는 깜짝 놀랐다. 2004년 6월 베이징에서 WCG 2004를 앞두고 합숙 훈련을 하던 때, 쑤하오는 Yoliny e스포츠 클럽의 일원으로 초청을 받아 베이징 북방공업대학(北方工业大学)에 가서 강연과 시범 경기를 했다.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 강당이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쑤하오와 팀 동료들은 e스포츠 발전이라는 주제로 PPT를 써서 두루 설명했다. 몇 시간에 걸친 강연 동안 아래에 앉은 사람은 오히려 점점 늘어났고, 쑤하오는 e스포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더욱 실감했다.

한국에는 한 해 내내 이어지는 e스포츠 리그가 있고 WCG 같은 세계적인 대회도 있어서, 그들의 e스포츠는 아주 잘 갖춰진 단계까지 발전해 있다. 한국 MBC 텔레비전은 곧 WEG라는 대회를 내놓을 참인데, 순수하게 상업적으로 운영되며 한국의 이름난 e스포츠 운영 회사 온게임넷(OnGameNet)이 주최한다. 온게임넷의 책임자는 쑤하오에게 한국에 와서 자기네 리그에 나오라고 직접 청한 적이 있다. 이 리그에 나가는 선수는 따로 후원금을 받고 급여와 상금도 받는다. 한 해에 네 시즌이 있고 시즌마다 우승자는 2만 달러의 상금을 받으며, 그 밖에 여러 혜택도 있다.

"중국의 e스포츠 시장은 아주 크다. 그런데 돈은 전부 외국 업체가 벌어 간다." 쑤하오는 e스포츠 업계의 발전을 두고 자기가 느낀 것을 이렇게 말했다.

프로 e스포츠 선수는 자기가 쓰는 컴퓨터 장비, 이를테면 마우스와 마우스 패드와 키보드와 그래픽 카드 같은 하드웨어에 요구 수준이 아주 높다. 어떤 나라가 자국 수영 선수를 위해 큰돈을 들여 수영복을 개량하는 것처럼, 컴퓨터 장비를 좋게 하면 선수가 자기 수준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쑤하오의 마우스는 한국에서 산 것이고, 마우스 패드와 헤드셋은 모두 독일의 이름난 제품이며, 키보드는 중국에서 만든 미국 델(Dell) 제품이다.

"내가 쓰는 이 마우스는 기술에서는 이름난 브랜드만 못하지만 동양인의 손 모양에 아주 잘 맞는다. 외국 마우스의 겉모습만 흉내 내는 국내 업체들에 견주면 보기 드문 제품이다." 쑤하오는 국내 업체가 중저가 제품만 만들고 중국인에 맞춰 설계한 고급 제품을 내놓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다. 실제로 마우스만 놓고 봐도 이제는 평범한 e스포츠 애호가들까지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기본 장비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감도가 높은 고급 광 마우스를 갖는 것은 사실상 e스포츠 애호가의 기본 표식이 되었다.

"시장에서 중고급 광 마우스 하나의 값은 200위안에서 500위안쯤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로지텍이라는 두 외국 마우스 업체가 거의 다 나눠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마우스들에는 공통된 문제가 하나 있다. 동아시아 사람의 손 모양에 견주면 조금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e스포츠 애호가가 오래 쓰다 보면 손이 빨리 피로해지고 손목 근육을 다치는 문제가 생긴다." 쑤하오는 중국 업체도 중국의 고급 장비 시장을 채울 능력이 사실 있다고 보며, 다만 혁신할 용기와 올바른 시장 자리매김이 없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Yoliny e스포츠 클럽

"나는 운이 좋다. 우리 클럽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이다." 쑤하오는 지금 Yoliny e스포츠 클럽, 곧 지금 WE 클럽의 전신에 속해 있고, 클럽의 뭉치고 나아가는 분위기를 아주 좋아한다. 이 클럽은 단장까지 합쳐 여덟 명이 채 되지 않는데, WCG 2004 중국 지역 결승에서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와 FIFA(축구) 세 종목에 걸쳐 미국 세계 결승 출전권 다섯 장을 따냈다. 틀림없는 세계적인 스타 팀이다.

"페이러(裴乐)는 Yoliny e스포츠 클럽의 단장이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알게 되었고, 2004년 5월에 내가 Yoliny e스포츠 클럽에 들어가 베이징으로 훈련을 갔다. 페이러에게는 지도자에게 드문 친화력이 있다. 남을 돕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일을 세심하게 처리한다." 팀 동료 이야기가 나오자 쑤하오의 말이 많아졌다. "당치(党旗)는 클럽에 있은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사업 협상 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대학 영어 시험 6급(CET-6)이어서 대회를 나가면 우리 외교관 노릇을 한다. 우리가 베이징의 학교에서 강연할 때 쓴 PPT와 관련 자료도 다 그가 만든 것이다."

쑤하오는 둥베이 출신 추이썬(崔森)과 잘 맞는다고 했다. 추이썬에게는 둥베이 사람 특유의 밝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있다고 여긴다. 베이징에서 합숙 훈련을 할 때 쑤하오는 그와 한 방을 썼다. 어느 날 추이썬은 쑤하오의 전술 하나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웃으며 다음 날에는 꼭 쑤하오를 이기겠다고 했다. 과연 다음 날 추이썬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 쑤하오를 이겼다. 쑤하오도 지고 있을 수는 없어 사흘째에 그것을 깨는 방법을 찾아냈고, 나흘째에는 추이썬이 또 신이 나서 달려와 그것을 다시 깨는 새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실력을 겨루며 서로를 끌어올렸다. 패배를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조금도 기죽지 않는 추이썬의 성격은 쑤하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쑤하오는 WCG 2004 중국 지역 준우승자이자 자기 팀 동료인 SKY를 두고 동심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했다. "SKY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다. 온갖 질문을 하기를 아주 좋아해서 팀 동료들은 그를 '십만 개의 왜'라고 부른다." 《십만 개의 왜(十万个为什么)》는 중국에서 널리 읽힌 어린이 과학 백과 시리즈다. SKY 이야기가 나오자 쑤하오는 재미있는 일이 떠오른 듯했다. "예를 들면 SKY가 해바라기씨를 먹다가 씨가 하얀 것을 보고 왜 씨가 하얗냐고 묻는다. 다들 겉에 소금이 묻어서 그렇다고 설명해 주면, 그러면 왜 소금을 넣느냐고 또 묻는다. 다들 맛을 내려고 그런다고 설명해 주면, 또 새로운 질문을 계속 찾아내서 묻는다."

앞으로의 계획

"사실 우리가 나중에 대회에 나가지 않게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은 꽤 많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앞길이 없지 않다." 자기 앞날을 이야기하는 쑤하오는 몹시 낙관적이고 분명했다.

먼저 쑤하오는 e스포츠가 축구나 농구 같은 전통 스포츠와 견줄 수는 없다고 보면서도, e스포츠에는 아주 넓은 집단이 있고 관중 수가 방대하며 소비 비용도 비교적 싸다고 본다. 목표 집단이 뚜렷해서 점점 더 많은 IT 업체와 전통 업종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한 해를 관통하는 상업 대회가 갈수록 잦아지고 조직도 갈수록 규범을 갖추고 있으며, 국가 e스포츠 협회도 곧 국무원의 승인을 받아 설립될 것이라고 한다.

쑤하오는 e스포츠 클럽의 앞날도 밝게 본다.

"나는 코치를 할 수 있다. e스포츠 클럽이 성적을 내면 코치와 선수가 5 대 5로 나눈다. 게다가 새로운 선수들을 키우려면 큰 대회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많이 필요하다. 대회 조직과 기획도 하나의 선택지다. 한국은 지금 아주 높은 수준까지 발전했다. 한국의 어떤 대회는 모래사장에서 열렸는데, 세워 놓은 관람석이 관중 몇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개막식에서 주최 측은 남다른 발상으로 헬리콥터 두 대를 불러 선수 두 명을 경기장까지 실어 왔고,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정점에 이르러 환호와 비명이 귀를 찢을 듯했다." 쑤하오는 말하면서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국의 e스포츠 시장은 한국 시장의 몇 배다. 우리는 대회 조직의 상업적 운영에서 끌어올릴 여지가 아주 크다. 게다가 e스포츠는 지금 국가가 인정한 99번째 체육 종목이고 나는 체육국과 계약한 선수이기도 하니, 체육 부문에 들어가 일하는 것도 앞으로의 좋은 발전 방향이다." 쑤하오는 앞으로의 계획이 아주 뚜렷하고 자기 앞날에 자신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