跳转至

제5장. CEG 이야기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五 CEG的故事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20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18208

이 번역은 2026년 8월 1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뤄융하오(罗永浩)가 권리를 지키겠다며 냉장고를 부수던 때, 누군가 나서서 그를 몰아세웠다. "왜 먼저 중국의 품질 검사 기관이나 소비자권익보호협회 같은 정상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았느냐." 뤄융하오는 웃기만 하더니, 그 정상적인 통로를 거치며 녹음한 통화 내용을 길게 공개했다.

나는 e스포츠의 희망을 국가의 지원이나 올림픽 종목 진입에 거는 사람들을 늘 비판해 왔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도 쓴웃음을 한 번 짓고 CEG라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

전국 e스포츠 대회(China E-sports Games), 줄여서 CEG다.

우리는 영문 모를 자잘한 일을 두고 농담할 때 "이건 아주 큰 판의 바둑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CEG를 두고는 정말로 아주 큰 판의 바둑이었다고 말해야겠다. 이 판이 얼마나 컸느냐 하면, 뒷이야기를 모른 채 CEG만 봐서는 그 흥망을 읽어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간을 2003년 11월 18일로 되돌린다. 장소는 인민대회당이다. 아래는 당시 기사의 요약이다. 잘 쓴 글이라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11월 18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디지털 스포츠 플랫폼 출범식에서, e스포츠가 국가체육총국의 99번째 정식 체육 종목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종목 지정에 따라 전국 e스포츠 대회는 내년 1분기에 막을 올린다. 중화전국체육총회가 주최하고 화아오싱쿵 과학기술발전 유한공사와 화아오싱쿵 정보기술 유한공사가 공동 주관하는 이 대회는, 전국 최고 등급의 e스포츠 대회로는 처음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e스포츠 역사에서 그 유명한, 사람을 들뜨게 한 순간이다. 당시 나는 이미 e스포츠 종사자라고 할 만했고, 그때의 흥분과 고무를 지금도 기억한다. 주위 동료들은 모두 중국 e스포츠에 봄이 온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면 이것은 이익의 바둑판에 놓인 첫 번째 돌일 뿐이었다.

그 공식 보도자료는 진짜 내용을 흐려 놓았다. 아래 두 건의 뉴스 논평 요약을 보자.

  1. 화아오싱쿵은 국가체육총국의 지원 아래 중국올림픽위원회, 중화전국체육총회, 홍콩의 중신타이푸(CITIC Pacific)가 2003년 11월에 합작으로 세운 회사다. 중신타이푸는 화아오싱쿵에 3억 위안을 넣어 지분 50퍼센트를 가졌고, 회사의 CEO는 중신타이푸 쪽에서 임명했다.

  2. 중신타이푸의 사업은 홍콩과 광대한 내륙 시장에 집중되어 있고, 기반 시설을 중심으로 한다. 투자용 부동산, 다리와 도로, 터널 같은 기반 시설, 에너지 사업, 환경 사업, 항공, 통신 사업이 여기에 든다.

역사는 때로 마술사 같다. 한 손으로는 눈길을 끌 볼거리를 만들어 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짜 동작과 목적을 감춘다.

간단히 말해 화아오싱쿵은 정치와 상업이 결합한 회사였고, e스포츠가 99번째 체육 종목이 된 것도 이 회사의 설립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인 홍콩 중신타이푸는 왜 화아오싱쿵에 그렇게 많은 돈을 냈을까?

지금 머릿속에 이 질문이 떠올랐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고, 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 산업으로 일어선 홍콩 중신타이푸는 아시아 금융 위기 뒤 다각화를 꾀하기 시작했고, 그 중요한 방향 하나가 통신과 미디어였다. 2005년 CEG가 곧 무너지려던 마지막 고비에, 중신타이푸는 산하 회사인 중신 텔레콤 1616(CITIC Telecom 1616)의 총경리 천광차이(陈广才)를 화아오싱쿵 CEO 자리에 앉혔다. 중신타이푸의 밑장에는 처음부터 통신과 미디어라는 넉 자가 적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가체육총국을 배경으로 둔 화아오싱쿵의 밑장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국가체육총국을 공식 배경으로 둔 화아오싱쿵이 띄운 개념은 디지털 스포츠였다. 중신타이푸의 방향은 통신과 미디어였다. 때는 2003년 말,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5년이 남아 있었다. 한쪽에는 콘텐츠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전달 통로가 있었다.

이 네 문장을 붙여서 읽어 보라. 이해가 안 되면 여러 번 읽고, 소리 내어 읽어 보라.

알겠는가.

다만 당신이 이해한 것은 초급 단계의 협력일 뿐이다. 더 깊은 협력은 중신타이푸의 배경 소개를 참고하면 된다.

여기까지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양해해 달라. 2004년에 중신타이푸가 화아오싱쿵에서 자금을 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변호사 서한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해도 될까. 허허.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십 년이 지나서야 알아본 이 바둑을 광전총국은 한순간에 알아보고 급소를 단번에 틀어쥐었다는 점이다. 아래도 뉴스 논평 요약인데, 당신도 아주 익숙할 것이라고 믿는다.

2004년 4월 21일, 라디오와 영화, 텔레비전을 관장하는 국가광전총국(SARFT)은 컴퓨터 온라인 게임류 프로그램 문제와 관련해 《컴퓨터 온라인 게임류 프로그램의 방송을 금지하는 통지》를 냈고, e스포츠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각지 방송국과 CCTV의 esport 등 e스포츠 프로그램이 잇달아 방송을 멈추면서, 중국 e스포츠는 거의 가장 중요한 수익 모델이던 중계권 판매를 잃었다.

CEG의 개막일은 2004년 4월 10일이었다.

이게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허허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이 e스포츠를 모른다고 더 욕하지 말고, 디지털 스포츠를 모른다고 하지도 말고, e스포츠의 이로움을 설명하려 들지도 말고, 정책 하나가 나왔다고 봄이 온다고 외치지도 말고, 어떤 지원이나 적선도 기대하지 마라. 모든 것이 이익 관계이기 때문이다. e스포츠가 그 이익의 요구를 채워 주지 못할 때, 그리고 당신이 이 규칙을 모를 때, 당신은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영영 알 수 없다.

자, CEG의 배경은 이만하면 됐다. 이제 CEG에서 벌어진,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이던 많은 일을 다시 돌아보면 훨씬 또렷해질 것이다.

2003년 무렵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e스포츠 대회 모델은 WCG 모델이었다. 전국 각 지역 예선을 PC방에서 열어 사람을 걸러 내고, 거기서 뽑힌 정예를 베이징에 모아 전국 결승을 치르는 방식이다. 여기서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당시 대회를 둘러싼 상업 모델은 모두 이것을 바탕으로 삼았고, e스포츠가 아직 풀뿌리 단계에 있던 시대에는 꽤 흔한 모델이었다.

CEG의 초기 실행진도 그런 구상이었다. 당시 화아오싱쿵 부사장 옌인장(严寅江)은 중국에서 프랜차이즈 PC방 허가를 받은 몇 안 되는 사업주 가운데 하나였고, 그가 가진 중루스쿵 PC방 브랜드는 마침 전국으로 확장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그는 하오팡 플랫폼의 사장 리리쥔(李立均)과 대학 동창이었다. 두 사람 다 배경과 실력을 갖췄고, 한 사람은 오프라인에, 한 사람은 온라인에 강했다. 하오팡이 당시 손에 쥔 CGA는 e스포츠 사이트 가운데 방문자 수가 가장 많았다. 그때 이 구상대로 밀고 갔다면 CEG는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은 없다. 원래 2004년 3월에 열릴 예정이던 CEG는 갑자기 한 달 연기를 발표했다. 화아오싱쿵 고위층이 CEG의 모델을 두고 심각하게 갈라섰기 때문이다. 화아오싱쿵 CEO 린뎬쿠이(林殿魁)와 부사장 옌인장, 그 아래 e스포츠 업계 사람 여럿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은 베이징 궈안 마케팅부 총괄 왕만장(王漫江)이었고, 그는 원래 축구를 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화아오싱쿵의 새 실행팀이 되었다.

이것이 그리 길지 않은 화아오싱쿵 역사에서 겉으로 드러난 첫 번째 정치 투쟁이었고, e스포츠 신파의 완패로 끝났다. 덧붙이자면 왕만장은 다롄 스더 부사장 시절에 란서지랑이라는 서포터 모임을 만들었다. 푸른 격랑이라는 뜻이다. 란서지랑의 사무국장은 다롄 스더 총경리 보좌였던 리샤오둥(李晓东)이었는데, 이 리샤오둥이 지금 베이징에서 e스포츠로 제법 이름난 회사 마이둥의 대표다. Ehome 클럽이 마이둥 산하에 있다. 바꿔 말하면 많은 사람의 인생이 이 일로 바뀐 셈이다.

e스포츠의 이 WCG식 방식은 전면 부정되었고, 그 자리를 전통 스포츠의 방식이 채웠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중국 축구의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CEG의 새 구상은 이랬다. 전국에 8개 지역을 두고, 각 지역은 지방 체육 부문의 사회체육센터가 맡는다. 올림픽 종목이 아닌 모든 종목을 담당하는 부서다. 화아오싱쿵이 각 지역에 리그 창업 자금으로 100만 위안을 내려보내고, 프로 e스포츠 팀을 만들어 체육관에서 경기를 치른다. 리그는 홈 앤드 어웨이 승점제로 운영하며, 목표는 이 100만 위안을 다 쓰기 전에 만들어 놓은 클럽을 전부 상업화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정부가 무대를 세우고 경제가 공연을 하는 방식이다. 각 지역에서 정부가 앞장서 전국 규모 리그에 나갈 클럽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지역 사업자가 넘겨받게 해서 상업화 전환을 끝낸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이론적으로는 맞다. 게다가 PC방에서 치르지 않으면 문화부의 관할을 피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고리는 이것이다. 사업자가 왜 이걸 넘겨받아야 하는가?

광전총국이 텔레비전 광고의 길을 막아 버린 상황에서, 그리고 CEG가 e스포츠 판 자체의 영향력을 어떻게 쓰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아예 모르는 상황에서, 상업적 가치를 어디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당시 전국의 CEG 경기장은 모두 체육관에 있었다. 경기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e스포츠 사이트에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이트들도 CEG의 도도한 태도에 마음이 식어 자발적으로 보도하는 일이 드물었다. 여기에 당시 국내 스타들의 호소력도 크지 않아서, 현장에 오는 관중은 대부분 선수의 친지와 친구였다. 대부분의 현장에는 사람이 몇 명밖에 없었다. 우한의 CEG 현장만 줄곧 사람이 제법 많았다.

2004년 말까지도 CEG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고, 체육국은 여전히 도도했다. 경기 현장은 아주 형식적으로 꾸며져 국기를 올리고 국가를 불렀는데, 체육관 하나에 두 팀 전 종목 선수를 다 합쳐도 30여 명인 경우가 많았다.

CEG는 후기에 이미 중국 e스포츠의 발전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1. 리그 일정이 빡빡했고 지방 클럽 선수가 다른 대회에 나가는 것을 제한했다. 이것은 같은 시기의 다른 대회 몇 개가 시드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 정보산업부가 주최한 CIG, 공청단 중앙이 주최한 CKCG 같은 것들이다. 겉으로는 경쟁자를 치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e스포츠 종목의 활력도 크게 떨어뜨렸다.

지금까지도 나는 계속 말한다. 진짜로 번성하는 시장은 절대 한 곳이 독식하는 시장이 아니다. 남보다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강제 수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다 밀어내 죽여 놓으면, 업계 발전의 천장에 부딪히는 순간 전체의 쇠퇴가 따라온다.

  1. 상금 설정이 불합리한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wNv 클럽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CEG는 반년 넘게 걸리는데 종목별 상금이 3만 위안도 안 된다. WCG는 세계 대회까지 3개월도 안 걸리는데 카운터 스트라이크(CS) 종목의 지역 우승 상금이 3만 위안이고 전국 결승 우승은 8만 위안이다. 나머지 두 종목의 상금도 대부분 3만 위안 안팎이고, 외국에 나가 세계 결승에 참가하면 상금은 더 높다. 게다가 이런 대회에 나가면 인지도도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의 wNv, AS 같은 최상위 클럽들은 수입을 따져 본 뒤 모두 해외 대회로 갔다.

  2. 관청을 상대로는 방법이 없다. 그들이 어느 쪽으로 말하든 당해 낼 도리가 없다. 당시 성적이 가장 좋았던 산시 팀은 해마다 CEG 전국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선수 대부분이 KinG이 이끌던 유링뎬퉁 Yoliny 팀 소속이었다. 산시 팀은 이들이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막으려고 전국 결승 상금을 자주 붙들어 두고 주지 않았고, KinG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몰렸다.

당시에는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이던 이 소동들이 지금은 아주 분명하다. 그들의 본뜻이 애초에 딴 데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라는 큰 바둑판을 놓고 보면 이런 자잘한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한쪽 눈을 감아 주는 것이 오히려 전략적 필요였다.

CEG는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점점 옅어졌다. 그 뒤에는 더 깊은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화아오싱쿵의 핵심 인물은 당시 국가체육총국 국장 보좌 허후이셴(何慧娴)이었고, 당시 국가체육총국 국장은 위안웨이민(袁伟民)이었다. 그런데 2004년 12월 류펑(刘鹏)이 위안웨이민의 뒤를 이어 국가체육총국 국장이 되었고, 그 뒤로 허후이셴은 체육국의 주요 지도부에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 높이에서 CEG 전체를 보면 더 또렷해진다. 이것은 홍콩 회사가 한 번 건 판돈이었고, 이겼다면 얻는 것은 미래였다. 다만 불행히도 미래를 좌우하는 요인이 너무 복잡했다.

2005년 7월 중순, 중화전국체육총회 부회장 허후이셴은 화아오싱쿵 직원들에게 곧 닥칠 변화를 알렸다. "화아오싱쿵은 신촨 그룹과 협력하게 되며, 신촨 쪽이 회사 운영에 전면적으로 들어온다. 7월부터 각종 관계의 이행이 시작되어 8월에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 앞으로 화아오싱쿵은 화아오신촨으로 이름이 바뀔 수도 있다."

그 뒤 CEG도 몇 번 간판을 바꿔 달기는 했지만, 사실상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다.

CEG 전체를 놓고 보면, 국가 체육의 최고 부처와 붉은 배경의 자본이 함께 받쳐 준 슈퍼 리그였다. 앞으로 이보다 더 높은 층위의 조합이 다시 나올지 나는 모르겠다. 그 실패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실패의 이유는 아주 깊다. CEG가 한 시대의 사회를 축소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친 것은 게임을 하던 아이들 한 무리의 역사만이 아니라 이 시대가 마주한 문제이기도 하다.

관과 상이 결합한 독점의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우리 e스포츠 환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늘 공개적으로 독점을 비웃으면서, 뒤로는 독점을 부러워하고 독점을 좇는다.

공정한 경쟁, 다원화, 함께 번영한다는 생각은 아직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날 e스포츠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이고, 중국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