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장. 명해설자 BBC의 인생 선택¶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四十 名嘴BBC的人生选择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6년 1월 3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20452813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너 어릴 때 허리띠로 맞아 봤지?" BBC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전깃줄로도 맞아 봤어?"
그러고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빛나는 큰 눈으로 나를 보며 입을 벌리고 웃었다. 장난기와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함께 묻어난, 웃는 미륵불 같은 얼굴이었다.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은 모두 지난날의 선택 하나하나가 만든 것이다.
2015년 1월, 서른다섯 살의 베테랑 e스포츠 해설자 BBC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그는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남들 눈에는 자기가 무척 차분해 보였겠지만 속으로는 환호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들 교육에서 절대로 성적만 따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바로 그것 때문에 크게 고생했기 때문이다.
BBC의 본명은 장훙성(张宏圣)이다. 1980년 7월 7일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상산샤샹(上山下乡) 시기에 농촌으로 내려간 즈칭(知青), 곧 지식청년이었고 안후이성 퉁링(铜陵)에 배치되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철도 계통에 들어가 평생 그곳 직원으로 일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BBC는 줄곧 퉁링에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그는 학년 1등을 적어도 열 번 했다.
그러나 그는 즐겁지 않았다.
어린 그에게 시험이란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반드시 100점, 1점 모자랄 때마다 허리띠로 한 대. 어문(语文), 곧 중국어 과목은 반드시 95점 이상, 1점 모자랄 때마다 전깃줄로 한 대.
맞는 것과 공부하는 것 사이에 그가 고를 여지는 없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아서 맞는 일이 잦지는 않았다.
그래도 반항의 씨앗은 그때 이미 묻혔다.
시험이 없는 날이면 BBC는 잘 놀고 잘 떠드는 "못하는 학생"들과 어울리는 쪽을 더 좋아했다. 산에 올라 새를 잡고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시끄럽게 놀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 반대로 사람을 관리하는 일은 좋아하지 않았다. 1학년 때 소년선봉대 대대장을 맡았지만 그 뒤로는 맡는 자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그의 말로는 자기가 정치를 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예 그때부터 관리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유시펑윈(游戏风云, GamesTV)에서든 지금의 ImbaTV에서든 마찬가지다.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도 오로지 프로그램 만드는 일만 했고 나머지는 다 동료에게 맡겼다.
BBC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부를 잘해서 학교 선생님들이 그를 꽤 봐주었다. 학교 방송실에서 사람을 뽑을 때 그는 그 일이 제법 근사해 보여서 그길로 들어갔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내 방송실에서 원고를 읽었다. 뒷날 진행 일을 하는 밑바탕이 된 셈이다.
게임과의 인연¶
1989년, BBC가 3학년이던 때다. 감기에 걸렸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서 벽을 상대로 다섯 시간 동안 탁구를 치다가 급성 심근염이 왔다. 그는 상하이로 옮겨져 두 달 동안 입원했다.
입원해 있던 두 달 동안 어른들은 또 무슨 일이 날까 걱정해서 그에게 공부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처음으로 느려졌다. 시험도 없고 허리띠도 없었고, 심지어 친척 한 사람에게서 45위안짜리 기차 변신 트랜스포머까지 받았다.
"안팎으로 여러 겹이 겹쳐 들어가는 그 큰 트랜스포머 말이다. 45위안이면 그때는 아주 비쌌다." BBC는 그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원해 있는 날들도 끝나기 마련이다. 집에서는 그가 돌아간 뒤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해서, 이번에 돌아가면 몇 등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BBC는 큰 병에서 막 나은 것을 믿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1등을 하면 게임기를 사 줄래요?"
1989년의 패미컴은 400에서 500위안쯤 했다. 한 사람의 한 달 월급으로도 모자랄 수 있는 값이었지만 부모는 그래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끝내 손에 넣은 그 게임기가 그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씨앗, 곧 게임의 씨앗을 묻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의 압박¶
BBC는 상하이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상하이의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먼저 상하이의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지역을 넘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상하이 친척 집에는 그가 지낼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당시 상하이에서 그런 조건을 갖춘 고등학교는 네 곳뿐이었다. 자오퉁대 부속고등학교, 푸단대 부속고등학교, 화둥사범대 제2부속고등학교, 상하이중학(上海中学)이다. 이 네 곳은 상하이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학교이기도 했다.
BBC는 이때의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나중의 대학 입학시험보다 더 큰 압박이었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시험을 치르면 퉁링으로 돌아가 그쪽 시험을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못 보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그는 끝내 상하이자오퉁대 부속고등학교에 들어갔다.
3년 뒤인 1998년, BBC는 상하이자오퉁대학 기계공학 및 제조 전공에 들어갔다. 그는 이 전공에서 배우는 것이 다 자동차 관련이었고 동기들도 대부분 나중에 상하이GM(上海通用)으로 갔다고 했다. 전공 자체는 그도 제법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래도 앞이 막막했다. 어려서부터 떠밀려 공부만 할 줄 알았던 그는 사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막막하고 들뜨던 1학년¶
1998년 대학 입학시험이 끝난 그해 여름방학에 BBC는 고모 집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졌고 첫 RTS 게임인 《레드 얼럿 95》를 해 봤다.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마침 컴퓨터와 PC방이 크게 퍼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셴젠(仙剑)》, 《스타크래프트》, 《발더스 게이트》 같은 게임이 한꺼번에 BBC 앞으로 밀려왔다.
대학에 붙어서 이제 아무도 간섭하지 않게 된 BBC는 마침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거침없이 빠져들었다.
《발더스 게이트》가 막 나왔을 때 그는 5일 밤낮을 내리 했고 중간에 두 시간만 쉬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는 걸음이 휘청거렸다.
그는 동기 셋과 함께 상하이자오퉁대 스타크래프트 팀도 만들었다. 뒷날 이름난 사람이 여럿 이 팀에서 나왔다. 나중에 http://Replays.net과 WE를 세우는 저우하오(周豪, Zax)도 그중 하나로, BBC보다 한 학년 아래 후배다.
다만 그렇게 거침없이 달리다 보면 발을 헛디딜 때도 있는 법이다.
자오퉁대에는 세 과목에서 낙제하면 유급이라는 아주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 수업에 거의 나가지 않은 BBC는 그렇게 예외 없이 유급했다. 이 정도면 이미 아주 심각한 경고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는 두 번째 1학년에서도 결국 세 과목을 낙제했다. 규정에 따라 그는 퇴학당했고 학위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말하면서 BBC의 얼굴에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원래 앞날에 대해 막막했으므로 길을 바꾸는 것 자체는 별것 아니었지만 가족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 자기를 학교에 보내느라 적지 않은 저축을 썼기 때문이다.
이때 BBC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뿐이었다. 일자리를 찾는 것과 재수해서 시험을 다시 치는 것이다.
BBC는 둘 다 해 봤다. 자오퉁대를 떠날 때 그는 학생증을 반납하지 않았고, 그 간판 하나를 내세워 중고생 과외를 했다. 한 번에 두 시간씩 반년을 해서 4,000위안 넘게 벌었다.
돈을 받아서 그는 자기 옷을 한 벌 사고 2,000위안을 내고 대입 재수 학원에 등록했으며 나머지는 다 어머니에게 드리고 재수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시험은 많은 사람에게 평생 가는 악몽이다. 나도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크게 눌릴 때면 밤에 내가 시험장에 앉아 빽빽한 문제지를 노려보면서도 아무것도 복습하지 않은 꿈을 꾼다.
2001년, BBC는 첫 번째 대학 입학시험으로부터 3년 뒤에 또 한 번 시험장에 앉았다. 이것은 진짜로 벌어지는 악몽이었고 그는 지난번보다 훨씬 긴장했다.
푸단대학 금융관리 전공에 지원했지만 아쉽게도 1점이 모자랐고, 푸단대학 의학원 임상의학으로 조정 배정되었다. 학사와 석사를 7년에 이어서 하는 과정이었고 나오면 바로 의사였다. 듣기에는 제법 괜찮은 것 같았다.
BBC는 이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달리 고를 것이 없었다. 하기로 했다.
1학년 해부학 수업에서 BBC는 자기 손이 떨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섭거나 흥분해서가 아니라 집안 내력의 신체 특징이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앞으로 외과 의사를 하기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때 《워크래프트 3》이 나왔다. 《스타크래프트》와 견주면 《워크래프트 3》은 조작이 적고 관객층이 더 넓었다. 원래 RTS 게임을 아주 좋아하던 BBC는 이 때문에 다시 게임을 시작했고, 금세 배틀넷(BN) 한국 서버에서 42레벨까지 올라갔다. 낮지 않은 수준이다.
한쪽에는 좋아하지도 않고 맞지도 않는 의학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좋아하고 잘 맞기도 하는 게임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묻힌 씨앗이 뿌리내릴 땅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자오퉁대에서 겪은 일이 있었으므로 그는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균형을 잡는 데 더 신경을 썼다.
그러다 5학년이 되던 해에 그는 더 참지 못했다.
2005년, BBC는 5학년이 되었다. 규정에 따르면 이 해에는 병원에서 실습을 해야 했다. 병원 일은 아주 규칙적이어서 아침 7시에 점호를 하고 오후 4시에 나왔는데, 그는 이것이 몹시 괴로웠다.
2003년부터 그는 하오팡(浩方)의 워크래프트 3 하위 사이트 운영자였고, 여러 워크래프트 3 대회에 아르바이트 해설자로 소개받아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그는 오프라인 대회부터 상하이 스포츠 채널의 게임 프로그램 《훙청스젠(红橙时间)》까지 두루 참여했다.
그는 여기서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을 찾았다.
2005년, 원래 《훙청스젠》의 편집 연출이던 장저시(张哲希), 곧 야오모(妖魔), 지금 ImbaTV의 파트너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GamesTV가 세워진 뒤 BBC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반드시 전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분량이 아주 많아서 진행자인 BBC는 언제든 자리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선택이 또 한 번 BBC 앞에 놓였다.
한쪽에는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 의사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그때만 해도 결코 안정적이지 않던 e스포츠 진행자가 있었다.
게다가 전업 진행을 고르면 병원 실습을 갈 수 없었고, 그것은 그가 또 한 번 졸업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시험 점수 때문에 맞은 그 허리띠와 전깃줄, 가족과 친척들의 기대, 참고 견디며 애써 온 그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고르겠는가?
BBC는 이렇게 말했다. "한 10분쯤 생각하고 야오모에게 하겠다고 했다."
자유를 좇던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흙을 뚫고 올라왔다.
이것이 아마 BBC가 자기 인생을 두고 처음으로 내린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를 기다린 것은 상하이 푸단대학 의학원의 졸업장이 아니라 수료증이었다.
그리고 라오양(老杨)과 함께 해설한 WCG 2005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이 처음으로 P2P 생중계 플랫폼을 통해 WCG 세계 결승 화면을 실시간으로 내보낸 자리였고, 중국 WE 클럽의 SKY, 곧 리샤오펑(李晓峰)이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에 오른 순간이기도 했다. 그와 동료들은 함께 25만 명 동시 시청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이런 것을 두고 괴로우면서도 즐겁다고 하는 것이겠다.
10년이 지나서 나는 BBC에게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BBC는 지금은 아주 즐겁지만 견디기 힘든 시기가 몇 번 있었다고 했다.
특히 2008년, 유시펑윈GamesTV가 해체되었을 때다. 백 명에 가깝던 팀에서 여섯 명만 방송국으로 돌아갔다. 급여는 4,000위안에서 3,000위안이 되었는데 일은 오히려 늘어서, 그 여섯 명이 원래 채널 전체가 하던 일을 감당해야 했다.
BBC는 그 시기가 꽤 비참했다고 했다. 갑자기 방향 감각도 안정감도 사라졌고, 방송국이 자기를 받아 주지 않았다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고 했다.
비참한 것은 정신만이 아니었다. 물질도 그랬다.
BBC가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된 것도 그때다. 아내는 당시 일이 없었고, 그의 3,000위안 급여에서 1,600위안은 집세로, 300위안은 담뱃값으로 나갔으므로 두 사람이 살아갈 돈은 1,100위안뿐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주 오리 당면국 한 그릇과 화쥐안(花卷) 두 개를 샀다. 화쥐안은 밀가루 반죽을 말아서 쪄 낸 빵이다. 당면국은 아내가 먹고 그는 국물에 화쥐안을 적셔 먹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BBC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이 정도면 어려움을 함께 겪은 부부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2009년, 유시펑윈은 웹 게임 공동 운영 협력을 시작했다. 애초에 e스포츠가 가장 업신여기던 온라인 게임이 끝내 많은 e스포츠 조직의 생명줄이 되었을 뿐 아니라 e스포츠의 첫 목돈까지 만들어 줄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해 BBC의 급여는 8,000위안으로 올랐고 그 뒤 2년은 살림이 그럭저럭 좀 나아졌다.
BBC는 아쉽게도 회사가 커지자 국유기업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인재에 대한 보상이 없었고, 프로젝트 초기 투자가 없었고, 업무 지표는 높았다. 그 때문에 아무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원래 있던 콘텐츠조차 유지하기 어려웠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 그들은 여러 해 동안 내부에서 계속 갈등했다.
2014년 6월 6일, GamesTV 시절부터 함께 일해 온 오랜 e스포츠 사람 여섯 명, 곧 야오모, BBC, 117, 하이타오(海涛) 등이 함께 나와 ImbaTV라는 새 회사를 만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선택, 새로운 모험을 한 것이다.
BBC는 아들이 태어난 뒤로 게임도 적게 한다고 했다. 요즘은 날마다 7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개인 방송을 하고, 그다음에 회사로 가서 일을 처리하고, 저녁에는 회사의 생방송 프로그램을 밤 10시까지 한다.
고되지만 아주 즐겁다.
명해설자 BBC의 인생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