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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쉐차: 우리가 놓친 것은 게임기 몇 대만이 아니다

저자 BBKinG(류양, 刘洋)이 계획했으나 끝내지 못한 두 번째 책 《중국 게임의 이면사》 중 한 장.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四 雪猹: 我们错过的不止是几台游戏机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4년 9월 30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856097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2014년 9월 29일, 수많은 게임인의 벅찬 감회와는 정반대로, 엑스박스 원(Xbox One) 중국판의 정식 해금 발매는 대다수 게임 애호가들 사이에서 별다른 파문을 일으키지 못한 듯했다.

대다수 사람들 눈에는, 지역 잠금이 걸려 있고 정품 게임도 고를 것이 별로 없으며 값은 밀수품보다 비싼 게임기가 매대에 오르는 일이 뭐 그리 기쁘겠는가?

따지고 보면 게임기 하나 아닌가? 우리 대다수는 어릴 때 만져 보지도 못했지만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우리가 놓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내 삶에 별 영향도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 쉐차(雪猹)와 이야기를 끝내기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쉐차의 본명은 양쉐페이(杨雪飞)이고 1980년 우한(武汉)에서 태어났다. 쉐차는 그가 쓰는 인터넷 이름이고, 이름 속 猹는 루쉰(鲁迅)의 소설 《고향(故乡)》에 나오는 짐승 이름이다. 그는 전 《게임기 실용기술(游戏机实用技术, 통칭 UCG)》의 선임 편집자이자 고급 기자였고, 필명은 둬볜싱(多边形), 곧 다각형이라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콘솔 게임 분야를 파고들었고, 중국 게임 매체에서 처음으로 미국 E3 게임쇼 취재에 파견된 편집자이며, 국내외 여러 콘솔의 발전 과정을 몸으로 겪었다. 이번 마이크로소프트 차이나의 엑스박스 원 발매 행사에도 귀빈으로 초대받았다.

쉐차는 중국 콘솔 게임 시장이 한 걸음씩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고, 해외 콘솔 게임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발전 과정도 깊이 겪었다. 이 두 흐름을 견주어 보면 중국과 해외의 게임 문화가 얼마나 크게 다른지, 왜 해외의 아주 좋은 게임이 중국에 오면 뿌리내리지 못하는지, 우리가 직접 만든 게임은 왜 그렇게 눈앞의 성과에만 급한지를 더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쉐차의 특별한 어린 시절

쉐차의 어머니는 우한 우의상점(武汉友谊商店)에서 일했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라면 알 텐데, 우의상점은 초기에는 중국에 있는 외국인만을 상대로 연 상점이었고 나중에 개방되어 일반 대중에게 외국 물건을 파는 백화점이 되었다.

그래서 쉐차는 아주 이른 시기에 해외의 신기한 상품을 잔뜩 접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1984년에 미국 아타리 게임기를 만져 봤고 87년에는 닌텐도의 패미컴을 해 봤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덕에 그는 가장 새롭고 가장 좋은 것을 접하는 일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전자오락은 모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그가 열 몇 살이던 무렵 중국에는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고 그러니 컴퓨터 게임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아케이드 오락실과 바오지팡(包机房), 곧 게임기를 빌려 노는 방이 그가 자주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바오지팡

아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이미 흐릿해진 말일 것이다. 바오지팡은 98년 이후의 컴퓨터방(电脑房), 곧 중국 PC방(网吧)의 초기 형태와는 달랐다. 바오지팡은 콘솔 게임만 다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패미컴, 슈퍼 닌텐도, 그리고 나중의 플레이스테이션이다.

보통 바오지팡 안에는 텔레비전이 한 줄로 놓여 있었고, 텔레비전 아래 장에는 게임기와 컨트롤러가 든 서랍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반쯤 열린 서랍, 어지럽게 엉킨 선, 온갖 모양의 컨트롤러. 기억나는가? 이것이 우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쉐차에게 어린 시절은 우한 삼진(武汉三镇)의 후미진 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던 바오지팡 몇 곳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집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수시로 단속에 걸려 문을 닫던 이 작은 어두운 방들에서 게릴라처럼 슈퍼 닌텐도, 3DO,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새턴, 드림캐스트, 플레이스테이션 2 같은 콘솔을 접했다.

지금과 견주면 그때 콘솔 게임을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2000년에 국가가 게임기를 금지하는 명확한 규정, 곧 게임기 금지령(游戏机禁令)을 내놓기 전까지 오랫동안, 게임기와 오락실은 암묵의 규칙처럼 음란, 도박, 마약이 있는 불량 업소로 묶여 있었다. 무허가로 운영되는 지하의 작은 어두운 방이었고 수시로 봉쇄되고 정리당했으며, 여기에 사회의 부정적인 딱지까지 더해져 상당히 큰 규모의 콘솔 사용자층이 처음부터 떨어져 나갔다.

다음은 콘솔 게임 자체의 높은 문턱이다.

작은 쪽으로 보면 세이브 파일부터 문제였다. 공용 게임기이다 보니 세이브가 다른 사람에게 덮어써지기 일쑤여서 처음에는 세이브를 숨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니 이를 악물고 몰래 돈을 모아 아이에게는 대단히 비싼 메모리 카드를 샀다.

큰 쪽으로 보면 슈퍼 닌텐도 시절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나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물건의 주된 쓸모는 불법 복제를 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품 카트리지 안의 롬을 뽑아내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써 넣으면 그다음부터는 디스크 드라이브로 즐길 수 있어서 정품을 따로 살 필요가 없었다.

디스크 드라이브의 등장과 슈퍼 닌텐도의 풍부한 게임 선택지는 콘솔의 보급을, 특히 슈퍼 닌텐도의 보급을 앞당겼다. 그때 바오지팡에는 거의 다 슈퍼 닌텐도가 있었다. 그래도 지금과 견주면 90년대 초 슈퍼 닌텐도에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3천에서 4천 위안이라는 값은 보통 가정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나온 세가 메가 드라이브는 값이 상대적으로 쌌다. 그래서 그 뒤로 집안 사정이 조금 나은 아이들 상당수가 일본계 게임의 길로 들어섰다. 이를테면 이 이면사 제1장에 쓴 상하이 아이 지촨밍징(吉川明静)이 그렇다.

그러나 쉐차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바오지팡에서만 놀 수 있었고, 게다가 값을 아끼려고 자주 밤샘 이용을 했다. 주인은 밤에 집에 가서 자면서 그를 작은 어두운 방에 가둬 두고 혼자 놀게 했다.

인터넷이 없고 게임 잡지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이라 공략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관문을 넘으려면 주위 친구들과 요령을 주고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두운 방에 갇혀 있으면 누구에게 묻겠는가? 그래서 수도 없이 수수께끼를 못 풀어 막힐 때마다 그는 영어 문제를 베껴 적어 두고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았다. 그 덕에 중학생 때 이미 영어가 대단히 좋았고 고등학교에서는 일본어도 조금 배웠다.

어릴 때부터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은, 내가 인터뷰한 성공한 이면의 게임인들이 거의 공통으로 지닌 특징이다.

쉐차도 그래서 더 큰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2002년, 여러 게임 커뮤니티를 자주 드나들던 그는 불현듯 생각이 나서 《메탈기어 솔리드 2》의 팬 소설을 한 편 썼다. 이 글이 《게임기 실용기술》 편집위원 둥팡즈주(东方蜘蛛)의 눈에 들었고, 그는 이 글을 《게임·인(游戏·人)》 잡지에 추천했다. 그 뒤 그는 게임 매체 판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콘솔 게임과 해외 동향을 잘 아는 덕에 원고 청탁을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큰 청탁은 《게임기 실용기술》 편집자 Gouki에게서 왔다. Gouki는 당시 《메탈기어 솔리드》 특집을 만들고 싶어 했고 쉐차에게 게임보이판 공략을 써 달라고 했다. 쉐차는 아주 진지하게 임했다. 게임 속 각 스테이지의 전체 지도를 만들려고 그는 미련하지만 아주 쓸모 있는 방법을 썼다. 에뮬레이터에서 한 걸음 갈 때마다 화면을 한 장씩 캡처한 뒤 포토샵으로 전부 이어 붙인 것이다.

다행히도 이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쉐차는 곧바로 《게임기 실용기술》 선전(深圳) 편집부에 정직원으로 들어갔다. 잡지가 마침 영어를 잘하면서 게임도 아는 사람을 찾아 편집진을 보강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옛말은 언제나 고전이다.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콘솔 게임 잡지는 둘이었다. 하나는 《전자게임 소프트웨어(电子游戏软件)》이고 다른 하나가 《게임기 실용기술》이다. 여기서 이 두 잡지를 소개해 둘 필요가 있다.

《전자게임 소프트웨어》는 1994년 6월에 창간했고 처음 이름은 《GAME 수용소(GAME集中营)》였다. 중국의 첫 정식 게임 잡지다. 뒤에 1995년, 중국 콘솔 게임의 처지를 한탄한 고전적인 사설 《까마귀 까마귀 운다(乌鸦乌鸦叫)》를 실었다가 게임 강력 단속의 총구에 정면으로 걸려 한때 정간되었고, 이름을 《전자게임 소프트웨어》로 바꾸고 나서야 되살아났다. 이 사설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전자게임 소프트웨어의 가장 고전적인 글 《까마귀 까마귀 운다》

20년이 지난 오늘 봐도 이 글이 게임 불법 복제 시장의 해악과 업계의 근시안에 대해 던진 경고는 여전히 귀를 울린다.

《게임기 실용기술》은 1998년에 창간했고 2001년에 반월간으로 바뀌었으며 절정기에는 월 판매량이 30만 부를 넘었다.

쉐차는 2003년 이 잡지 편집부에 들어갔을 때 천국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흠모하던 편집자들, 이를테면 Gouki, 샤자(沙迦), 성푸스(胜负师)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전에는 도저히 살 수 없던 온갖 게임기를 공짜로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짜로 게임을 하면서 월급까지 받는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이러니 온 힘을 다해 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그의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2004년 그와 Gouki 두 사람은 미국 E3 게임쇼 취재에 파견되었다. 그해 그는 스물넷이었고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 길이었다. 그 뒤 몇 해 동안 《게임기 실용기술》은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해마다 그들을 미국 E3와 도쿄 TGS에 보내 취재하게 했고, 이런 멀리 보는 전략적 안목은 중국 게임 업계에 1차 정보를 대량으로 가져다줬다.

쉐차는 이 시절에 깊이 감사한다.

그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바깥세상을 접할 줄은, 특히 콘솔 게임의 과거와 미래를 알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 덕에 게임 업계 전체의 발전을 더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계 콘솔 게임 전복의 역사

쉐차는 콘솔 게임이 70년대 미국에서 일어섰다고 본다. 아타리가 흥한 데는 아케이드 게임을 가정용 기기로 옮긴다는 대단히 앞을 내다본 전략도 있었지만, 개방형 게임 플랫폼을 세워 수많은 게임이 들어올 바탕을 놓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플랫폼의 관리는 대단히 거칠어서 아타리는 게임의 품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특히 "양이 질을 압도한다"는 잘못된 정책을 편 뒤로 조잡한 게임이 대량으로 나왔고, 1983년 마침내 유명한 "아타리 쇼크(Atari Shock)" 사건이 터지면서 실망한 사용자 시장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

게임 몇 개가 북미 게임 콘솔 시장 전체를 무너뜨렸고, 황금기를 지나던 아타리는 이 일로 곤두박질쳤다.

1983년, 닌텐도가 기회를 잡았다.

그들은 패미컴을 내놓을 때 아타리의 교훈을 새겼다. 플랫폼을 세우고 게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품질만이 아니라 수량 면에서도 FC 플랫폼의 게임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 전복적인 진보로 게임의 기준과 품질이 크게 올라갔고 콘솔 게임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으며, 닌텐도는 새 시대의 패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을 일으켜 세운 바로 그것이 그들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닌텐도가 이후 게임 제작사에 지나치게 가혹하게 감독한 것은 그들을 또 다른 극단으로 몰고 갔다.

새로운 도전자, 차세대 콘솔

1994년, 소니와 세가가 이미 광디스크를 쓰는 차세대 콘솔 플레이스테이션과 새턴을 내놓은 뒤에도 닌텐도는 자사의 3세대 콘솔 N64에서 고집스럽게 카트리지를 고수했다. 낡은 방식의 가혹한 통제 체계도 그대로 유지하며 게임 공급사들에게도 비용과 효율 면에서 이미 뒤떨어진 카트리지를 쓰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업계와 플레이어의 반발을 불렀다.

그리고 이 일이 부른 가장 심각한 결과는, 유명 게임 개발사 스퀘어가 원래 N64로 낼 예정이던 《파이널 판타지 7》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업계에서 지니던 영향력과, 그때 닌텐도와 소니가 서로 칼을 겨누던 대치 관계를 생각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닌텐도에 치명타였다.

소니는 기세를 몰아 구호를 내걸었다.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

도전자는 닌텐도의 그 플랫폼 체계를 다시 한번 뒤엎었다.

소니도 게임 품질은 여전히 감시했지만 게임 공급사에 대한 통제는 일부 풀어, 게임마다 발행 수량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했고 닌텐도처럼 돈을 내고 자기들에게 복제를 맡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니는 게임 한 장당 라이선스 비용도 낮춰 게임 회사에 이익을 돌려줬고, 이것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욕을 크게 끌어올렸다.

동시에 N64가 나오기 전, 닌텐도가 만든 휴대용 3D 게임기 버추얼 보이는 지나치게 앞서간 개념 탓에 제대로 된 기술 뒷받침을 얻지 못해 실패했고, 닌텐도의 핵심 설계자이자 게임보이의 아버지인 요코이 군페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회사는 크게 힘을 잃었다.

닌텐도는 이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소니가 일어선 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나오면서 이 업계는 다시 한번 뒤집히는데, 이건 나중 이야기이니 몇 해 뒤에 하기로 하자.

이제 같은 시기 중국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자

90년대에 바오지팡은 온갖 방식으로 봉쇄당했고, 대중은 콘솔을 살 수 없었으며, 국내에는 온갖 짝퉁 패미컴과 불법 복제 게임이 넘쳤다. 그리고 중국 시장에 들어오려다 몇 번이나 실패한 세가가 있었다. 1997년 세가와 국내 쓰퉁 그룹(四通集团)이 함께 내놓은 세가 새턴(SS)도 결국 실패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글 세가가 있었기에 게임이 있었다를 권한다. 그 글에는 세가의 중국 전략과 당시의 시대 배경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 뒤에는 아슬아슬한 회색 지대를 노린 시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콘솔을 휴대기로 통합해 우회로를 탄 선유(神游, iQue) 같은 회사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회사의 능력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닌텐도의 대행권을 따냈을 뿐 아니라 그토록 강경한 닌텐도의 상표를 아예 선유의 로고로 바꿔 달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지금 봐도 대단히 불가사의하다. 당신이 애플 휴대전화의 중국 총대리를 맡은 데다 애플 로고를 전부 자기 얼굴 사진으로 바꿔 달았는데 가장 신기하게도 애플이 그것에 동의한 것과 같다.

2003년 소니도 죽을힘을 다해 마침내 모든 절차를 끝내고 플레이스테이션 2의 중국 정식판 판매를 시작하려 했는데, 결과는 발매 하루 전에 영문도 모르게 발매 연기 통보를 받은 것이었고 6일 뒤에야 조용히 시장에 나왔다. 이번 엑스박스 원 중국 정식판의 발매 과정과 거의 똑같다.

그러나 회색 지대를 노린 쪽이든, 온갖 고난을 다 겪고 정식으로 들어온 쪽이든 마지막에는 다 실패했다.

정품 게임의 심의가 막혔기 때문이다.

당당한 중국 정식판 기기인데 할 만한 게임이 없었다. 하드웨어 판매를 끌어올리려면 새 게임이 끊임없이 나와야 하는 게임 콘솔에 이것은 치명상이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놓친 것이 정말 이 게임기 몇 대뿐일까?

쉐차는 이렇게 말한다. 하드웨어 지원의 차이 때문에 콘솔 게임의 제작 기준은 PC 게임보다 훨씬 높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년이 지나는 동안 그때 콘솔 게임을 하며 자란 해외의 게임인들은 이제 현대 게임 업계의 중추가 되었다고. 그렇게 뛰어난 게임을 보고 들으며 자란 그들이 만든 게임을 우리가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것이 우선 문화 축적의 문제다.

게다가 중국의 PC 사양과 네트워크 사정이 오래 미쳐 온 영향 아래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게임을 지금 당장 들여온다 해도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교하고 복잡한 대형 게임일수록 중국에서 더 빨리 죽고, 많은 콘솔 게임은 온라인 버전으로 바꿀 때 대대적으로 덜어 내야만 현지에 맞출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인들이 환호하는 것은 이것이 시장이 길러지는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일 뿐이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십 년에서 이십 년은 더 스며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은 첫발은 뗀 셈이다.

이것은 아직 문화적 소양의 격차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놓칠지도 모르는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마도 새로운 물결의 산업 혁명일 것이다

오늘날 오락을 중심에 둘 뿐이라고 말하는 엑스박스 원은 당신 집 거실에 놓여 있고, 당신은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어떤 장치의 힘도 빌리지 않고 동작으로 지시할 수 있다. 음악과 텔레비전을 재생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영상 통화를 걸 수 있고, 더 많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다.

잠깐, 《아이언맨》을 본 적 있는가?

그 안에서 지능형 상호작용부터 군사급 활용까지 못하는 것이 없던 집사 자비스를 기억하는가?

당신은 아직도

우리가 놓친 것이 정말 게임기 몇 대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중국 게임의 이면사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다. 당신에게 충분한 인내심과 통찰력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