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리샤오펑이 Sky가 되었을 때¶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四 当李晓峰成为SKY
2005년 WCG를 앞두고 BBKinG이 쓴 글이다. 저자의 즈후 칼럼에 2013년 12월 15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7811
이 번역은 2026년 7월 31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스무 살이 되기까지 리샤오펑(李晓峰, Sky)이 생각조차 못 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자신에게 네 살 아래 남동생뿐 아니라 두 살 아래 친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동생은 산아제한 정책의 벌금을 피하려고 친척 집에 맡겨져 자랐다. 다른 하나는 2005년 5월 ACON5 세계 e스포츠 대회 우승자로 시상대에 오른 일이다. 그의 아이디 WE.Sky는 전 세계 e스포츠 팬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잿빛이었던 Sky의 어린 시절¶
1985년 음력 3월 27일, Sky는 허난성의 작은 현급 도시 루저우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루저우시 제1인민병원 의사였고, 어머니는 양조장에서 일하다가 1998년 중국 국유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두 고모가 모두 먼 곳으로 시집을 가면서 친조부모를 돌볼 사람이 새로 필요해졌고, 집에는 커 가는 아이가 셋 있었다. 일곱 식구의 생계가 아버지의 박봉에 온전히 얹혔다. 중년에 접어든 아버지는 그 압박에 성미가 사나워졌고, 아직 철없는 십 대였던 그가 자주 매를 맞는 대상이 되었다.
Sky가 살던 동네의 아이들은 늘 싸움과 말썽을 일으켰다. 철이 들 무렵부터 그곳에 살던 그도 차츰 그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의 위안다터우 은화를 훔쳐 돈으로 바꿨다. 위안스카이의 초상이 새겨진 옛 중국 은화다. 수업을 빼먹고 오락실 게임을 했고, 성적은 그저 그랬다. 아들이 잘되기만 바라던 아버지는 속이 탔고, 야단과 매질은 점점 늘어났다. 그 때문에 중학생이던 그는 여러 차례 집을 나갔다. 가장 길었던 때는 엿새였다. 어린 Sky는 작은 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고, 배가 고프면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으며, 밤에 졸리면 신문지를 구해다가 공사가 끝나지 않은 건물에서 잤다. 이 대목에서 그는 눈을 들며 멋쩍게 웃었다.
게임이 그의 눈을 밝혔다, 잊지 못할 첫 원정 대회¶
중학생 시절 Sky는 매일 아침값을 아껴 게임 토큰 두 개를 사서 삼국지를 했다. "그거 있잖아요, 조이스틱을 흔들면 만두를 먹는 게임!" 그는 신이 나서 설명했다. 1998년, 사촌 동생이 자기가 하던 PC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Sky에게 소개했다. Sky는 게임 역사에 남은 이 명작에 금세 빠져들었고, 그의 운명은 그 순간 e스포츠와 묶였다.
Sky가 혼자 다른 성으로 대회에 나간 것은 2001년 초가 처음이었다. 시안 황푸좡 부근의 한 PC방에서 대회가 열렸다. 중국의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상금은 500위안뿐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 고수가 많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당시 그는 허난 상추의 대전 플랫폼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Home 팀의 주력 중 하나였다. 대회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시안까지 가는 데 돈이 얼마나 들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따져 보지도 않고 기차표를 끊어 시안으로 갔다.
대회 전 Sky는 자신이 있었고, 관중 상당수도 그를 우승 후보로 봤다. 그러나 1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두 번 모두 당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선수 lion_jin에게 졌고, 두 번의 패배로 32강 밖에 머물렀다. Sky는 몹시 낙담했다. 집으로 가는 기차에서 승무원이 표를 검사할 때 기차표를 찾지 못했다. 승무원은 어떤 설명도 들으려 하지 않아 그는 표를 다시 끊어야 했다. 표를 사고 나니 수중에 0.5위안이 남았다. 새벽 4시에 뤄양역에 내렸을 때 학교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찬 바람 속을 세 시간 걸어 기숙사에 닿았다. 그때 일을 두고 Sky는 지금 생각하면 좀 아찔하다고 했다. 아무 준비도 아무 계산도 없이 시안에 갔는데,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것이다.
지면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Sky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2002년 WCG 시안 선발전에서 Sky는 1라운드에 탈락했다. 그는 거의 절망했다. 경기장을 나오며 옆에 있던 3층 높이의 창턱을 보고는 눈을 감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 전까지 그는 정저우의 크고 작은 대회 우승컵을 거의 다 가져왔고, 스스로 프로 e스포츠 선수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 때문에 가족과의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그해 WCG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있는 병원에서 성실히 실습하며 의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1라운드 탈락은 Sky의 꿈이 깨끗이 부서졌다는 뜻이었다.
운명의 전환점도 바로 그 순간에 왔다. 2002년 WCG는 지역 예선마다 일정이 달랐고 참가 자격에 제한도 없었다. 덕분에 Sky에게 지역 예선에 한 번 더 나갈 기회가 생겼다.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가족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운명을 자기 손에 쥐기 위해 그는 WCG 우한 예선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기차표를 사고 참가비를 내고 나니 십몇 위안이 남았다. 돌아갈 차비도 되지 않는 돈이었다. 하필 그때 낯선 곳의 물과 음식이 맞지 않아 고열이 나서 소염제를 사야 했는데, 다행히 친구가 도와준 덕분에 고비를 넘겼다. 대회는 끝났고 그는 3위에 올랐지만 실패였다. 각 지역 상위 2명만 베이징에서 열리는 WCG 중국 결승에 갈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뒤 Sky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 고향으로 돌아가 병원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
2002년 집으로 돌아간 Sky는 아버지가 있는 병원에서 반년 동안 실습했다. 그동안 약국에서 약을 지었고, 수술실에서 겸자를 건넸으며, 밤에는 의사를 따라 회진을 돌았다. 외과 의사가 환자 수술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 몇 바늘을 그에게 꿰매게 하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수술 중에 Sky가 처음으로 환자의 대출혈을 봤다. 볼수록 긴장해서 숨 쉬는 것마저 잊었고, 결국 정신을 잃어 아버지가 그를 부축해 수술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다만 그 뒤로 여러 번 겪으면서 그는 칼과 피가 오가는 그 생활에 차차 익숙해졌다.
2003년 초, Sky의 아버지는 루저우를 떠나 정저우의 병원으로 연수를 갔다. 연수 기간에는 급여가 나오지 않아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장사에 매달렸고, 자연히 그를 챙길 겨를이 없어졌다. 이 무렵 Sky는 온라인 게임 뮤 온라인(MU Online)에 빠졌다.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 좋은 아이템이 나왔는지 확인할 정도였다. 4월부터 8월까지 하루 종일 집 컴퓨터로 게임만 했다. 스타크래프트도 하지 않았고 병원 실습도 나가지 않았다. 몇 달의 몰입 탓에 그가 2003년에 거둔 성적은 GOC 지역 예선 우승과 GOC 스타크래프트 온라인 대회 우승뿐이었고, 그해 WCG에서는 아무 성적도 내지 못했다. 뮤를 몇 달 하고 나서 Sky는 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대리 육성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핵을 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온라인 게임에 차츰 흥미를 잃었다.
꿈을 붙들고 버티며, 다시 프로 선수의 길로¶
2003년 9월, 정저우의 선란 PC방은 통신사가 여는 PC방 대회에 내보낼 e스포츠 선수를 몇 명 키우려고 Sky를 비롯해 이름이 좀 알려진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훈련용 컴퓨터와 공간을 무료로 내줬다. 워크래프트 3을 막 익힌 Sky는 Home 팀 동료 몇 명과 함께 블리자드의 배틀넷에서 등급을 올리기 시작했고, 석 달 만에 중국 1위에 올랐다.
그때 그들에게는 수입이 없어서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낮에는 PC방이 영업을 해야 해서 훈련은 밤에만 할 수 있었다. 잠은 PC방 뒤편의 작은 창고에서 잤다. 창고 입구는 높이가 1미터밖에 되지 않았고, 안에는 위층만 쓸 수 있는 이층 침대가 하나 있었다. Sky는 매일 덩치가 아주 큰 친구와 그 한 칸에 끼어 잤다. 이런 생활이 석 달 이어졌다.
2004년 설에 Sky의 아버지가 연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Sky가 병원 실습을 이어 가지 않은 것과 어머니가 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몹시 화를 냈고, 한동안 집 안 공기가 아주 팽팽했다.
바로 그때 Sky는 베이징의 Hunter 클럽이 프로 e스포츠 선수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 1,000위안에 숙식 제공이었다. 그는 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보내기 싫었지만 고생을 좀 해 보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렇게 Sky는 허난을 떠나 베이징으로 갔다.
Hunter에 들어가기 전 Sky는 스타크래프트에서 낸 성적으로 Hunter의 스타크래프트 프로 선수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시 Hunter의 스타크래프트 선수는 PJ 등으로 이미 정원이 찼고, 워크래프트 3 선수는 크게 부족했다. Hunter 클럽 책임자는 Sky가 2003년에 워크래프트 3 배틀넷 5위 안에 들어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는 점을 보고 그를 Hunter의 워크래프트 3 선수 명단에 넣고 3개월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Sky는 얼떨결에 워크래프트 3 선수가 되었다.
Sky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겼다. 고생하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배틀넷에서 14시간 넘게 연습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이 기간에 Sky는 ACON4 베이징 지역 우승을 차지했다.
YolinY에서 WE로, 세계 챔피언의 꿈에 한 걸음씩¶
2004년 중반, Sky는 CEG 베이징 지역 2위 안에 들지 못해 Hunter와의 계약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중국 e스포츠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KinG의 부름을 받아, 창단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프로 e스포츠 클럽 YolinY에 들어갔다. 좋은 대우와 수준 높은 팀 훈련 덕분에 Sky의 경기력과 기량은 계속 올라갔다. 같은 해 6월 베이징에서 열린 ACON4 세계 e스포츠 대회 중국 결승에서 Sky는 준우승했다. 우승자는 그의 YolinY 동료, 왼손이 춤을 춘다고 불리던 Suho였다.
2005년 5월, 옛 YolinY 클럽은 미국 IGE의 후원을 받아 이름을 World Elite, 줄여서 WE로 바꿨다. IGE는 한국의 정상급 선수들도 함께 WE에 합류시켜 진짜 세계적인 e스포츠 드림팀을 꾸렸다.
Sky는 그 뒤의 일을 거의 한마디로 넘겼다. 2004년 한국의 WEG(World e-Sports Games) 초청으로 한 달간 한국에서 교류 경기를 치른 일, 2005년 프랑스에서 열린 ESWC 세계 e스포츠 대회에서 4위에 오른 일, 2005년 시안에서 열린 ACON5 세계 e스포츠 대회에서 워크래프트 3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일을 두고, Sky는 자기가 이런 성적을 낼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만 말했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그는 가족을 떠올렸고, 지난 여러 해 자신을 도와준 친구들을 떠올렸다. Sky는 자신이 운이 좋다고 여긴다.
Sky와 그의 친구들¶
2002년 Sky의 집안은 압박이 심했다. 그 무렵 그는 훈련을 이어 가려고 하루 밥값으로 0.5위안만 썼다. 한 개에 0.1위안 하는 지짐만두 다섯 개를 사고, 만두에 딸려 나오는 국물을 공짜로 마셨다. Sky가 가장 힘들 때 PC방 훈련을 주선해 주고 밥값을 계속 대 준 사람이 샤오야오페이자이(逍遥飞仔)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Sky가 한 해에 받는 상금은 20만 위안에 가깝고, 국가에 내는 세금은 5만 위안에 가깝다. 그런 지금도 샤오야오페이자이를 이야기할 때면 고마움이 말에 그대로 묻어났다.
WE 클럽의 단장 KinG에 대해 Sky는 타고난 리더라고 했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챙기고, 사소한 부분까지 사람이 편하게 느끼도록 처리한다는 것이다. KinG이 자신의 인간적인 힘으로 이만한 인재들을 이렇게 오래 한자리에 모아 둔 것을 Sky는 대단하게 여겼다.
WE 클럽 동료들에 대해 Sky는 Suho를 부지런하고 독하게 노력하는 동료이자 게임 재능이 아주 뛰어난 선수라고 했다. 2004년 Sky는 경기마다 Suho를 이기고 싶었지만, Suho는 늘 속을 알 수 없는 고수처럼 느껴졌다. WE 클럽의 동료 WE.Anas, WE.DuCui, WE.TiGer, WE.WYW는 저마다 우승 타이틀을 가진 강자였다. Sky는 자신이 재능 있는 선수가 아니라서 더 많은 노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중순, WE.Sky는 동료 WE.Suho와 함께 중국 대표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WCG 세계 결승 워크래프트 3 종목에 나간다. Sky는 최근 자기 상태가 좀 떨어져 있지만 열심히 훈련해서 싱가포르 WCG 세계 결승에서 자기 최고의 기량을 내고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Sky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훈련에 들어갔다.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방금 그가 들려준 장난스럽고 제멋대로였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니 그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