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WOW, 블리자드는 사실 주청과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
저자 BBKinG(류양, 刘洋)이 계획했으나 끝내지 못한 두 번째 책 《중국 게임의 이면사》 중 한 장.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三 WOW 暴雪其实不想跟九城“离婚”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4년 9월 19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849790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중국 게임의 이면사를 이야기하자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중국 서비스 사례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2004년, 그전에 《모젠(魔剑, 서구권 출시명 Shadowbane)》과 《EQ(에버퀘스트)》 같은 대형 게임이 중국에서 서비스에 실패한 탓에, 당시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비공개 테스트를 하고 있던 같은 유형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중국 게임 업계에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게임은 이후 몇 해 동안 전 세계에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세웠다. 업계의 기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전에는 없던 게임 주변 산업과 문화가 줄줄이 일어나게 했고, 동시에 중국 내 대행권을 따낸 디주청스 그룹(第九城市集团, 이하 주청)에 이름과 돈을 함께 안기며 중국 일선 게임 회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2009년 블리자드와 주청(九城)의 "이혼" 사건은 온 판을 더 크게 들끓게 했고, 한때는 문화부와 신문출판서(新闻出版署) 고위층의 힘겨루기까지 끌어들였다. 그 기간에 양쪽이 벌인 온갖 드러난 다툼과 보이지 않는 다툼은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아 첩보전의 살벌함에 못지않았고, 심지어 지하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을 대신 전하는 대변인 체계까지 낳았다. 이른바 외삼촌당(舅舅党)이다. 안에 있는 외삼촌에게 들었다며 소식을 흘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2014년에 이르러 블리자드와 넷이즈(网易)는 이미 사이가 안정된 시기에 들어섰고, 신문출판서도 2013년에 광전 부문과 합쳐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国家新闻出版广播电影电视总局)이 되었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곧 6.0 버전을 내놓을 참이었다. 모든 것이 조용해진 듯했다.
그러나 역사는 돌아갈 수도 없고 못 본 척할 수도 없다.
미국 블리자드가 애초에 주청과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아는가?
2008년 미국 본사에서 이 문제만 놓고 마지막으로 연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갈라서지 말자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왜 결국 갈라섰을까? 마지막 지푸라기를 누가 얹었을까? 누가 상대를 막다른 길로 몰았을까? 주청의 전략 착오였을까? 아니면 블리자드가 한순간 격노한 것일까?
처음부터 이야기해 보자.
2004년 4월, 디주청스 그룹은 비방디(维旺迪, Vivendi Universal Games) 산하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와 중국 전략 협력 협정을 맺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중국 대륙 지역 독점 대행 운영권을 얻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 조의 책임자는 쑨타오(孙涛)로 주청의 CTO였다. 주청이 WOW를 따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고, 첫 번째 프로젝트 책임자이기도 했다. 얼굴이 대단히 잘생겨서 게임 판에서는 그를 게임 업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라고 농담 삼아 불렀다. 뒤에 그는 주청을 떠나 빙둥 게임(冰动游戏)을 세웠고 몇 해 뒤 회사를 팔았으며, 지금은 핑안중국(平安中国)에서 일한다.
다른 두 명의 중요한 인물은 제품 총감 황링둥(黄凌冬)과 기술 총감 장환신(江焕新)이다.
황링둥은 주청 가상 커뮤니티의 첫 번째 구성원으로 회사의 원로였다. 뒤에 주청의 제품 담당 부총재로 올라섰고 지금은 텐센트 상하이 후위(互娱) 협력제품부 부총경리다. 그는 직접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프로젝트 조를 꾸렸고, 초기 팀의 많은 사람을 그가 직접 면접해 뽑았다.
이를테면 대외 소통을 맡은 프로젝트 매니저 마강(马刚, 지금은 유비소프트 차이나 수석 마케팅 총감), 미디어 매니저 류펑(刘峰, 별명 Aya, 지금은 항저우 러강(杭州乐港) 부총재), 그리고 "아제로스 국가지리(艾泽拉斯国家地理)" 사이트를 만든 Ediart 톈젠(田健)이 있다. 톈젠은 중국어화를 맡았다. 2011년 그는 상하이유뎬정보과기유한공사(上海游点信息科技有限公司)를 세워 모바일 게임을 개발한다. 또 주청과 블리자드 차이나의 역사를 관통하는 WOW 프로젝트 조의 원로 우젠(吴健)이 있다. 당시 그는 기획과 운영을 맡았고, 뒤에 블리자드 차이나에 들어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다른 블리자드 제품의 운영을 맡았으며, 그 뒤 초빙되어 쿵중왕(空中网)의 COO가 되었다.
기술 총감 장환신은 휴렛팩커드(HP) 출신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프로젝트가 막 시작될 때 주청에 들어왔다. 뒤에 주청의 부총재가 되었고 한동안 주청을 떠났다가, 최근 다시 돌아와 회사의 북미 개척을 돕고 있는 듯하다.
주청에는 당시 마케팅 부서가 없었고 큰 제품부 하나만 있었다. 웹사이트는 초기에 외주를 줬는데 그 일을 받은 팀이 01media다. 지금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디자인 회사가 되었다. 뒤에는 웹사이트를 맡을 사람을 따로 뽑았는데 저우하오(周豪, ZAX)다. 지금은 시마(希玛)의 CEO로 e스포츠를 하고 있고, WE 클럽과 StarsWar가 이 회사의 브랜드다. 웹사이트 디자이너로 후이린(胡依林)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름난 독립 디자이너가 되었다.
처음의 WOW 팀은 열 명 남짓이었다. 내가 모은 정보에 한계가 있어 빠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계속 고쳐 나가겠다. 2004년 말까지도 여전히 이 사람들뿐이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프로젝트 조가 만들어진 뒤에는 게임의 중국어화와 중국어 더빙이 가장 먼저 할 일이 되었다.
최초의 WOW 판본은 번역할 분량이 100만 자가 넘었고, 당시 아르바이트 번역자 예닐곱 명을 구해 크게 한판 벌일 준비를 했다. 주청은 다들 일하기 편하도록 번역 조를 중신타이푸(中信泰富)에서 옆에 있는 비교적 조용한 카이디커 빌딩(凯迪克大厦)으로 옮겼고, 회의실 하나를 비워 줘 밤을 새워 가며 번역하게 했다. 번역된 내용은 류지레이(刘吉磊, 뒤에 텐센트에 들어가 휴대전화 접속 쪽 일을 했다)가 1차 교정을 보고, 우젠이 2차 교정을, 톈젠이 3차 교정과 윤문을 맡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톈젠의 윤문이었다. 그는 서구 게임 문화에 대한 자신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딱딱한 번역을 아름답고 매끄러운 문장으로 바꿨고, 그의 작업은 뒷날 수많은 플레이어에게 인정받았다.
중국어 더빙은 성우 출신의 이름난 상하이 외화 더빙 감독 니캉(倪康)을 더빙 감독으로 모셔 왔다. 그는 뒷날 리그 오브 레전드의 중국어 더빙 감독도 맡았다고 한다.
니캉 선생은 대단히 꼼꼼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국 각지에서 최고 수준의 인력을 골라 상하이로 불러 녹음했다. 그중에서도 게임 속 대형 보스인 네파리안과 라그나로스에게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를 입히려고, 일부러 몽골 성우 궁거얼(龚格尔)을 찾아내 밤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오게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궁거얼은 곧바로 부스에 들어가 녹음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 시간을 씨름한 뒤 다들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젊은이는 감이 전혀 오지 않는 상태였다. 점심때가 되자 프로젝트 조는 의논 끝에 밥이나 한 끼 사 주고 정중히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밥을 먹고 나자 이 몽골 사내의 기운이 갑자기 전부 살아났고 위압감 있는 느낌도 다 나왔다. 그는 두 시간 만에 대형 보스의 목소리를 단숨에 다 녹음했다.
그러니 뒷날 던전에서 죽고 또 죽으며 전멸당할 때 들리던 그 얄미운 조롱 소리는 열에 여덟아홉은 배부르게 먹은 궁거얼의 목소리다.
비공개 테스트 준비, 서비스 개시 준비, 정부 심의, 그리고 코카콜라와의 협력이 2005년 공개 테스트 시작 전의 중점 업무가 되었다.
이때도 바깥에서는 여전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주청 안에서는 자신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비공개 테스트 계정을 처음 나눠 주기 시작했을 때 며칠 만에 블리자드 팬 30만여 명이 신청했다. 게다가 당시 신청 조건이 까다로워서 사용자 정보와 자료를 잔뜩 적어야 했는데, WOW 프로젝트 사람들이 보니 플레이어들이 하나같이 대단히 꼼꼼하게 적어 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상당히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지금도 많은 고참 플레이어가 기억할 《강희제도 워크래프트를 하고 싶다(康熙也想玩魔兽)》라는 영상은 아주 잘 만들어져서, 2005년에 인터넷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회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주청 직원들은 일부러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을 찾아내 고마움의 표시로 CD키를 몇 개 보냈다.
2005년 4월 9일, 첫 번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데이에 주청은 상하이 루완 체육관(卢湾体育馆)에서 플레이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공개 테스트 시점을 발표할 참이었다.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왔는데도 수천 명이 왔다. 안에는 사람이 가득 찼고 밖에서도 수많은 플레이어가 빗속에서 기다리며 몰려 있었다. 이것은 WOW 프로젝트 조에 엄청난 자신감과 힘을 줬다. 그날 주청의 사장 주쥔(朱骏)도 왔다고 한다. 그는 들어와 한번 둘러보고는 웃고서 무대 뒤로 돌아갔다. 이미 속으로 다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발표한 공개 테스트 시점은 4월 29일이었지만 실제 공개 테스트는 4월 26일에 시작되었다.
비공개 테스트가 끝나던 날 밤, 주청 직원들은 "악마의 침공, 세계 종말"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운영 팀이 거대한 몬스터를 조종해 주요 도시를 돌며 플레이어들과 어울리고 춤추며 함께 축하했다. 블리자드는 GM이 NPC를 조종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했지만 그날 밤만은 예외였다. 그러니 그 행사는 아마 대단히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면 아주 아름답고 기념할 만한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짧은 일화를 하나 이야기하겠다. 공개 테스트 전에 대행사는 보통 WOW 설치 디스크를 만들어 나눠 주는데, 이 설치 디스크를 만드는 데 쓰는 마스터 디스크는 당시 블리자드의 극비 문서였다. 가장 완전한 게임 파일이어서 최신 번역과 게임의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특송 업체를 믿지 못해 직원 스탠 왕(Stan Wang)을 따로 보내 미국에서 직접 들고 오게 했다. 주청 쪽 프로젝트 조는 이 디스크를 기다리느라 들떠서 밤을 꼬박 새웠는데, 디스크를 받아 들고 서둘러 컴퓨터에 넣어 보니 이 마스터 디스크가 망가져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공개 테스트다, 드디어 공개 테스트다.
최고 레벨은 45였고 플레이어의 열기는 상상을 넘어섰다. 모든 서버에 대기열이 생겼다. 그 무렵 미국 블리자드가 구미 지역에서 내놓은 마케팅 문구가 있었다. A world awaits, 하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 플레이어들은 이것을 하나의 세계가 줄을 서 있다고 바꿔 불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공개 테스트 대기열은 뒤이어 나온 게임들에도 깊은 영향을 줬고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업계 사람들 말로는 뒤에 어떤 게임은 줄을 설 필요가 없는데도 줄을 서는 효과를 일부러 만들어 냈다고 한다.
강한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운영을 두고 주청에 많은 요구를 했고, 그중에는 상당히 높은 요구도 있었다. 이를테면 서버 선택이 그렇다. 블리자드의 요구에 따라 주청은 휴렛팩커드에서 당시 가장 앞선 서버를 사들였고, 서버 클러스터 전체의 계산 능력은 인허(银河) 컴퓨터를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블리자드의 출발점은 대단히 단순했다. 플레이어에게 가장 좋은 게임 경험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한 태도는 때로 대행사를 몹시 힘들게 만들었고, 이것이 뒷날 두 회사 사이에 생기는 균열의 불씨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 테스트 인원이 60만을 넘어섰다.
프로젝트 조 사람들은 모두 대단히 기뻐했다. 성취감도 성취감이지만 다들 사장 주쥔이 약속한 보너스를 지키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2005년 초에 주 사장은 이 게임의 인원이 50만을 넘으면 보너스로 5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날 때까지 이 돈을 보지 못했고, 이것이 뒷날 프로젝트 구성원 여럿이 떠나는 복선이 되었다.
2005년, 야심에 찬 주청은 새로운 전략을 깔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새 게임을 잇달아 들여왔다. 이를테면 《줘웨즈젠(卓越之剑)》, 《치지스제(奇迹世界)》, 《디위즈먼(地狱之门)》, 《지잔(激战)》 같은 것들이다.
이 전략에는 한편으로 국내의 잠재적 경쟁 상대를 누르려는 뜻이 있었다. 먼저 손을 써서 좋은 게임을 다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청이 평생 블리자드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략의 층위에서 말하면 이 방향은 맞다. 성다(盛大)의 사례가 눈앞에 있었고 대행사와 게임 개발사의 갈등은 커지기만 할 테니 준비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성다와 다른 점은 그들의 상대가 한국 회사 같은 곳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상대는 오래된 거대 항공모함급 게임 회사,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다.
2005년 말, 새로운 갈등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이때 해외에서는 새 확장팩 《불타는 성전》이 나올 참이었는데, 이 확장팩에는 새로운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 미국 쪽은 플레이어에게 더 좋은 게임 경험을 확실히 주려면 더 좋은 서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봤고, 그래서 주청 쪽에 서버를 새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유의할 것은, 이때 주청이 큰돈을 들여 산 그 인허를 훨씬 넘어선다는 서버들을 아직 얼마 쓰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청은 망설였다.
틈은 그렇게 또 조금 벌어졌다.
그리하여 블리자드는 직접 중국 시장에 들어가는 전략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2005년에 블리자드 차이나 지사를 세우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양쪽이 다 수를 겨루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 살아남기 위한 것이고,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2006년 블리자드는 중국에서의 확장에 속도를 냈다.
그런데 주청은 이때 대단히 기묘한 수를 뒀다. WOW 프로젝트 조의 핵심 인력을 하나씩 이 프로젝트에서 빼내 앞서 들여온 여러 새 게임을 맡게 하고, 자기 회사에서 개발을 하던 인력을 데려와 WOW 운영을 맡긴 것이다.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이 수에 여러 목적이 있었을 수 있다. 하나는 이미 성공적인 운영 경험을 쌓은 구성원들에게 새 게임을 끌어 주게 하는 것이다. 하나는 실전 데이터를 통해 자기 개발 인력을 길러 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마도 WOW 프로젝트 조 안의 친블리자드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을 테다.
이 기묘한 수는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나는 모른다. 내 추측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을 내린 사람이 이 수가 남도 다치게 하고 자기도 다치게 하리라는 것은 절대 생각하지 못했으리라는 데 내기를 걸겠다.
먼저 프로젝트 조 책임자이자 친블리자드 쪽인 쑨타오가 곧바로 사표를 내고 자기 회사를 세웠고 사람들도 한 무리 데리고 나갔다. 그 뒤 주청이 새로 앉힌 COO는 낸시 저우(Nancy Zhou), 곧 저우닝(周宁)이다. 쑨타오에 비해 그녀는 블리자드를 훨씬 강경하게 대했다. 낸시는 지금 유비소프트 차이나의 총경리다.
주청의 운영 쪽 책임자 우젠은 다른 프로젝트를 맡고 싶어 하지 않았고, 블리자드는 그 틈을 타 그를 데려가 블리자드 차이나의 네 번째 직원으로 앉혔다.
주쥔은 이 일로 크게 노해 우젠과 블리자드 양쪽에 동시에 변호사 서한을 보낼 준비를 했고, 회사 내부 회의에서 누구도 우젠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하지 말라고, 그리고 블리자드도 우젠이 WOW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손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 일은 크게 번져서, 뒤에 주청과 블리자드가 서로 인력을 빼 가지 못하게 하는 협정까지 맺고 나서야 천천히 가라앉았다.
겉으로 보면 직원 한 명의 이직일 뿐이지만 실제로 그 뒤에는 두 회사의 전략급 충돌이 있었다.
이때 블리자드의 총경리는 마이클 퐁(Michael Fong)으로 캐나다 국적의 홍콩 사람이었다. 그의 중요한 임무 하나가 블리자드 차이나 지사를 세우는 일이었고, 그 조사를 맡은 사람이 막 들어온 우젠이었다.
이후 몇 해 동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중국 플레이어의 관계가 점점 뜨거워진 것과 정반대로 주청과 블리자드의 관계는 점점 차가워졌다. 한편으로는 블리자드가 운영에 더 많이 개입해 세부를 알고 싶어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청이 서버를 바꾸지 않았을뿐더러 데이터도 감추고 블리자드에게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고 갈등도 점점 커졌다.
대행사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블리자드 안에서 이미 수없이 나왔지만, 이때도 블리자드는 여전히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블리자드는 어떤 결정도 플레이어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블리자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것이 블리자드의 핵심 문화이고, 많은 결정을 내릴 때의 근본 출발점이다.
2007년 5월 21일 EA가 1억 6,700만 달러로 주청의 지분 15%를 사들였을 때조차, EA의 주요 경쟁 상대인 블리자드는 화가 났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2008년에 이르러 더 참을 수 없게 된 블리자드가 비로소 다른 업체들과 접촉하며 넘겨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주청의 고위층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블리자드와의 관계를 다뤘다. 이것은 점점 팽팽해지던 판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끝내 블리자드를 노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밝혀 둘 것이 있다. 주청의 전략은 블리자드와 협상하는 자신의 자리를 통제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누구나 주도권을 자기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러 게임을 대행하고, 블리자드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체 개발을 밀고, 심지어 EA를 끌어들인 것도 모두 블리자드를 상대로 자기 쪽 협상 카드를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서였다. 전략의 층위에서 말하면 이 큰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주청의 목을 조른 것은 시대의 병목이었다. 그때의 중국 자체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넘어선 게임이 몇이나 되는가?
작은 나라가 독립하려는 것과 같다. 핵무기도 없고 맞받아칠 능력도 없고 자원과 경제에서 절대적인 우위도 없는 데다 가장 큰 수입을 상대에게 기대야 한다면, 이른바 대등하게 마주 앉는다는 것은 구호일 뿐이다.
덩샤오핑(邓小平)은 뒤처지면 얻어맞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만 얻어맞는 방식이 조금 더 문명화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당시 주청은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습이었고 계속 강경했다.
블리자드가 마지막 회의에서 여전히 "이혼"하지 않기로 정한 바로 그날 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총수 바비 코틱(Bobby Kotick)이 갑자기 주청과 갈라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쩌면 메일 한 통이었을까? 보고서 한 장? 말 한마디? 이제 그것은 다 중요하지 않다. 강한 외국 기업이 강경한 현지 대행사를 만난 것이니, 성격이 맞지 않는 이 조합은 "이혼"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천천히 얹혔고, 그것이 판 전체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다음 일은 간단히 말하겠다. 블리자드는 수많은 업체와 접촉한 끝에 넷이즈와 텐센트가 마지막까지 남았는데, 미국 블리자드 쪽은 넷이즈와 딩레이(丁磊)가 플레이어를 대하는 태도가 블리자드의 핵심 문화에 더 맞는다고 봤다. 그래서 넷이즈를 골랐다.
2009년 7월 30일, 넷이즈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비공개 테스트를 다시 열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몇 해 뒤에 쓰기로 하자.
중국 게임의 이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