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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시안 대학 e스포츠 연맹 XUGA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八 西安高校电子竞技联盟 XUGA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21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41401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2010년 나는 관수이추장(灌水酋长)에게 XUGA가 그때까지 몇 회를 했는지 물었다. 관수이추장은 그가 게시판에서 쓰던 아이디이고 잡담 두목쯤 되는 뜻이다.

추장이 말했다. 열두 번째다.

나는 물었다. 지금은 한 해에 몇 번을 하느냐.

추장이 말했다. 두 번, 한 학기에 한 번이다.

나는 말했다. 여러 해 동안 고생이 많았다.

추장이 말했다. 다 습관이 되었다. 올해는 후원을 따내지 못해서 종목을 나눠 따로 하고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위닝 일레븐(实况)》은 아직 어떻게 해낼지 궁리하는 중이다.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XUGA의 정식 이름은 시안 e스포츠 대학 연맹이다. 이 조직은 내가 2003년 시안(西安)에서 만들었다. 당시 CGA가 카운터 스트라이크 쪽에서 누리던 높은 인기에 기대어, 거듭된 선별과 홍보로 시안에서 가장 큰 37개 대학을 하나로 묶었고 학교마다 자기 e스포츠 동아리를 세우도록 도왔다. 신청서를 어떻게 쓰는지, 선생님들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게임을 보는 학교의 태도에 어떻게 맞추는지를 하나하나 가르쳤고, 1년에 걸친 활동 끝에 마침내 진용을 갖췄다.

그때 학교 동아리를 맡았던 사람들 가운데 지금 게임업계에 들어간 이가 많다. 미디어, 운영, 마케팅, 채널, 사업 개발까지 여러 자리에서 일하며 저마다 자기 것을 이루기 시작했다. XUGA가 그들의 인생 궤적에 영향을 준 것인지 그들이 XUGA에 영향을 준 것인지 나는 이제 말하기 어렵다. 가끔은 그때의 이 형제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 시절의 굴곡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대부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어 기회는 아주 희박하다.

2003년 그때 나는 아직 시안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시안의 학교마다 e스포츠 분위기는 아주 좋은데 이것을 한데 보여 줄 무대가 없다고 느꼈다. 그때 시안외사학원(西安外事学院)에 다니던 suhO는 이미 WCG 중국 지역 우승자였고, SKY는 막 허난(河南)에서 시안으로 와 WE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YolinY 팀이라고 불렀다.

처음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모든 학교의 고수를 한자리에 모아 겨루게 하면 무척 가슴 뛰는 장면이 되겠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냥 했다.

그런데 지지를 받지 못했다. CGA 동료들조차 반대했고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다행히 당시 CGA의 마케팅 총괄이던 양천(杨晨)은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봤다. 그가 여러 쪽을 조율한 끝에 마침내 모두가 내 계획에 동의했고, 그제야 XUGA를 실행할 수 있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XUGA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또 온갖 고생을 겪었다.

홍보는 매주 뉴스 글 두 편을 올리는 방식으로 했다. 나는 매주 열몇 사람의 신청을 받아 하나씩 심사했다. 그때 나는 날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슈퍼마켓에서 큰 생수 한 병을 사서 곧장 학교 컴퓨터실로 갔고, 밤 10시까지 거기 앉아 쉬지 않고 자료를 정리하고 분류한 뒤 신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그동안 해 온 일을 봤다.

전체 과정을 돌아보면 이 시기가 가장 편한 때였다. 어차피 몸만 고달팠을 뿐 마음은 몹시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 무렵이 내가 가장 말랐던 때일 것이다. 두 달 동안 날마다 라몐(拉面), 곧 손으로 뽑은 국수 한 그릇만 먹고 큰 물 한 병을 마셨다. 마지막에는 위장병이 날 뻔해 자주 위가 아팠고, 그제야 드릴로 위 속을 후비는 그 광고가 왜 아버지를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연맹의 규모가 30개가 넘는 대학으로 커졌을 때 나는 첫 연맹 대회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PC방을 하나 찾아 상품을 좀 내놓게 하고 경기 구역을 나눠 이틀 하면 끝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网吧)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대회 여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그때 나는 대회를 본 경험은 많았지만 대회를 조직한 경험은 아주 적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몰랐기에 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500명이 넘는 사람을 데리고 행사를 벌였다.

결과는, 장소를 구하는 일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돈이 없었다. 상금은커녕 PC방 이용료까지 내가 내야 할 판이었다. 좋다, 이미 물러설 데가 없었으니 남들이 하는 모양을 배워 후원을 따러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후원을 따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웃음거리다. 큰 PC방에 찾아가 점장과 약속을 잡고 들어가서는 바로 말부터 시작했다. 문서도 없고 기획안도 없고 PPT도 없었다. 나중에는 상대가 나를 정중히 내보내려 할 정도였다.

그 뒤 한번은 어느 PC방 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살집이 있고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나를 일깨워 줬다. 그 사람은 PC방 사람이 아니라 어느 모니터 브랜드의 시안 대리상이었고, 그날 마침 PC방 사장과 볼일이 있어 와 있었다. 나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가서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므로 그는 옆에서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사장의 실랑이를 다 듣고 난 그는 내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듯 이렇게 말했다. 우선, 후원사는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당신 기획이 내가 오늘 1위안을 넣어 내일 1위안을 벌게 해 준다면, 모레는 얼마를 달라고 하든 다 주겠다.

그 한마디가 나를 정말로 깨웠다. 나는 후원사의 자리에서 내 전체 기획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단숨에 생각이 훨씬 또렷해졌다. 온갖 문서와 기획안을 준비하고, 체육국에 연락하고, 후원사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판을 키울지 대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사고방식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생각에 따라 나는 곧 코카콜라를 찾아냈다. 당시 코카콜라는 펩시콜라의 시안 진입을 막는 계획을 펴고 있었다. 펩시콜라가 2003년 말 시안에 병입 공장을 세우자, 코카콜라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고 시안의 큰 PC방들과 소매점들을 상대로 독점 공급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이런 뻔한 부당 경쟁 방식을 중국에서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고, 펩시콜라도 둥베이(东北)에서 같은 방식으로 코카콜라를 누르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나는 XUGA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당시 코카콜라는 시안 중러우(钟楼), 곧 종루 옆에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PC방 한 곳과 계약을 맺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이 PC방은 처음에 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콜라 말고 코카콜라의 다른 음료는 인기가 그다지 높지 않았으므로, 독점 계약을 맺고 나면 손님이 시킨 것이 없는 일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PC방 장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코카콜라 쪽 사람에게 XUGA에 장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이 반짝했다. 이 PC방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아 대단해 보이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멀고 새로 연 가게여서 늘 사람도 이름도 부족했다. XUGA는 이 가게의 이름을 한 번에 알릴 수 있었고, 코카콜라 쪽은 이 행사를 조건으로 삼아 PC방과 독점 계약을 논의할 수 있었다.

중간의 수많은 복잡한 과정은 건너뛴다. 결국 코카콜라가 돈을 내고 PC방이 대회 이름을 달고 내가 조직하는 방식으로 제1회 XUGA 대회가 성사되었다. 이틀 동안의 행사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관중이 PC방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웠다. 4개 종목에 참가 선수만 500명 가까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 행사에서 품삯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한 학기 학비 납부를 미뤘고, 그 돈으로 줄곧 홍보와 조직과 기술을 맡아 준 핵심 인원 몇 명에게 사례했다. 나중에는 지도 교사가 하도 재촉해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말했고, 결국 학비는 어머니가 몰래 다시 부쳐 줬다.

2004년 나는 상하이로 일하러 가게 되었고, 그래서 연맹을 관수이추장에게 넘겼다. 당시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관수이추장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성격도 좀 내성적이라 그에게 맡기면 연맹에 앞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추장은 일을 착실하게 하고 참을성이 있으며 책임감이 강하고 겸손하고 듬직하다. 이런 점들이 추장이 이 연맹을 이어 가고 또 잘해 낼 수 있다는 보증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시안 e스포츠 대학 연맹 XUGA는 중국에서 조직이 가장 잘 갖춰졌고 가장 활력 있는 민간 대학 e스포츠 조직이다. 나는 이 조직이 서북 전체의 캠퍼스 문화 보급 활동을 하나로 묶어 이 지역의 목소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XU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