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장.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의 늙지 않는 청춘¶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三十九 星际老男孩的不老青春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5년 12월 2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20375408
이 번역은 2026년 8월 1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2012년 1월 1일, 스타크래프트를 십수 년 해 온 e스포츠 고참 넷이 아시아 남자 e스포츠 아이돌 그룹, 아니 개그 그룹 하나를 만들었다. 이름은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F91, 스타크래프트 프로 해설자 샤오서(小色), MsJoy, 그리고 무대 뒤의 e스포츠인 저우닝(周宁)이 그 넷이다.
이 팀은 태어날 때부터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하든 해설 방송을 만들든 하나같이 남달랐고, 자기들만의 방식을 세웠다.
예를 들어 이들이 여는 IQ컵은 경기의 승패로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목표는 자기 비하와 서로 놀리기, 그리고 상대의 지능을 짓밟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에는 온갖 야비한 수와 기묘한 계략이 나오고, 대역전극이 자주 벌어진다.
규칙도 여러 가지 만들었다. 한쪽이 지고도 승복하지 못해 뒤집을 기회를 한 번 더 원하면, 관중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대를 "하오거거", 곧 "좋은 형님"이라고 불러야 경기를 이어 갈 수 있다.
웃음을 참기 힘든 이런 발상과 뜻밖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의 방송은 오래 살아남았고, 관심도 갈수록 커졌다.
이들은 수많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준 동시에, 대중이 스타크래프트 2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원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이던 이 게임을 일반 플레이어의 시야로 되돌려놓았다.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는 지금 아주 인기가 많다.
방송에서 무심코 만들어 낸 말들, 예를 들어 "하오거거", "황쉬둥을 죽여라", "e스포츠 독우유"(해설자가 편들어 준 쪽이 오히려 진다는 뜻), "뮤탈로 얼굴을 덮었는데 어떻게 지냐" 같은 표현은 이미 e스포츠 판을 넘어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주는 말이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해냈을까?
스타크래프트는 황금기가 이미 지나간 종목이다.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는 더는 젊다고 할 수 없는 e스포츠 고참 넷이다.
한쪽에는 서른 줄에 들어 아내를 얻고 아이를 낳은 사람의 생활 압박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e스포츠 대변혁기의 기회와 혁신이 있었다.
바꿀 것인가 그대로 갈 것인가?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아마 이것은 한 번도 가볍고 간단한 전환이었던 적이 없다.
1982년 11월 3일, 샤오서(小色, 본명 황쉬둥, 黄旭东)는 중국 서부 쓰촨성 쯔궁시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평범했지만 이웃에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이웃이 게임을 좋아했다. 그 덕에 샤오서는 어려서부터 이웃집에서 아타리, 패미컴, 슈퍼 패미컴처럼 내륙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던 초창기 게임기를 만졌다. 이 경험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83년 2월 17일, F91(본명 쑨이펑, 孙一峰)은 중국 동부 저장성 항저우시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꽤 좋았고, 이웃에는 노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무리가 있었다. 다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F91은 이 이웃들을 따라 여름방학이면 매일 밤 PC방에서 밤을 새우며 레드 얼럿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했다. 중국의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그는 남과 겨루는 것을 아주 좋아했고, 한때 프로 당구 선수가 되겠다는 뜻을 품기도 했다. 이 경험 역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맹모삼천지교에는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1998년에서 2000년 사이, 같은 게임 하나가 두 사람의 삶에 들어왔다. 스타크래프트였다.
샤오서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지역 팀인 ZG 쯔궁 팀에 들어갔다. 스타크래프트와 인터넷이 만들어 준 판을 발판 삼아 그는 서서히 e스포츠 판으로 들어섰다. 뒤에 대학에 다니면서 CEG 쓰촨 지역 기자가 되었고, 평소에는 여러 잡지에 게임 관련 원고를 써서 용돈을 벌었다.
F91은 처음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몰랐다. 친구들은 3대3, 4대4를 하고 있었고, 같이 놀려면 굴욕을 참고 남의 일꾼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이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했다. 그렇게 일고여덟 달 일꾼을 하고 나니 어느 순간 주위에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야롄 배틀넷으로 옮겨 계속 도전했고, 2001년에는 항저우 현지 대회인 산펑 컵에서 매주 우승했다. 항저우와 상하이의 고수가 많이 나오는 대회였다. 항저우에서도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2004년, 대학 졸업이 가까워졌다.
샤오서는 4학년 때 운이 좋았다고 했다. 예전 CEG 동료가 징싱왕이라는 e스포츠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마침 인턴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그는 혼자 광저우로 가서 반년을 지냈다. 멀리 집을 떠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바깥세상은 근사했다. 그는 징싱왕에서 영상 만드는 법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MsJoy도 이때 알게 됐다. 워크래프트 3의 젠신 패치를 만든 젠신(剑心)도 당시 같은 팀에 있었다.
반년 뒤 인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다. 집안은 아주 보수적이었고, 이미 큰 힘을 들여 연줄을 대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 두고는 매일 출근하라고 재촉했다.
이 고비에서 샤오서는 자기 인생이 이렇게 남의 손에 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고를 써서 번 돈을 전부 털어 광저우행 편도 항공권을 샀다.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길을 스스로 골랐다.
그 뒤 그가 징싱왕에서 만든 《샤오서가 알려 주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의 밤》 같은 프로그램은 모두 큰 관심을 받았다.
2006년 CEG 광저우 대회가 열렸는데 현장에 해설이 한 명 부족했다. CEG 직원 라오위(老鱼)와 5V가 CEG 기자였던 샤오서를 떠올려 대타로 불렀다. 그가 무대에서 해설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고, 이후 청두, 시안 등에도 해설로 초청받았다. 이때부터 황쉬둥은 신나게 돌아올 수 없는 길에 올랐다.
그리고 이 시기의 F91은 답답했다고 말한다.
항저우에서 이름을 알린 뒤 그는 YJ 이징 네트워크 팀에 들어가 전국을 돌며 신나게 싸웠다. 그러나 한창 기세가 오르던 순간에 집안의 수산물 도매업을 물려받으라는 강한 명령이 떨어졌다. 저항에 실패한 F91은 마음이 식은 채 돌아가 반년 넘게 수산물 장사를 했다. 이때도 스타크래프트는 계속했지만, 꿈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2004년 6월 저장성 진화에서 열린 레노버 컵 챌린지 대회에서 F91은 당시 중국 e스포츠 국가대표팀 주장이던 Phoenix66을 이변 끝에 꺾었다. 이 승리로 프로를 하겠다는 생각이 다시 타올랐고, 그는 집안 사업을 미련 없이 접었다.
2005년, 이번에도 Phoenix66이었다. 집에 일이 생긴 그가 F91에게 자기 대신 CEG 상하이 팀을 대표해 베이징 대회에 나가 달라고 했다. 이 대회에서 F91은 또 한 번 이변을 일으켜 이름난 스타크래프트 선수 PJ를 꺾었고, 한 판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 뒤 F91은 CEG 산둥 대표팀에 소개되어 정식으로 e스포츠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프로 선수의 고통스러운 심리 조정기를 겪었다. 6연패, 그리고 6연승이었다. 그는 거의 무너져 그만둘 뻔했다. 크게 떨어졌다가 크게 오른 끝에 2005년 말 VS 오프라인 대회에서 첫 전국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감을 되찾았고, 전국적으로 이름난 선수가 되었으며, 실력을 마침내 인정받았다.
그렇게 수산물 업계는 젊은 후계자 하나를 잃었고, e스포츠 판은 장난거우왕(江南狗王) 하나를 얻었다. 창장 이남을 뜻하는 장난의 개 왕이라는 뜻으로, 중국 스타크래프트 은어에서 개는 저글링을 가리킨다.
2006년 크리스마스, F91보다 세 달 위인 저우닝은 PLU를 떠나 갓 만들어진 NeoTV에 들어갔다. 당시 NeoTV는 자금이 넉넉했고 야심이 컸다. 이듬해 WCG 중계권을 노리며 한창 사람을 늘리던 때였다.
이때 샤오서는 시련을 건너는 중이었다. 징싱왕의 투자자가 자금을 뺐고, 샤오서는 어쩔 수 없이 광저우에서 쓰촨으로 돌아갔다. 앞이 보이지 않던 그때 저우닝이 손을 내밀었고, 둘은 거의 즉시 뜻이 맞았다. 샤오서는 상하이로 와 NeoTV에 들어갔고, 온갖 잡일을 하는 처지에서 NSL 같은 대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PLU와 NeoTV의 은원도 이 시기에 씨가 뿌려졌다. 샤오서는 성미가 아주 곧은 데다 나이가 어려 말을 가리지 않았고, 그 뒤 여러 해 동안 온갖 분쟁의 표적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앞 장 《NeoTV와 PLU의 은원록》에서 자세히 썼으니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짚어 둘 만한 것은 샤오서가 말한 2008년 이야기다. 그해 NeoTV는 WCG 중국 지역에 팀 단위 시범 종목을 하나 넣기로 했다.
당시 회사는 두 파로 갈렸다. 한쪽은 전삼(Zhen San)을 하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도타를 하자고 했다. 전삼은 삼국지를 소재로 한 워크래프트 3 유즈맵이다. 내부 논쟁이 끝나지 않아 결국 투표에 부쳤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NeoTV 사장 Ken도 도타를 하는 사람이어서 결정적인 한 표를 던졌다. 그렇게 WCG 중국 지역에 도타 종목이 생겼다.
그해에는 EHome, CaNt, CD, GooG 네 팀이 초청받았고, 최종 우승은 EHome이었다.
샤오서는 그때는 도타가 나중에 그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했다. 자신은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1 해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열린 STX 중한 스타크래프트 마스터즈가 끝난 뒤, 이미 짐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지고 사방에서 표적이 되어 공격받던 샤오서는 스타크래프트 1 해설계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속에 응어리를 품은 샤오서는 이때부터 스타크래프트 2를 미친 듯이 연습하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70판을 했다. 동시에 중국 전통 만담 샹성의 대표적인 배우 궈더강(郭德纲)의 공연을 매일 보면서 자기 해설 스타일을 억지로 바꿨다.
F91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중국의 스타크래프트 1 분위기가 이미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도 고수는 몇 남아 있었고, 남파와 북파로 갈리기까지 했다.
북파는 PJ, 레이처(雷车), 레이레이(磊磊), 펑쯔(疯子), EVA, 샤오밍(小明) 등이었다.
남파는 F91, LX, Super, 류궈하오(刘国豪), 베컴(贝克汉姆), 황페이펑(黄飞鹏), ChinaTTT, Jaystar, Rushgoon 등이었다.
그런데 F91은 이 몇 해 동안 우승을 돌아가며 가져간 사람은 사실상 넷뿐이었다고 했다. PJ, LX, Super, F91이다. 이들은 중국 스타크래프트 4대 천왕으로 불렸는데, 판의 발전에는 아주 좋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에는 스타크래프트 1의 옛 선수 상당수가 은퇴했다. F91은 자기 생활 압박은 크지 않았다고 했다. 2006년에 결혼했지만 아내가 프로 활동을 아주 강하게 지지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수를 계속하기로 하고 종목만 스타크래프트 2로 옮겼다.
그러나 종목을 옮긴 뒤 새 게임과 새 운영은 F91에게 큰 좌절감과 상실감을 안겼다. 2011년 F91은 중국 지역 준우승에 올랐고, 세계 대회에서는 8강에서 멈췄다. 중국 팀 동료 시과(西瓜)에게 진 결과였다.
4대 천왕에서 후배에게 탈락당하는 자리까지, F91은 생각이 많았다.
2012년 말 F91의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도 나이가 들어 가족을 돌봐야 했고, 그래서 물러날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기 샤오서도 곤경에 빠졌다. 막 자리를 잡아 가던 GSL 중계권을 다른 회사가 사 가면서 중계할 경기가 없는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화 옆에는 복이 기대어 있다. 사람은 때로 몰려야 움직인다.
2012년은 여러 흐름이 한꺼번에 만나는 해가 될 운명이었다.
펑윈 라이브(Fengyun Live)로 대표되는 개인 방송 사이트가 등장했다. 타오바오 상점에 e스포츠 방송인을 얹는 팬 경제 모델은 이미 도타 해설자 몇 명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뒤였다.
F91은 2011년에 샤오서가 처음 전화해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라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꽤 뜻밖이었다고 했다. 그 자신도 이게 대체 어떤 물건이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만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자기 삶에 녹아 있었고, 친구들과 같이 경기도 하고 방송도 하면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2년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가 만들어졌다. 샤오서, F91, MsJoy가 앞에 서고, 저우닝이 뒤에서 운영과 타오바오 상점 관리 등을 맡았다.
저우닝은 신둥 게임(Xindong Games)의 류이펑(刘义峰)에게 특히 고맙다고 했다. SXD의 웹 게임 공동 운영이 이들에게 첫 목돈을 안겼고, 아직 망설이며 간을 보던 이들에게 마음을 놓게 해 줬다는 것이다. 원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도 자기들이 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이후 시청자 수가 계속 늘면서 스타크래프트 공식 행사 쪽에서도 협업을 제안해 오기 시작했다. 다만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의 인터넷 상점 수입은 처음에는 아주 평범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배우고 시험하면서 운영 방식을 바꿨다. 플레이어의 눈으로 상품을 개발했고, 값에 견줘 쓸모가 좋은 물건을 정성껏 골랐다. 그러자 브랜드 평판이 갈수록 좋아졌고 판매도 계속 늘었다. 자기들 유행어를 새긴 상품도 많이 만들어, 상점은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 문화가 뻗어 나가는 통로가 되었다.
F91은 저우닝이 뒤에서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아주 고생한다고 했다.
샤오서는 F91이 농담을 받아 줄 줄 아는 사람이라 호흡이 잘 맞는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F91의 그 유명한 "XX에게도 봄은 온다" 수상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화내지 않았다.
F91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자기와 아주 친한 친구라고 했다. 나중에 사진이 널리 퍼진 뒤 한동안 창피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 친구와 사이가 좋아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다.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가 방송에서 서로를 놀리는 것에 대해.
F91은 서로 안 지 십수 년이라 상대의 급소를 다 알고 있어서 농담도 늘 분수를 지킨다고 했다. IQ컵은 놀이판이지만 다들 아주 진지하게 임한다. 특히 샤오서와 실력이 팽팽할 때, 경기 전에 "황쉬둥을 죽여라!"라고 크게 외치면 신이 돕는 것 같고 기세가 확 오른다는 것이다. 못 믿겠으면 한번 해 보라고 했다.
황쉬둥을 죽여라! 나는 바로 크게 외쳤다.
다들 웃었다. 눈이 안 보일 만큼 웃었다.
스타크래프트 올드보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