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아제로스 국가지리 창립자 Ediart 톈젠¶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三十二 艾泽拉斯国家地理创始人 Ediart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4년 7월 15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798412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아마 많은 사람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아제로스 국가지리(艾泽拉斯国家地理) NGA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사이트가 아닌가? 이 온라인 게임 사이트의 창립자가 e스포츠와 무슨 관계가 있나?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깊다.
예를 들어 2002년 미국 블리자드의 게임 《워크래프트 3》(WAR3)의 첫 판 공식 설명서 7만여 자와 공식 공략 14만 자를 번역한 사람이 바로 Ediart 톈젠(田健)이다. 그는 또 《CBI 컴퓨터 상업 정보(电脑商情报)》와 《가정용 컴퓨터와 게임(家用电脑与游戏)》 같은 종이 매체에 WAR3 경기 리포트를 쓴 중국 최초의 칼럼 필자 가운데 하나였고, 가장 이른 워크래프트 3 중국어 정보 사이트 War3cn의 주요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지금 우리가 WAR3를 할 때 익숙하게 쓰는 중국어 영웅 이름과 기술 이름을 대부분 이 사람이 정했다는 뜻이고, 워크래프트 3가 그 뒤 중국의 주류 e스포츠 종목이 되도록 씨를 뿌린 첫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2년 뒤인 2004년, 《워크래프트 3》를 중국어화할 때 보여 준 뛰어난 솜씨와 세계에서 가장 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중국어 커뮤니티 《아제로스 국가지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일 덕분에, 톈젠은 상하이 주청(九城)에 곧바로 스카우트되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중국어화 매니저를 맡았다. WOW가 크게 터지면서 또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졌고, 게임 애호가들은 그를 E다(E大)라고 높여 불렀다. 다는 형님뻘 되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중국 게임 문화 전체에 그의 영향이 깊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E다의 다른 한 면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톈젠은 어떻게 열아홉도 되기 전에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 게임 설명서를 혼자 번역해 냈고 서양 게임 문화를 그토록 깊이 알고 있었으면서, 대학 2학년을 두 번 다니고도 통과하지 못한 채 자퇴했을까? 그의 아이디는 Ediart인데 치어(企鹅, 펭귄이라는 뜻)나 TBK 같은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이름들은 어디서 왔을까? 판에서 할 말을 다 하는 성격 탓에 그는 동종 업계 사람과 동료들의 미움을 적잖이 샀다. 그 고집과 버팀은 무엇에서 나왔을까? 그는 왜 앞으로 NGA 같은 사이트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까?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다. 차근차근 풀어 보겠다.
톈젠은 1983년 산시성(陕西省) 푸핑현(富平县)에서 태어났다. 톈젠은 지금은 이곳도 꽤 잘 정비되었지만 그때는 막혀 있는 작은 현 소재지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가 자란 과정도 그를 더 닫히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다섯 살 전에는 가족을 따라 칭하이(青海)를 떠돌았고, 열몇 살 때는 바오지(宝鸡) 파먼사(法门寺) 옆 푸펑현(扶风县)에 살았다. 떠도는 생활이 그의 성격을 비교적 독립적이고 억세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공부는 아주 잘했다.
톈젠의 집안 형편은 보통이었지만 어머니는 생각이 대단히 열린 교사였다. 어머니는 새로운 것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1990년대 초의 우비(五笔) 입력법 학습기 열풍, 개인용 컴퓨터 열풍, 영어 배우기 열풍마다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톈젠을 밀어 넣어 첫 물결을 타게 했다. 우비는 한자를 자획 단위로 나눠 입력하는 중국어 입력법이고, 학습기는 그 무렵 중국 가정에 보급된 키보드가 달린 학습용 컴퓨터다.
톈젠은 지금도 1995년에 집에서 사 준 1만 위안이 넘는 롄샹(联想, 레노버)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반짝인다. 이 컴퓨터는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특히 그가 처음 해 본 영어 게임이 그랬다. 20위안짜리 불법 복제 시디에 들어 있던 작은 데모였고 이름은 《커맨드 앤 컨커》였다. 그때 톈젠은 영어를 전혀 몰랐고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차가 있고 보병이 있다는 것만 보고 여기 찍고 저기 찍으며 해 봤지만 아무리 해도 컴퓨터를 이길 수 없었다. 몹시 답답했다. 그러다 한번은 마우스를 건설 차량 위에 올렸더니 전개하라는 기호가 떴다. 그는 한번 눌러 봤다.
톈젠은 그 순간 자기 세계 전체가 그 자리에서 펼쳐진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게임 이력도 이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온갖 불법 복제 모음 시디에 든 크고 작은 게임들, 영화 같은 삽입 영상이 잔뜩 들어 있던 시디 두 장짜리 《레드 얼럿》, 처음으로 정품을 사 본 3D 《FIFA》,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와 《스타크래프트》까지. 그의 어린 시절은 매주 두 시간으로 제한된 컴퓨터 사용 시간 안에서 즐겁게 지나갔다.
서양 게임은 톈젠의 인생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톈젠의 성적은 늘 전 학년 상위권이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주위의 압력에 밀려 자기가 좋아하던 문과를 포기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이과로 갑자기 옮겨야 했다. 이것이 그를 몹시 짓눌렀다.
우울한 가운데 그는 세계관이 비교적 어두운 게임 두 편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마이트 앤 매직 6: 천상의 명령》과 《폴아웃 2》다. 이 두 게임, 그리고 대학에 간 뒤 푹 빠진 《발더스 게이트》 같은 서양 게임들은 그에게 다시 두 가지 큰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중국산 RPG와 견주어 볼 때 비디오 게임의 자유도가 이렇게까지 높을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이것이 그의 세계관을 한 번 더 넓혔다. 다른 하나는 이 두 게임에 서양 게임 문화가 담긴 영어 내용이 대단히 많았고 그것을 소화하고 이해해야 게임을 이어 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자기 영어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을 뿐 아니라 서양의 게임 제작 이념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톈젠의 영어 학습 이력은 정말 한번 짚고 넘어갈 만하다.
1994년 무렵 톈젠의 어머니는 그에게 《잉한츠하이(英汉辞海)》 세 권을 사 줬다. 영어를 중국어로 풀이한 대사전이다. 작은 영중 사전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시라. 팔 길이의 절반쯤 되고 주먹만큼 두꺼운 사전이었고, 게다가 웹스터식 발음 기호를 썼다. 열한 살 톈젠은 게임을 계속하려고 정말로 이를 악물고 그것을 읽었다. 그 결과 뒷날 중학교에 올라가 영어 수업이 시작된 뒤로도 한참 동안 그는 두 가지 발음 기호로 단어를 적어 두게 되었다.
또 하나 남다른 경험이 있다.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그는 어근을 다룬 책 한 권을 접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영어도 중국어처럼 어근의 조합과 변화로 뜻을 넓혀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에 사전으로 쌓은 단어가 더해지자 그는 기술 하나를 익혔다. 어근을 보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짐작해 내는 것이다.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이 기술에 더해 그는 날마다 게임의 영어 맥락 속에서 궁리했으니, 영어 실력이 정말 크게 늘었다. 톈젠은 특히 빈칸 채우기 문제를 푸는 데 아주 유리했다고 하며 웃었다.
톈젠 어머니의 앞을 내다본 판단과 그의 재능, 그리고 게임을 하는 것보다 게임 뒤의 세계를 파고들고 싶다는 꿈이 더해져, 그는 남들과 다른 게임의 길을 걷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베이공업대학(西北工业大学) 수학과에 합격한 뒤 톈젠은 게임 세계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마침 그때 인터넷이 일어나면서 파고들 지점이 생겼고, 사이트가 그 탐색의 첫 목표가 되었다. 일을 잘하려면 먼저 연장을 갈아야 하는 법이다. 그가 먼저 씹어 삼킨 것은 그 시절 이름났던 웹 삼총사, 곧 드림위버와 플래시와 파이어웍스였다. 그는 배우는 한편으로 자기가 속한 스타크래프트 팀 CT의 사이트를 만들어 봤다.
뜻밖에도 이 일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었다.
2001년 새로운 실시간 전략 게임 하나가 톈젠의 눈길을 끌었다. 아직 테스트 단계이던 《워크래프트 3》(WAR3)였다. 대전 경쟁과 서양식 판타지라는 요소가 그와 첫눈에 맞았고 그는 이 게임의 앞날을 아주 밝게 봤다. 그래서 해외 자료를 스스로 모아 정리해 CT 팀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쓴 경기 리포트도 초보자 강좌 쪽에 무게를 뒀기 때문에 국내 초보 플레이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그렇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어느 날 네트워크 기술 배경이 아주 탄탄한 War3cn 창립자 KinK가 CT 사이트를 통해 톈젠을 찾아왔다. 함께 War3cn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KinK가 기술을 맡고 톈젠이 내용을 맡는 방식이었는데, 글 쓰는 일을 더 하고 싶던 톈젠의 생각과 딱 맞았다. 그래서 톈젠은 CT의 자료를 전부 그리로 옮겼다.
세상은 하나의 흐름이다. 그 흐름 안에 있으면 힘을 절반만 들여도 두 배로 나아가고 하루에 천 리를 간다. 자기도 모르게 그 흐름에 들어간 경우라도 그렇다.
지난 20년 가까이 게임판에서 신 같은 존재였던 회사가 하나 있다. 평판으로 보나 돈을 버는 능력으로 보나,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같기도 하고 거세게 흐르는 큰 강 같기도 했다. 톈젠은 그렇게 뜻이 있는 듯 없는 듯 그 흐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블리자드다.
이 흐름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치러야 할 첫 시험도 대단히 혹독했다. 한 달 안에 《워크래프트 3》의 중국어 공식 설명서 7만여 자와 공식 공략 14만 자를 다 번역하는 것이었다.
그때 중국에서 《워크래프트 3》를 대행하던 곳은 우한의 아오메이전자유한공사(奥美电子有限公司)였고, War3cn 사이트는 아오메이와의 관계 덕분에 이 번역 일을 따냈다. 당시 톈젠은 아직 대학 2학년이었다. 돈을 아끼려고 낮에는 기숙사에서 자고 밤에는 중국의 인터넷 카페인 PC방(网吧)에 가서 밤새 번역했다. 수업에는 아예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스물한 밤을 잇달아 새운 끝에 결국 해냈다. 그때는 다들 게임 때문에 미쳐 있기는 했지만, 톈젠이 치른 대가는 대학 2학년 전 과목 낙제와 유급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오역 몇 개를 놓고 그를 놀리는 사람이 있다. 그는 화내지 않는다. 자기 회사 이름을 유뎬(游点)이라고 지은 것부터가 그 유명한 오역 유디안(尤迪安)을 스스로 비꼰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은 만담 배우 궈더강(郭德纲)이 한 말 그대로다. 그때는 서러웠던 옛일도 지금 말하면 다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업계에서든 규칙과 표준을 만드는 사람은 먼저 자리를 잡는 이점이 크다.
War3cn은 톈젠 등 여러 사람이 함께 힘쓴 덕분에 당시 게임 중국어화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입이 생기자 오히려 사이트의 분열이 빨라졌다. 톈젠은 핵심 인물 셋 가운데 Bloodsun과 KinK가 이익을 놓고 틀어졌다고 했다. 톈젠 자신은 포럼 운영 원칙에서 잡담 글을 내버려 두지 말고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운영진 사이의 금은 점점 벌어졌고 결국 톈젠이 밀려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일은 톈젠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그는 사이트 운영에서 두 가지 생각을 굳혔다. 하나는 남과 동업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럼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것이다.
《아제로스 국가지리》의 탄생¶
2001년 유럽 컴퓨터 무역 전시회, 곧 유럽의 E3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블리자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자료를 처음 공개했다. 미국 잡지 게임스팟이 뒤이어 8000자짜리 소개 기사를 냈고, 이것을 본 톈젠은 크게 놀라 곧바로 이 기사를 번역해 중국의 《가정용 컴퓨터와 게임》 잡지에 투고했다. 종이 매체에 투고한 것도, 글이 실린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일로 톈젠은 몹시 들떴고 사이트를 만들고 자유 기고가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수학에는 여전히 흥미가 붙지 않았다. 대학 2학년을 한 번 더 다닌 뒤에도 그는 더 다닐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집에 자퇴하겠다고 말했고 당연히 온 집안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도 그는 학업을 미련 없이 접고 게임이라는 길을 골랐다.
여기서 한마디 끼워 넣겠다. 톈젠의 경우는 대단히 특수하다. 그때 이미 그는 주요 종이 매체마다 칼럼 청탁을 받고 있었다. 원고료는 1000자에 80위안뿐이었지만 한 번 투고할 때마다 몇만 자씩 보내는 일이 잦았으므로 한 학기에 3만에서 4만 위안을 벌 수 있었다.
그가 쓰는 내용도 폭이 넓었다. 해외 최신 게임 소식부터 게임 경기 리포트와 리뷰까지 다 맡았다. 그래서 편집자들이 난감해하는 일이 잦았다. 내용은 다 좋은데 전부 한 사람이 쓴 것이라 다 싣기가 좀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그에게 이름을 바꿔 가며 따로 투고하라고 했다. 치어와 CT_TBK, CT_LION, Ediart 같은 필명이 이렇게 생겼다. 치어는 펭귄이라는 뜻으로 WAR3에 숨어 있는 펭귄 왕이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특히 Ediart라는 이름은 편집을 뜻하는 영어 edit와 글을 뜻하는 영어 article을 합쳐 만든 것이다. 그가 그때 얼마나 필사적으로 쓰는 필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그가 대학 2학년에 자퇴할 배짱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몸에 지닌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절대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시라.
2001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내부 테스트 소식이 공개된 뒤, 그해 말부터 톈젠은 아제로스 국가지리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페이지 하나에 자기가 번역한 내용을 올려 두는 정도였다. 2002년 말에는 사이트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췄고 포럼에 400명에서 500명이 접속해 있게 되었다.
사이트 내용을 정예화하려고 그는 한편으로 포럼 글의 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한편으로 중국의 이름난 RPG 포럼 NTRPG에서 핵심 구성원 여러 명을 불러와 글을 쓰게 했다. 이들이 NGA의 정예 문화를 떠받치는 핵심 팀 톈쉬안즈런(天选之人)을 이뤘다. 하늘이 고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줄어들기만 하고 늘어나지는 않는 조직이었다. 바로 이런 대단히 엄격하고 심하다 싶은 규정이 NGA의 수준을 지켰다. 그래서 뒷날 많은 플레이어가 NGA에 글을 싣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톈젠의 브랜드 관리 방식이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흐름 안에 들어선 뒤의 전개는 거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NGA의 방문량도 점점 커졌고 톈젠의 이름도 점점 커졌다. 2004년 주청이 마침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중국 대행권을 확실히 쥐자, 아직 시안에서 원고료로 NGA를 버티고 있던 톈젠을 곧바로 찾아와 상하이로 와서 중국어화 매니저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는 받아들였다.
밖으로 퍼진 소문과 달리 톈젠은 NGA를 주청에 팔지 않았다. 그는 주청도 처음부터 끝까지 NGA를 인수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주청은 그를 데려오면 그만이고 사이트를 사들이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시골 사람이라고 하는 톈젠은 대도시 상하이로 왔다. 처음 택시를 탔을 때 내리면서 기사가 카드로 낼지 현금으로 낼지 물었다. 그는 카드로 내겠다고 하고는 은행 카드를 건넸다.
새로운 전설은 이렇게 우스운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큰 싸움이었다. 2004년 4월 23일 입사해서 2005년 3월 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첫 판을 준비해 내기까지, 톈젠이 속한 중국어화 팀은 적어도 700만 자에 가까운 게임 내용을 번역했다. 그는 날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했고 동료 몇 명과 사무실 책상 위에서 잤다. 그중 한 사람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회의실로 쫓겨나 자야 했다.
톈젠은 이때를 떠올릴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게 된다고 했다. 사실 첫 판의 본체 내용은 400만 자 남짓이었다. 그런데 날마다 같은 곳을 대량으로 고쳐야 했다. 미국 쪽에서도 게임 자체를 계속 고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버전 진도를 따라가려면 예전 것을 끝내면서 새것도 고쳐야 했다. 2005년 4월 26일 게임 비공개 테스트가 시작된 그날까지도 그들은 새 버전을 중국어화하고 있었다. 정말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한 해였다.
바다 같은 작업량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톈젠은 이런 순수한 일을 즐겼고 일과 생활을 아예 뒤섞어 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 쪽 QA 부서와의 갈등은 그를 머리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 QA 부서는 번역 품질을 감독하는 곳이었는데, 톈젠은 중국어 번역의 원칙을 두고 그들과 자주 부딪혔다.
예를 들어 미국 쪽은 영어를 전부 중국어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엘프어가 있다. 로마자로 적혀 있기는 하지만 이론상 영어가 아니다. 톈젠은 원래 게임이 일부러 언어 하나를 만들어 내고 게임 안에서 영어가 아닌 형태로 보여 준 데에는 낯선 문명의 분위기를 내려는 목적이 있다고 봤다. 그들의 말을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음역해 늘어놓느니 원래 모습을 남겨 게임 안에서의 본래 의도를 드러내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QA는 동의하지 않았다. 톈젠은 끝내 번역하지 않았다.
또 예를 들어 톈젠은 어떤 캐릭터에게 대단히 중국적인 이름 번보얼바(奔波儿灞)를 붙였다. 《서유기》에 나오는 두 물고기 요괴 번보얼바와 바보얼번(灞波儿奔) 가운데 하나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이름이 나오자 수많은 네티즌이 블리자드가 중국 문화를 정말 잘 안다며 극찬했다. 그런데 사실 톈젠은 이 이름 때문에 미국 QA와 하마터면 갈라설 뻔했다. 미국 쪽은 음역해서 모치(莫奇)라고 해야 한다고 봤다. 톈젠은 죽어도 고치지 않았고 결국 번보얼바를 밀어붙였다. 뒷날 모두가 아는 아이언포지의 그 작은 멀록이다.
이 밖에도 자잘한 대목이 수없이 많았다. 예를 들어 톈젠이 어떤 이름을 더할 나위 없는 진미라는 뜻의 우상적미미(无上的美味)로 옮기자, 미국 쪽은 중국어 미미(美味)가 형용사이니 이렇게 옮기면 문법이 틀린다고 했다. 이런 일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톈젠에게 이 기억들은 이런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중국어화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그에 비하면 NGA 사이트의 발전은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이름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도구 다자오(大脚) 애드온의 창립자 Sharak도 톈젠이 포럼에서 발굴한 사람이고, 공격대 데이터 통계 도구 WMO를 만든 팀도 그가 밀어 준 팀이다. NGA는 한 손에 사용자를 붙잡아 두는 힘이 강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도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질 높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내용을 계속 만들어 냈다. 게임 안에서든 밖에서든 플레이어가 NGA를 떠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 방식은 뒤에 가서 다자오의 일간 활성 사용자 500만 명, NGA의 하루 방문 IP 80만에 페이지뷰 1000만여 회라는 수치로 이어졌고, 이미 전 세계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톈젠은 NGA의 성공에는 시대 배경이 있었고 지금은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 《EQ(에버퀘스트)》와 《모젠(魔剑)》 두 게임이 중국에서 실패한 탓에 많은 사람이 뒤에 나온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대학 2학년이던 학생이 기회를 잡아 훨씬 큰 상대들 틈에서 자기 몫을 뜯어낼 수 있었다. 지금의 게임사와 수많은 전문 매체는 잘못 잡는 한이 있어도 놓치지는 않겠다는 태도로 앞다퉈 전용 사이트를 만든다.
그의 이력도 대단히 독특하다. 신기하게도 그는 블리자드 워크래프트 계열 게임의 중국 내 중국어화 표준과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동시에 주청에서 일하면서 게임의 앞날이 어디로 가는지 남보다 한발 먼저 알 수 있었다. 이런 수많은 우연이 겹쳐 NGA의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의 환경은 또 하나의 NGA가 태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PC 게임을 개척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본다.
2011년 4월, 주청에서 꼭 7년을 채운 톈젠은 사표를 내고 창업했다. 상하이유뎬정보과기유한공사(上海游点信息科技有限公司)를 세워 모바일 게임만 만들었다. 이후 내놓은 《웨이바오스(微宝石)》와 《서우선지(搜神记)》는 업계에서 널리 주목받았다. 그는 이름난 해외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COC)이 자기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 게임을 처음 했을 때 세계가 다시 한번 그의 앞에서 펼쳐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개척이 다시 한번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Ediart 톈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