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길이 더 많아지도록, TEDx에서 이야기한 중국 e스포츠¶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이 2015년 TEDxSuzhou에서 한 강연이다.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让路更多一些 我在TEDx 讲中国电竞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5년 5월 16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975183 강연 영상 전체는 빌리빌리에서 중국어로 볼 수 있다.
이 번역은 2026년 8월 1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묻는다. e스포츠란 대체 무엇인가.
답은 사실 간단하다. 사람과 사람이 겨루는 데서 오는 오래된 즐거움, 그 과정을 전자화한 것이 e스포츠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공평함과 공정함, 그리고 계약 정신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부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 어떤 게임이든 e스포츠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누구든 e스포츠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 든 분들은 온라인에서 중국식 카드 게임 더우디주를 하거나 브리지를 친다. 아이들은 나란히 앉아 아이패드로 앵그리 버드 점수를 겨룬다. 여자아이들은 동작 인식 게임으로 둘이 춤 대결을 하고, 젊은 사람들은 팀을 짜서 도타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완성도가 높아질 3D 가상 기술 게임도 있다. 이 종목들이 공평함과 공정함과 계약 정신을 전제로 발전하기만 하면 대회, 스타, 클럽,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 같은 복잡한 e스포츠 체계가 뻗어 나온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e스포츠다. 말로 하면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전 세계 수많은 e스포츠인이 십여 년 동안 힘겹게 더듬어 온 탐색과 시도가 있다.
1999년 한국은 세계 최초의 전문 게임 방송사 온게임넷(OngameNet)을 세웠다. 지금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OGN이다. 같은 해에 한국e스포츠협회 KeSPA도 만들었다. 다시 말해 한국은 1999년에 이미 이런 e스포츠 모델을 갖추고 있었다.
방송사 + e스포츠 + KeSPA
아주 강력한 모델이다. 뜯어 보면 방송사는 태생적으로 홍보 채널과 수익화 능력을 갖고 있다. e스포츠 대회는 제품이 된다. KeSPA는 업계의 규칙을 다잡았다. 그래서 사슬의 고리마다 서로 맞물려 안정적으로 커 갈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 게임 방송 채널의 보급률은 아주 높았다. 2006년 OGN은 한국에서 1,300만 가구 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해 한국의 총인구는 4,700만 명 남짓이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지원이 더해졌고, e스포츠 대회의 후원사는 대한항공,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었다. 한쪽에는 넓은 대중적 기반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완결된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 e스포츠는 처음부터 선순환에 들어갔다.
같은 시기 중국 e스포츠도 2004년 전까지는 아주 빠르게 성장했다. 우리는 WCG, CPL, ESWC 같은 국제 대회를 통해 한국 e스포츠 상업화의 성공을 직접 보게 되었고, 그들의 모델을 당시로서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2003년 11월 18일 중국의 국가 체육 당국이 e스포츠를 중국의 99번째 정식 체육 종목으로 지정했을 때 우리는 무척 기뻤다. 한편으로는 한국 e스포츠의 모델을 이제 떳떳하게 중국에서 펼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여러 위성 방송이 이미 게임 프로그램을 열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행위성TV의 《유시둥시》, 상하이TV의 《유뎬펑쾅》, 시안TV의 《게임 클럽》, CCTV-5의 《e스포츠 세계》가 그렇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모두 상위권이었다. 그때 중국 e스포츠는 견줄 데 없는 자원과 시장 전망을 쥐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2004년 4월 12일에 멈췄다. 그날 중국의 방송 주무 부처인 광전총국이 《컴퓨터 및 온라인 게임류 프로그램 방영 금지에 관한 통지》를 냈다. 방금 말한 프로그램은 전부 폐지되었다. 그 순간부터 한국 e스포츠가 걸어간 그 길은 중국에서 완전히 막혔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중국의 e스포츠 팬도 e스포츠인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그때 우리에게 있던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인터넷 + e스포츠
그런데 어떻게 걸어야 하나. 그때 우리도 잘 몰랐다. 그래도 아주 막다른 길은 아니었다. 새로운 인터넷 기술이 하나 나타났다.
P2P 스트리밍 중계 기술이다. 쉽게 말하면 인터넷에서 같은 영상을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기술이다. 2004년 중국에도 이 기술을 핵심으로 삼은 PPLive와 PPS 같은 중계 플랫폼이 등장했고, 중국 e스포츠도 새 모델을 찾게 되었다.
P2P 중계 플랫폼 + e스포츠 대회 + 후원사
바로 이 모델 덕분에 2005년부터 중국의 e스포츠 팬은 집이나 PC방에 앉아 중국은 물론 세계 수준의 e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PC방은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특히 2005년과 2006년 WCG 세계 결승이 그랬다. WE 클럽의 리샤오펑(李晓峰, Sky)이 WCG 2연패를 달성하고 국기를 두른 채 시상대에 오른 그 순간을 전 세계 e스포츠 팬이 동시에 봤다. 그 뒤로 우리가 기업을 찾아가 협업을 이야기할 때, 드디어 e스포츠가 무엇인지 한 시간씩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이 모델은 시대의 한계를 너무 크게 받았다. 인터넷 이용자층이 이만큼 자란 지금도 온라인 중계 시청자 수는 전통 매체와 견주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10년 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모델 아래에서 e스포츠는 오랫동안 겨우 입에 풀칠하며 버텼다. 발전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면 이 시기에 e스포츠가 가장 넉넉하게 지낼 수 있었던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다들 한번 맞혀 보시라.
부잣집 2세 모델
웃지 마시라. e스포츠를 정말 좋아했던 이 부잣집 2세들이 없었다면 중국 e스포츠는 그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푸얼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모델에도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그 돈은 끊긴다고 하면 그날로 끊겼다.
그래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후원사도 없고 홍보 채널도 좁고 수익 모델도 사실상 없던 e스포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많은 e스포츠 조직이 흩어졌고, 많은 e스포츠인이 다른 업계로 떠밀려 갔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중국 e스포츠인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 고생은 값어치가 있었다. 그 3년의 업계 전체 불황이 e스포츠인과 e스포츠 팬 모두에게 한 가지를 깊이 새겨 줬기 때문이다. 이 업계는 이상만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우리 자신의 제품, 우리 자신의 홍보 채널, 우리 자신의 수익 모델이 있어야 했다. 중국의 만담 배우 궈더강(郭德纲)의 말처럼, 우선 잘 살아야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고 몸집을 키우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2010년 금융 위기가 지나간 뒤에야 중국 e스포츠가 비로소 성숙해지기 시작했다고 나는 본다.
그해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2010년 12월 8일 유쿠(Youku)가 상장했다. 상장 전부터 유쿠는 게임 채널, 특히 e스포츠를 강하게 밀었다. 도타의 은퇴 선수와 해설자 여럿이 유쿠에 자기 채널을 열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공동구매 사이트라는 개념이 떠올랐고, 웹 게임 공동 운영 모델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1990년대생이 스무 살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 이 해에 e스포츠는 새 홍보 채널을 갑자기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수익을 낼 수단도 여럿 늘었다.
2011년 어느 게임 의류 브랜드가 있었다. 창업자도 e스포츠 팬이었고 의류 쪽 자원이 많았다. 그는 e스포츠와 자기 자원을 붙여 게임 그림을 찍은 옷을 만들었고, 이름난 해설자를 찾아가 홍보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 해설자가 타오바오에 가게를 열더니 첫 달에 월 매출 30만 위안을 찍었다. 그 뒤로도 매달 배로 뛰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e스포츠를 이렇게도 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e스포츠 스타와 해설자들이 잇따라 자기 타오바오 가게를 열고 물건을 팔았다. 처음에는 e스포츠와 가까운 마우스, 키보드 같은 주변기기를 팔았다. 나중에는 품목이 계속 늘어서 지금은 의류와 주변기기와 군것질거리에 더해 가방, 생활용품, 여행 상품,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러우쑹빙 모델이 있다. 고기 가루를 넣은 중국식 과자다. 러우쑹빙 모델을 비웃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러우쑹빙 모델의 성공이 중국 e스포츠의 새 모델이 태어났다는 뜻이라고 본다.
유쿠 + 타오바오 + e스포츠
나는 이 모델의 등장이 시대를 가르는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자기 주목도의 수익화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중국 e스포츠는 자기 홍보 채널과 자기 제품과 자기 수익 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순간부터는 후원사가 없어도, 부잣집 2세가 없어도 e스포츠는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여러 해 쌓여 있던 또 하나의 갈등이 끝내 터졌다.
나는 그것을 중국 e스포츠의 버블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런 버블 전쟁은 중국 e스포츠가 지나온 17년 동안 여러 차례 벌어졌다. 그중 가장 큰 것이 2010년 도타 시대에 터졌다. e스포츠 업계가 보여 주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자본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어와서 처음 한 일은 이 업계의 핵심 자원인 e스포츠 선수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때의 선수 영입 전쟁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계약의 위약금을 무시했다. 예를 들어 클럽이 선수와 맺은 계약서에 위약금이 50만 위안, 100만 위안이라고 적혀 있으면, 그 돈을 그대로 얼굴에 던지고 이 사람은 내가 데려간다고 말한 다음 선수를 빼 갔다.
버블 전쟁이 끝까지 갔을 때, 싸움에 뛰어든 클럽은 모두 자기가 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쓴 돈을 도저히 되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스포츠는 계약 정신을 다시 세워야 했고 규칙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2011년, 중국에서 가장 큰 프로 e스포츠 클럽 12곳이 뭉쳐 e스포츠 연맹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 가까이 더듬고 다듬은 끝에, 지금의 중국 e스포츠는 안정된 업계 구도를 갖췄다. 연맹은 소통하고 협상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지금은 시즌이 끝날 때마다 별도의 이적 기간이 있고, 이 기간에 클럽의 에이전트가 다른 클럽 책임자를 찾아가 선수 이적을 논의할 수 있다. 선수가 부정행위나 대리 플레이를 하거나 경기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우, 나아가 행사에 나갈 때 옷차림이나 말과 행동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까지 연맹에는 이를 규정한 구체적인 조문이 있다.
2014년 8월, 그러니까 작년에 미국의 아마존이 e스포츠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9억 7,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 뒤 트위치를 닮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중국에서 여럿 떴고, 자본과 대중의 관심이 e스포츠로 다시 한번 쏠렸다. e스포츠의 모델도 더 복잡해졌다. 이건 몇 해 뒤에 다시 평가하자.
앞날에 대해서는, e스포츠가 영화 산업이 막 태어났을 때와 같은 자리에 있다고 본다. e스포츠는 대중이 여가와 오락에 쓰는 비용과 문턱을 크게 낮췄다. 게다가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편하고 더 싸며 상호작용이 강하다. 이것들이 상호작용형 오락의 새로운 혁명을 불러올 것이고, 거기에서 거대한 오락 산업 구도가 뻗어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오늘 이 강연은 e스포츠가 얼마나 좋고 얼마나 완벽한지, 그러니 다들 와서 해 보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e스포츠는 이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고, 우리가 아직 해결책을 찾는 중인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학부모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자기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e스포츠를 하겠다고 한다, 온갖 방법을 다 써 봤지만 막을 수가 없다, e스포츠 스타를 한 명 내세워 아이를 설득해 달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보통 그 부탁을 들어준다.
나도 한때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안다. 대부분의 아이는 속으로는 자기가 e스포츠라는 길에 맞는다고 그리 확신하지 못한다. 학업에서 벽에 부딪힌 뒤에 무의식적으로 새 출구를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라는 단 하나의 좁은 문 말고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내주는 길이 너무 적다. 그래서 화려하고 시끌벅적해 보이는 컴퓨터와 인터넷과 게임이 아이가 허둥대며 붙잡는 지푸라기가 된다.
나는 그 아이가 e스포츠를 고르는지 아닌지에는 사실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아이가 고른 그 길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자기에게 맞는지, 그리고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아는지다.
우리 세대의 책임은 새로운 길을 힘껏 찾고 열어서, 새 문화를 품고 길러 낼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마음껏 생각하고 마음껏 고르고 해낼 수 있다. 건강하게 위를 향하는 하위문화들도 싹을 틔우고 자랄 기회를 얻는다.
이것이 이 강연의 전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