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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부모가 대회에 데려간 아이, 산청구이왕 TED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二十七 父母带他打比赛 山城鬼王TED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19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9981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TED, 많은 사람이 그를 샤오팡쯔(小胖子), 곧 작은 뚱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2010년 6월 24일 우리는 모두 스자좡(石家庄)에 있었다. 그날 저녁 기가바이트의 GIGAJOY 스타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뒤 내가 이야기나 좀 하자고 하자 샤오팡쯔는 좋다고, 샤워부터 하겠다고 했다. 30분 뒤 그의 방에 갔을 때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엎드려 턱을 괸 채 월드컵을 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동그란 고슴도치 같았다.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 그는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와 손을 뻗어 텔레비전을 끄고 말했다. 이야기하자.

이 사람이 중국 워크래프트 3의 구이왕(鬼王), 곧 귀신 왕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말도 행동도 느긋한 눈앞의 이 샤오팡쯔는 2008년 왕저즈루(王者之路, ROTK) 국제 정상급 팀 대회에서 혼자 국제 정상급 팀 세 곳의 세계 최정상 선수 열다섯 명을 모두 꺾었다. 당시 한창 기세가 오르던 MOON과 GRUBBY도 그 안에 있었다. 그렇게 그는 궁지에 몰린 자기 팀의 판을 뒤집었고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그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쩡줘(曾卓), 영문 이름은 TED다. 1988년 6월 15일 충칭(重庆) 위중구(渝中区)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찰이고 어머니는 회사 사무직이다. 아주 평범하면서도 무척 특별한 가정인데, 교육을 보는 몇 가지 생각에서는 시대를 크게 앞서 있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TED의 인생도 보통 사람의 인생에 견주면 아주 독특해 보인다.

TED의 부모는 아이가 자라는 문제에서 태도가 아주 열려 있었고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적극 밀어 줬다.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그에게 훙바이지(红白机), 곧 패미컴 호환기를 사 줬고, 부자는 집에서 자주 함께 《배틀 시티(坦克大战)》를 했다. 오락실이 유행하던 때에는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오락실에 갔는데, 그때 TED는 조종간에 손이 닿지도 않아 걸상을 밟고 서서 놀았다.

TED의 초등학교 시절은 더욱 믿기 어렵다. 그가 다닌 곳은 실험반이었는데, 이 반은 1학년 때부터 아이들에게 시를 쓰고 영어를 배우고 컴퓨터를 쓰고 색소폰을 부는 것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해마다 아이들의 글을 모아 책을 한 권씩 내 줬고, 온갖 새로운 것을 시도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보라고 북돋웠다. TED는 자기가 컴퓨터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초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이미 《레드 얼럿》과 《스타크래프트》부터 문서 조판까지 두루 능한 컴퓨터 고수가 되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국 PPT 제작 대회에서 충칭 1위를 했고, 베이징에 가서 결선에 나가 끝내 3위를 차지했다.

TED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는 주말마다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자주 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서 컴퓨터를 상대로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퇴근길에 컴퓨터 상가를 지나다가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열리는 것을 봤고, TED가 이 게임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대신해 참가 신청을 해 줬다. TED는 자기가 컴퓨터를 상대로는 무적이라고 여겨 대회에 나갔는데, 결과는 1회전 탈락이었고 아버지에게 한참 놀림을 받았다.

2003년 중학교 3학년을 마치기 전 TED는 《워크래프트 3》를 접하기 시작했고 그때 지역 팀 하나에 들어갔다. 팀에 언데드를 쓰는 고수가 한 명 있었는데 TED가 무슨 수를 써도 그를 이기지 못했으므로 자기도 언데드를 쓰기 시작했다. 워크래프트 3 현장 대회에 처음 나간 것도 어머니가 컴퓨터 상가를 지나다가 대신 신청해 준 것이었다. 이번에 TED는 아주 잘했다. 죽음의 조에 들어갔는데도 그해 WCG 세계 준우승을 한 이름난 선수 CQ2000을 이겼고, 충칭 지역 고수 여럿도 꺾어 끝내 4위에 올랐다.

TED는 2K와 붙을 때 너무 긴장해서 손이 저릴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 그의 뒤에 서 있던 심판은 원래 그가 어떻게 당하는지 보려던 것이었는데, 끝내 TED가 이기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CQ2000은 경기에서 지고도 태도가 아주 의젓했다. 그는 다가와 충칭 사람이냐고 물었고, TED도 충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를 충칭 지역 고수들이 모인 QQ 단체 대화방에 넣어 줬다. TED는 이때부터 정식으로 중국 게임계에 들어섰다.

TED는 충칭의 그 형과 누나들에게 무척 고마워한다. 당시 그는 열여섯 살이었고, 그들이 계속 TED를 데리고 대회에 나가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그 시기에 아주 빠르게 성장해 지역 1인자 자리에 점점 가까워졌고, 2005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지역 고수를 모두 꺾고 CIG 충칭 지역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6년에는 충칭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거의 없었다.

TED가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하나 이야기했다. 2005년 그는 CIG 총결승 진출 자격을 얻어 아버지와 함께 상하이에 가서 결승에 나갔다. 그때 전에는 책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처음으로 많이 봤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진 추첨 때 suho 앞에 서 있으면서도 너무 떨려 말을 걸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대회 성적은 아주 나빴다. 1회전에서 KEDA에게 탈락했다. TED는 그때 자기는 그저 무명이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학업과 게임 사이의 갈등이 차츰 드러났고, 아버지에 대한 TED의 반항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그가 좋아하는 일을 밀어 주기는 했지만, 중국의 전통적인 관념에서 대학 입시는 좁디좁은 관문일 뿐 아니라 누구나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TED는 자기에게 대회에서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고 여겼고, 연습만 더 하면 반드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갈등은 TED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끝내 터졌다. 그는 그때 아버지와 벌인 말다툼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마지막에 그렇게 잘났으면 게임으로 네 밥벌이나 해 보라고 소리쳤다. TED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해 보이겠다.

학교 쪽은 오히려 TED의 결정을 아주 강하게 지지했다. 이 실험 학교의 방식은 당시로서는 정말 별났다. TED의 담임 선생님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공부는 자기 것이지 점수로 재는 것이 아니라고 늘 믿었다. 특히 교장까지 TED를 크게 지지해,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야간 자율 학습에 나오지 않아도 되며 집에 가서 연습해도 된다고 특별히 허락해 줬다.

TED 아버지의 태도도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충칭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어느 스포츠 신문이 TED가 CIG 충칭 우승을 한 일을 지면 절반에 걸쳐 보도한 뒤, 아버지는 마침내 TED가 내놓은 휴학 결정에 동의했다. 그 신문은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가져가 읽어 주면서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놀려면 이 정도는 놀아야 한다.

그때부터 TED는 미친 듯이 연습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고수들에게 도전했다. 첫날 쓰러지면 다음 날에는 반드시 이겨서 되찾아 올 방법을 찾아냈다.

2006년 5월 TED가 WCG 충칭 지역 우승을 하자, 중국에서 가장 전설적인 클럽 WE의 단장 페이러(裴乐, KinG)가 그에게 연락해 왔고, 이미 WCG 세계 챔피언이던 SKY, SUHO와 온라인 경기를 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TED는 그때 손이 떨렸다고 했다. SKY와 SUHO는 조금의 체면도 봐주지 않고 온갖 전술로 그를 얼얼하게 만들었는데, 특히 SUHO가 같은 전술 하나로 여섯 번이나 그를 이겼을 때 그는 문득 자기가 아주 보잘것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뒤 KinG은 TED를 다독이면서 그의 사정을 꼼꼼히 물었고, 그러고 나서 WE의 2군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때 운명은 TED 앞에 두 갈래 길을 놓았다. 하나는 대학 입시였고 하나는 프로 선수가 되는 길이었다. TED는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프로의 길을 더 걷고 싶다고 느꼈고, 그래서 2006년 6월 15일 열여덟 번째 생일 당일에 충칭에서 시안(西安)으로 가는 기차에 결연히 올랐다. 당시 WE 클럽의 숙소는 시안에 있었다.

꿈에는 계단이 있다.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룬 뒤 TED 앞에 곧바로 놓인 것은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꼬박 석 달 동안 TED는 팀 동료와의 연습 경기에서도, 국내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도 한 판을 이기지 못했다. 충칭에서 왕 노릇을 하던 그에게 그것은 괴로운 정신적 고문이었다. 날마다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는데도 스스로를 다그쳐 버텨야 했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나는 이 일에 맞는 사람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물음은 열여덟 살 아이에게 결코 작지 않은 심리적 압박이었다. 그때 그의 월급은 500위안뿐이었고, 돈을 아끼려고 하루에 밥 한 끼와 물 한 병만 먹었다. 스스로에게 한번 보여 주려고 그는 죽을힘을 다해 연습했고, 여전히 날마다 지면서 날마다 되짚어 보며 조금씩 자기 플레이 방식을 더듬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석 달 뒤 WGT 중국 지역 결승에서 TED는 국내 고수 여럿을 꺾고 3위를 차지했고, WE 클럽은 곧바로 그의 월급을 1,500위안으로 올렸다. 월급이 오른 뒤 살림이 좀 나아졌느냐고 내가 묻자 TED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야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좋은 시절이 그렇다고 곧바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TED는 2007년 상반기 내내 연애 문제로 침체기에 빠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너무 어렸고 감정에 많이 휘둘려 성적에 영향을 줬다. 그러다 2007년 10월 TED는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났고, 여자 친구가 끊임없이 마음을 풀어 준 덕에 TED는 자신감을 되찾고 훈련에 전념했다.

여러 해 쌓아 온 것이 2008년에 마침내 터졌다. 세계 정상급 팀들이 맞붙은 ROTK에서, WE가 이미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그는 판을 뒤집어 세계 최정상 선수 열다섯 명을 올킬, 곧 연달아 꺾어 WE의 우승을 이끌었다. ESWC 세계 e스포츠 대회에서는 중국을 대표해 미국에서 열린 결승에 나가 끝내 3위를 했고, WCG 세계 결승에서도 중국을 대표해 독일에 갔다. 2009년에는 WC3L에서 WE 팀과 함께 독일에 가서 세계 최강의 상대 진영을 꺾고 끝내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날 밤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에는 이미 새벽 3시였다. 샤오팡쯔는 이불을 두르고 앉아 눈웃음을 지으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 충칭 사람 특유의 급한 성미도 없었고 구이왕의 날카로움도 없었으며, 여전히 아이 같았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다른 쪽으로 옮겨 간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두 가지가 서로 상쇄되어 딱 알맞게 중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친구 TED, 산청구이왕(山城鬼王)이다. 산청은 충칭의 별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