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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StarsWar, e스포츠 대회의 엔터테인먼트화 실험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六 StarsWar的电竞赛事娱乐化探索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20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19190

이 번역은 2026년 8월 1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StarsWar의 정식 명칭은 StarsWar e스포츠 축전이고, 원래 이름은 StarsWar 국제 e스포츠 스타 초청전이었다.

먼저 곁가지 이야기를 조금 하겠다. 이 이면사는 몇 년 동안 끊겼다 이어졌다 하며 구상해 온 것이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겁내지 않고 말하자면, 처음에는 익명으로 쓸 생각이었다. 하기 불편한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다룬 CEG의 민감한 문제들이 그렇고, 또 하나는 이것이다. StarsWar 팀의 일원인 내가 StarsWar의 8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공을 기리고 덕을 칭송하는 글이라면 아주 쉽다. StarsWar가 후원을 따내려고 쓰던 PPT를 그대로 공개하면 된다. 그림과 글이 잘 어우러지고 숫자도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실제로 StarsWar는 커 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너무 많이 벽에 부딪혔다. 남이 저지른 실수도 있고 우리가 저지른 실수도 있다.

이 글이 e스포츠의 앞날을 따져 보는 글인 이상, 그리고 내가 익명을 접고 악역을 맡기로 한 이상, 나부터 까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StarsWar 창립자이자 http://Replays.net 창립자인 저우하오(周豪, Zax).

Zax는 중국 e스포츠 이면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2003년 워크래프트 3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성격이 지닌 매력과 개인적인 호소력은 e스포츠 판의 많은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 사람부터 소개해야 한다.

Zax는 e스포츠 판 안에서나 밖에서나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를 안 지 9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내 눈에 그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같은 사람이다. 오해는 마시라. 말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그 포용력과 평온함에 내가 탄복한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이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상대가 잘난 척을 하든 막말을 하든 그를 괴롭히든 아쉬운 소리를 하든 훈수를 두든, 그는 언제나 그 사람과 그 일을 너그럽게 바라볼 줄 알았다. 게다가 누가 아쉬워서 찾아오면 대개는 상대를 믿고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 돌아올 것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랬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손해 보는 것이 곧 이득이라는 옛말은 이해하기 쉽지만, 먼저 손해를 보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면.

Zax는 손해를 감수할 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품을 줄도 알았다. 펑샤오강 감독의 2004년 중국 영화 《도둑 없는 세상》에서 리 아저씨는 형제를 품을 줄 알아야 큰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말은 쉽고 행하기는 어렵다. 특히 외동으로 자란 우리 세대에게는 그렇다.

우리 세대 외동자녀는 어려서부터 식구들하고만 지냈다. 말이든 행동이든 대개 식구들이 맞춰 주었고, 또래와는 학교 말고는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그 결과 부모를 떠나 학교와 사회로 들어가서 아무도 우리를 맞춰 줄 이유가 없어지는 순간, 우리는 겉돌게 되었다.

그렇다고 외동자녀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모난 데와 가시가 조금씩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독립적이고 능력도 있으면서 모난 데도 가시도 없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있다. 다만 아주 드물다. Zax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남들의 온갖 괴상한 성미를 품어 주었고, 남들이 온갖 기이한 생각을 시도하도록 두었으며, 아랫사람의 아이디어를 거의 부정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위험이 적지 않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StarsWar7을 기획할 때, 나는 내가 진행을 맡아 미국식 토크쇼 오프닝을 해 보겠다고 했다. 국내 e스포츠 판에 성공한 선례가 있는지 없는지는 접어 두더라도, 나는 그때까지 줄곧 무대 뒤에서 연출을 하던 사람이라 무대 앞으로 나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든든히 밀어 주었다.

그렇게 Zax는 이 별종과 편집광 무리를 신기하게도 하나로 묶어 내면서 우리 가시에 찔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중심이 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맹자는 하늘의 때가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만 못하며, 도를 얻은 자에게는 돕는 이가 많다고 했다. Zax의 이런 응집력 덕분에 온갖 부류의 친구가 점점 늘었고 문제도 점점 더 풀렸다. 그래서 맹자의 그 몇 마디는 StarsWar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여러 번 영험을 보였다.

자, 본론으로 돌아가서 StarsWar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야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7월 22일, Zax는 자기가 만든 스타크래프트 리플레이 사이트 "클래식 리플레이 다운로드 사이트"에 더 나은 도메인을 붙이려고 http://Replays.net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시험 삼아 조회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도메인이 비어 있었다. 그렇게 Zax는 Replays.net의 창립자가 되었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워크래프트 3가 떠오르면서, 워크래프트 3로 갈아타 리플레이를 자주 올리던 Replays.net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Zax의 성격이 더해지자 워크래프트 3 전적 리포트와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금세 RN 포럼에 크게 모여들었다. 바로 그 과정에서 그는 RN 포럼에서 쉬윈보(许云波)를 알게 되었다. 그때는 미국에서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던 유학생일 뿐이었다. 이 사람이 1년 뒤 WE에 이름을 걸고 Replays.net과 GamesTV를 사들이는 IGE의 사장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쉬윈보는 상하이 사람이고 2004년에 막 미국에서 석사를 마쳤다. 날마다 워크래프트 3를 하고 음식을 배달하며 한가롭게 지냈다. 그 무렵 리니지 2 북미 서버와 블리자드의 명작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이미 뜨거워져 있었다. 남들이 아직 던전을 처음 뚫고 있을 때, 쉬윈보는 서버 안에 거대한 가상 아이템 거래 수요가 생겼다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챘다. 당시 중국에서는 작은 작업장 몇 곳이 이제 막 북미 서버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참이었지만, 아무래도 미국에 있는 그만큼 정보 통로가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 있는 대학 동창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가상 아이템 거래 사이트 http://mmoshop.com을 만들었다. 방식은 단순했다. 중국의 작업장에서 게임 머니를 사서 미국인에게 파는 것이다. 가상 아이템 거래에는 물류 문제가 없어서 비용이 아주 적게 들고 효율도 높아 돈이 많이 됐다. 다만 그때 미국에는 이미 이 사업을 하는 곳이 있었고 규모도 아주 컸다. 미국 회사 IGE(Internet Gaming Entertainment)였다.

쉬윈보는 겁내지 않았다. 자기 팀이 전부 중국인이니 이 일에서 더 유리하고, 자기가 사들이는 게임 머니가 IGE보다 쌀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4년 5월부터 mmoshop.com의 매출은 날마다 크게 올랐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mmoshop.com은 미국 IGE의 시장을 절반 넘게 먹어 치웠다.

IGE의 창립자는 미국 할리우드의 옛 아역 배우 브록 피어스(Brock Pierce)다. 2004년 가을, 스물일곱이던 쉬윈보와 스물넷이던 IGE 창립자 브록이 마주 앉아 회사 합병을 이야기했다. 협상 결과 IGE가 쉬윈보의 mmoshop.com을 인수했고, 2005년에 쉬윈보를 상하이로 보내 IGE 중국 대표처 총경리를 맡겼다. 그의 장기를 살려 가상 아이템 매입을 전담하게 한 것이다.

이때 Zax는 아직 주청(The9)에서 일하고 있었다. 쉬윈보는 Zax에게 자기 회사로 오라고 강하게 권하면서 국제적인 e스포츠 슈퍼 강팀을 꾸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래서 Zax는 Replays.net을 데리고 IGE에 들어갔고, 줄곧 함께 일해 온 KinG도 설득했다. KinG은 Sky와 suhO가 있던 YolinY 팀을 데리고 상하이로 왔다. 이렇게 해서 WE 클럽이 만들어졌다.

IGE가 당시 이 모든 것을 성사시킨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쉬윈보 본인이 e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때 국내에 가상 아이템 거래를 알릴 마땅한 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비를 크게 쓰느니 e스포츠 정보 사이트부터 손대는 편이 나았다. 잘되면 발언권도 어느 정도 얻어서 가상 아이템 거래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다. IGE가 나중에 GamesTV를 사들인 것도 같은 이유다. GamesTV는 지금 상하이 원광 그룹(SMG)의 게임 전문 채널 유시펑윈의 전신인데, 이것은 뒤에서 따로 이야기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접어 둔다.

IGE가 e스포츠 정리를 마친 뒤, Zax는 팀과 웹사이트와 대회로 이루어진 철의 삼각 홍보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팀은 WE, 웹사이트는 Replays.net, 대회는 StarsWar였다.

StarsWar의 처음 구상에는 깊은 고민이 없었다. 그저 그때 WE가 중국과 한국의 최정상 워크래프트 3 선수들을 거둬들여 열몇 명짜리 쟁쟁한 국제 e스포츠 스타 진용을 갖췄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19일에 열린 제1회 StarsWar는 사실 WE 팀의 데뷔 무대였다. 장소는 상하이 루완 체육관이었고, 진 사람이 내려가고 이긴 사람이 남아 계속 싸우며 많이 이길수록 상금이 쌓이는 킹 오브 파이터스 방식으로 워크래프트 3 1대1 대결을 치렀다. 기획도 단순했고 무대 설계도 단순했다. 그냥 단상 하나에 Replays.net 로고가 붙은 책상 두 개를 올려놓은 것이 전부였다. 대신 홍보는 제법 크게 했다. 여러 포럼과 하오팡 플랫폼에 광고를 실었고, 그 결과 2500석짜리 루완 체육관이 꽉 찼다.

그때 킹 오브 파이터스 방식의 대진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한 데다 경기용 기기 문제까지 겹쳐서, 제1회 StarsWar는 오후 3시에 시작해 밤 12시가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놀랍게 300명 넘는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고 관중석에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끝나면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사람을 북돋우는 이 장면이 IGE 회사 위아래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래서 제1회 StarsWar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2회 개최 방안이 논의에 올랐다.

윗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제2회 StarsWar는 2005년 10월에 규모를 키워 국제 e스포츠 스타 수를 늘리고, 4000명이 들어가는 상하이 창닝 국제체조센터에서 여는 것으로 잠정 결정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압박이 아주 컸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결국은 대회 후원 비용을 누가 내느냐는 문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당시 IGE에 돈이 많기는 했지만 사장이 그 돈을 다 대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고, 그때 StarsWar 프로젝트에 매달린 사람은 우리 몇 명뿐이었다. 나는 후원 유치 기획서를 쓰면서 실행 계획도 짜야 했고, 장소와 협의하고 네트워크와 현장 설치 관련 소통도 준비해야 했다. Zax는 스타를 초청하고 선발전과 일정을 짜고 회사에서 예산을 따내는 일로 바빴다. 웹사이트 동료들은 홍보 일로 바빴다.

그 시절에는 날마다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고, 날마다 불을 끄듯 여기저기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 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우리는 당시 경험이 없었고, 전문 전시 대행사를 쓸 형편도 안 됐다.

그 전까지 중국에서 4000명 규모 현장의 e스포츠 대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WCG 세계 결승이 체육관에서 열리기는 했지만 경기장 바닥만 쓰고 관중석은 막아 두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 우리는 4000명 규모 행사가 예전보다 그렇게까지 복잡해진다는 것을 몰랐다. 나중에 보안 등급을 올리고 인허가 등급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처음부터 그렇게 어려울 줄 알았다면 우리는 아마 물러섰을 것이다. 다행히 몰랐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고, 버티다 보니 넘어갔다.

  1. 관리 수준이 낮았다.

그때는 몇 사람이 죽도록 바빴고 압박도 컸지만 마음속으로는 뿌듯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렇게 모든 일을 직접 하는 방식이 틀렸다. 관리와 조율을 모르면서 권한도 넘기지 않으니, 결국 팀도 자라지 못했고 프로젝트도 커지지 못했다. 당시 Replays.net에는 이미 10명 가까이 있었고, IGE 마케팅부에도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GamesTV 인력도 있었다. 기술과 연출 인력을 빼더라도 쓸 만한 마케팅과 미디어 인력은 충분했다. 지금 방식대로라면 회사와 상의해 프로젝트 조직을 꾸리고 회사 주력을 모아 분업 협업을 시켰을 것이다. 각자 잘하는 일을 맡으니 효과도 좋고 지치지도 않으며, 남이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난처한 병목도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는 몇 마디로 지나갔지만, 이 두 가지는 당시 우리를 반년 넘게 괴롭혔다.

후원 유치 쪽은 이야기를 나눈 몇 곳이 처음에는 관심이 아주 컸다가 마지막에는 늘 이런저런 이유로 소식이 끊겼다. 이것은 당시 e스포츠 환경과도 관계가 있다. 그때 Sky는 아직 WCG 2회 우승자가 아니었고, 중국에서 e스포츠의 인지도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으며, 국내 게이머들도 한국과 유럽 미국의 스타만 봤다. 옛 사회 지주 집 머슴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큰 산 세 개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원래 2005년 10월에 하려던 제2회 StarsWar는 계속 미뤄졌다. 큰 후원사 한 곳의 소식을 기다리느라 연말 크리스마스까지 끌었고, 결국 우리는 상의 끝에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 음력 설 전에 이 프로젝트를 끝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마침 그때 상하이의 톈롄스지(T2CN)가 프리스타일(FreeStyle)의 전국 결승을 준비하면서 중계 협력을 문의하러 GamesTV를 찾아왔다. 당시 GamesTV의 야오모(妖魔), 지금 유시펑윈 채널 부총경리인 장저시(张哲希)가 나와 Zax를 불러 함께 회의를 했다. 톈롄스지 쪽이 경기 시점과 요구 사항을 말하는 것을 듣자마자 StarsWar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았고, 세부를 조율한 뒤 양쪽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에게는 주목도가 있었고 그들에게는 비용이 있었다.

그렇게 제2회 StarsWar는 2006년 음력 설 이레 전으로 정해졌다. 그때 경기 시작까지 한 달 반이 남아 있었고, 모든 준비 작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표를 팔고 홍보를 한창 벌이던 중에, 갑자기 장소 측이 StarsWar에 외국인이 많이 참가하니 중국 외사 부문이나 국가급 부처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알려 왔다. 그러지 않으면 공안 쪽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경기 시작까지 3주가 남아 있었고 입장권도 이미 절반 넘게 나가 있었다. 나와 Zax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StarsWar2가 부른 스타 진용이 워낙 대단해서, 많은 스타가 중국에 처음 오는 것이었고 심지어 서로 만나 본 적 없는 스타도 많았다. 입장권을 사방에서 앞다투어 사 갔고, 우리는 상하이의 PC방 체인 11곳을 통해 표를 풀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여기서 PC방은 중국의 인터넷 카페로, 한국의 PC방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게다가 시점도 아주 좋았다. 설 전에는 오락 공연이 하나도 없었다. 게임 전시회도, 전통 스포츠 경기도, 콘서트도 없었고 학생들은 겨울 방학이었다. 그 시기에 무언가를 하는 곳은 우리뿐이었으니 관심이 크게 쏠렸다.

상하이 창닝 국제체조센터의 위치도 좋았다. 다들 알다시피 지하철에서 멀지 않고 택시로도 금방이다.

그러나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과 사람의 화합을 다 갖췄어도, 승인 문서가 없으면 체육관은 행사를 취소할 것이었다. 그들도 계약을 깨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말썽에 휘말리는 것은 더 싫어했다. 우리도 그것은 이해했지만 답답했다.

짧게 논의한 결과 외사 부문 쪽은 가망이 없었다. 그들은 e스포츠와 전혀 상관이 없어서 누구에게 설명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남은 길은 체육 부문뿐인데, 가장 빠른 절차로도 3개월 전에 신청서를 내야 했다. 당시 우리 앞에 놓인 것은 거의 막다른 길이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사람을 부탁하고 연줄을 찾는 미친 짓이 시작되었다. 상하이시 체육국, 베이징시 체육국, 국가체육총국까지 아는 사람이라면 다 연락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문화 부문까지 찾아갔다가 하마터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뻔했다.

다행히 Zax는 발이 넓어서 5V를 찾아냈다. 여기서 당시 국가체육국에서 일하던 5V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워크래프트 3 휴먼 대마법사 아이콘을 얻은 선수다. 절차를 앞당기려고 그는 직접 승인을 받으러 다녔다. 날마다 간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기다렸고, 이것이 무슨 일인지 설명하며 서명을 받아 내려 했다. 그런 파격적인 노력에도 승인 문서는 행사 시작 일주일 전에야 마지막 간부의 직인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그 간부가 출장을 갔고 다음 달에야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은 정말 하루가 일 년 같았다. 우리 몇 사람은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천장만 노려봤다. 이틀치 경기 입장권 1만여 장이 나갔고 전부 팔려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회사에서 베이징 소식을 기다리며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 준비는 거의 끝나 있어서 세부를 생각할 마음도 없었다. 날마다 속을 태운 것은 행사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날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게이머가 많았고, 그들은 미리 차표를 사고 숙소를 잡고 친구들과 약속까지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기가 미뤄지면 손해는 모두의 돈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신용까지 전부 무너지는 것이었다.

Zax는 그 기간에 압박을 견디는 힘을 대단하게 보여 주었다. 아주 가볍게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조급해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었다. 그때는 마침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가 한창 인기였는데, 그는 우리에게 그 드라마를 보라고 권하면서 지금 우리가 그 드라마와 똑같다고 했다. 매회 큰 문제를 하나 해결하면 또 다른 큰 문제가 나오지만, 결국은 다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다 무너지기 직전이던 StarsWar2 개막 사흘 전 아침, 우리는 국가체육국에서 팩스로 보낸 직인 찍힌 문서를 받았다. Zax가 그 팩스를 내게 건네던 순간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던 느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감정의 기복이 워낙 커서, 나중에 비슷한 일을 겪어도 그리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2006년 1월 21일과 22일, 제2회 StarsWar가 상하이 창닝 국제체조센터에서 열렸다. 이틀 동안 연인원 1만여 명이 현장을 찾았고, 인터넷 생중계는 독립 IP 25만을 기록했으며 동시 시청자는 3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중국에서 현장 관중이 가장 많았던 기록을 세웠고, 스타 초청전 인터넷 생중계라는 새로운 흐름을 일으켰다.

StarsWar2 현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그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 가운데 하나였고, 현장과 온라인의 많은 관중에게도 가장 아름다운 기억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돌아보면 제대로 못 한 곳이 너무 많다. 무대는 아주 조촐했고, 첫 경기가 끝나자 기기가 고장 나 30분 넘게 씨름했으며, GamesTV는 생중계를 하면서 제대로 된 중계 부조 하나 없이 서류 가방만 한 스위처 하나만 있었고, 심지어 해설석에 조명 다는 것을 잊기까지 했다. 그래도 우리 기억 속에서 그해는 완벽했다.

StarsWar2가 끝난 뒤 우리는 베이비페이스(Babyface) 클럽의 VIP 룸에서 뒤풀이를 했다. 유럽 사람들과 술 대결을 했는데, 클럽 안에서 그 선수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뜻밖에 많아서 여기저기서 술을 보내 왔다. 그 바람에 다음 날 아침 여럿이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다들 여전히 즐거웠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정말 기분이 좋다. 그해의 그 홀가분함이, 그해의 그 미친 열기가 그립다.

제3회 StarsWar를 시안에서 연 것은 내 제안이었는데, 이것은 잘못된 제안이었다. 그때 나는 StarsWar의 활로가 전국 순회에 있다고 생각했다. 늘 상하이에서만 하면 사람들이 흥미를 잃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지금 봐도 이 생각 자체는 맞는 것 같지만, 당시 우리는 실행 경험이 너무 적었다. 다른 지역에서 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몇 배로 불어났고 관리 비용도 크게 올라 결과는 그저 그랬다. 그래서 제4회는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차이나조이(ChinaJoy)와 함께 했다. 그 뒤 2008년 금융 위기로 후원사들이 지출을 줄이고 IGE 미국 본사에 문제가 생기는 등의 이유로 우리 무리는 흩어졌다. Zax는 싱가포르 레이저(Razer) 본사로 일하러 갔고, WE는 펩시콜라와 협력하게 되었으며, Replays.net은 IGE가 베이징의 마이둥에 팔았다. Ehome의 모회사다.

2010년에 Zax가 싱가포르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StarsWar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 뒤의 일은 다음 이면사에서 쓰기로 하고, 아래에서는 StarsWar를 정리해 보겠다.

2005년 StarsWar 이전에 중국의 대회는 거의 다 WCG 같은 컵 대회 방식이었다. 풀뿌리 선발에서 시작해 마지막에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1998년부터 있었고 여러 해를 돌리고 나자 활력을 완전히 잃었다. 프로 e스포츠 팀이 등장하면서 지역 예선에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반 선수는 뚫고 올라오기 어려워졌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지역 예선에 나오는 사람이 얼마 없게 되었다. 그러니 대회 주목도도 떨어졌다.

간단히 말해 그때 e스포츠는 이미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스타가 나왔고, 팬들도 자기가 경기에 나가기보다 관중으로 남기를 더 원하게 되었다. StarsWar는 바로 그 시점에서 기회를 제대로 붙잡아 자기 전성기를 만들었다.

그 뒤 많은 대회가 스타 이벤트 매치에 대한 관중의 수요를 알아채고 방향을 바꾸거나 다른 대회와 합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해 그때는 이미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과 사람의 화합이 다 지나간 뒤였다. 2007년부터 카운터 스트라이크(CS)와 워크래프트 3 종목의 노후화가 이미 심각했고, 도타는 아직 뜨기 전이었으며, 이름난 e스포츠 스타는 여전히 그 몇 명뿐이었다. 대회는 갈수록 늘어나 관중의 피로도만 커졌다. 게다가 현장에서 경기를 보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영화나 콘서트처럼 길어야 3시간이면 끝나는 오락이 아니다. 여기에 인터넷 생중계 기술이 무르익으면서 집에서 경기를 보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관중을 현장으로 끌어올 것인가가 우리의 새 숙제가 되었다.

2010년 이후 StarsWar의 시도와 이념을 간단히 이야기하겠다. 2010년에 다시 태어난 StarsWar는 전문성과 높은 수준의 스타 이벤트 매치를 지키기로 하면서 조심스럽게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발을 뻗었다. 2012년에는 StarsWar e스포츠 아카데미상 시상식과 미국식 토크쇼 오프닝, 스타들의 노래 같은 것을 성공적으로 넣었다.

StarsWar의 이념은 e스포츠의 문턱을 낮춰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가는 것이다. 현장에 오는 관중 가운데 상당수가 2차 e스포츠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팬의 친구나 친척이고, 모임이나 나들이에 가까운 마음으로 온다. 핵심 게이머는 어차피 소수다. 수준 높은 경기로 그들을 붙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친구들을 잘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게이머가 현장에서 즐겁고 재미있다고 느끼게 하고, 할 일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하고, 스타를 만나 사인도 받고 수준 높은 경기도 볼 수 있게 하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상당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대회는 지금 단계에서도 여전히 돈이 되지 않는 상품이다. 아니, 아주 불안정한 상품이라고 해야겠다. 후원의 불확실성 때문에 후원은 앞으로 대회의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없다. 앞으로 대회가 입장권 값을 올려서 버틸지, 후원과 입장권을 결합할지, 아니면 다른 모델이 있을지 나도 지금은 잘라 말할 수 없다. e스포츠는 여전히 더듬어 찾는 단계에 있고, 다 함께 논의하고 함께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중국 e스포츠 대회의 세 가지 형태 가운데 컵 대회 방식과 스타 이벤트 매치 방식은 다 이야기했다. 남은 것은 리그 방식인데, 이것은 다음 장에서 중국 게임 영상 미디어의 판도와 함께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