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고민에 빠진 인쇄 매체 《e스포츠》¶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十六 忧虑的平媒《电子竞技》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2월 6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31175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e스포츠(电子竞技)》 잡지를 아는 사람은 많다. 학창 시절에 이 잡지를 본 사람도 아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신문출판총서(新闻出版总署)의 승인을 받은 중국 유일의 중앙급 e스포츠 잡지로서, 이 잡지가 지난 10년 가까이 겪은 부침의 이면은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e스포츠》 잡지는 2005년 4월에야 창간호를 냈는데 왜 10년 가까이라고 하는가?
그것이 이 장에서 다룰 첫 번째 이야기다.
일찍이 2003년, 마흔이 넘은 베테랑 출판인 리셴(李宪)과 치수옌(祁书彦)은 이미 IT 및 디지털 기기 분야 잡지를 여러 개 성공적으로 창간해 놓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경험이 풍부한 미디어인이었고, 그중 치수옌은 문화대혁명 이후 첫 세대로 칭화대학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졸업한 사람이다.
2003년과 2004년은 중국 e스포츠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이기도 하다. 리셴과 치수옌은 오랜 세월 쌓은 직업적 통찰로 e스포츠 애호가들이 전문 콘텐츠에 얼마나 큰 수요를 갖고 있는지를 예민하게 알아차렸고, 잡지의 간행물 등록번호(刊号)를 신청하는 일에 착수했다. 중국에서 간행물 등록번호는 출판 주무 부처가 내주는 발행 허가에 해당하며, 이것이 없으면 정식 유통망에 잡지를 낼 수 없다.
《e스포츠》 잡지의 처음 이름은 이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붙인 이름은 《중국 e스포츠 세계(中国电子竞技世界)》였다. 그런데 출판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아주 까다로워서 때로는 책 한 권의 운명을 그대로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리셴은 출판계 선배인 차이수민(柴淑敏) 선생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차이 선생은 당시 e스포츠를 알지 못했지만 잡지는 알았다. 리셴이 잡지의 내용과 자리매김을 설명하는 것을 다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앞뒤를 잘라 내고 그냥 《e스포츠》라고 하면 어떤가?
그래서 2004년, 간결하고 분명하고 반듯한 이름의 《e스포츠》 잡지가 나왔다. 중국과학기술협회가 주관 기관, 중국과학기술신문학회가 주최 기관이 되고 《과학기술과 생활(科技与生活)》 잡지사가 펴내는 형태였다. 중국에서 정기간행물은 이렇게 주관 기관과 주최 기관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 이 잡지의 출간은 당시 중국 잡지 시장의 빈자리를 메웠고, e스포츠는 처음으로 전통 매체 안에서 분명한 신분을 가진 자리를 얻었다.
간행물 등록번호가 나오자 사람을 모으는 일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리셴과 치수옌 자신은 게임을 하지 않았고, 2004년에 처음 모은 사람들은 전부 전통 매체 기자였다. 전문성은 있었지만 e스포츠를 알지 못했다. 시험 삼아 한 호를 만들어 보고서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05년 초, 두 사람은 온갖 연줄을 동원한 끝에 뒷날 《e스포츠》 잡지의 마케팅 총괄이 되는 DouDou를 찾아냈다.
왜 DouDou였는가? 이 이야기는 중국의 공용망과 교육망이 서로 잘 연결되지 않던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2004년의 DouDou는 아직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열렬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애호가였다. 교육망과 왕퉁(网通) 사이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경기가 심하게 끊기는 문제를 풀려고, 그는 중국과학원 네트워크 전산실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그 연줄로 중국과학원 백본망에 카운터 스트라이크 서버를 하나 세웠다. 알다시피 중국 현대 4대 백본망 가운데 하나인 중국과학기술망(CSTNET)의 전신이 바로 중국과학원이 구축한 NCFC이고, NCFC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인터넷 기반 구조였다. 그래서 이 서버는 교육망에서 접속하든 왕퉁에서 접속하든 속도가 아주 빨랐다.
그전에 DouDou는 e스포츠 사이트 Esai(전신은 Ccsk.net)에서 함께 기자로 일하던 뉴옌(牛眼)과 베이징 대학 e스포츠 연맹(Beijing University E-sports Union, BJUEU)을 만들었고, 2004년부터 제1회 베이징 대학 e스포츠 리그(Beijing College Cyber Tournament, BCCT)를 열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열기가 아주 뜨거웠고 학교들 사이의 경기와 교류도 많았다. 그러나 다들 쓰는 망이 제각각이었고 교육망과 공용망 사이에서 끊기지 않는 서버는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DouDou의 이 서버는 베이징 대학가 e스포츠 애호가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이 대회를 여는 과정에서 DouDou는 당시 중앙재경대학 대표팀 주장이던 허추(何秋)를 알게 되었다. 뒷날 《e스포츠》 잡지의 초대 집행편집장(执行主编)이 되는 사람이다.
그보다 앞서 DouDou는 어느 대학 대회를 계기로 당시 국내 대학 카운터 스트라이크 판에서 이름난 칭화대학 U 팀을 알게 되었고 사이가 아주 좋아져서, 나중에는 U의 팀 매니저가 되었다. 당시 칭화 U 팀의 주장이 푸웨이화(傅卫华, Dragoon)였고, 그가 뒷날 《e스포츠》 잡지의 부집행편집장이 된다.
푸웨이화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칭화 안에서 사람을 모으는 힘이 대단해서, 칭화 U 팀을 이끌고 베이징대학 SIN 팀 등과 숱한 맞대결을 벌였을 뿐 아니라 U 팀을 전국 규모 대회로 데려가 중국 대학 e스포츠 팀의 깃발로 만들었다. 그러나 칭화대학 금융 전공을 졸업한 뒤에는 이 판에서 조용히 물러나 일에만 전념했고, 지금은 중국 어느 은행의 부처급(副处级) 간부다. 중국의 행정 직급 체계에서 처급 부서의 부책임자에 해당하는 자리다. 똑똑한 사람의 무서운 점이 이것이다. 자기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안다.
U 팀에는 OGC라는 팀원도 있었다. 그는 허추가 《e스포츠》 잡지를 떠난 뒤 2대 집행편집장이 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리셴이 애초에 왜 DouDou를 찾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2005년 2월, 《e스포츠》 잡지는 조직 구성을 마치고 베이징 차오양먼와이(朝阳门外)의 중국도서수출입총공사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 편집부는 편집, 디자인, 발행을 다 합쳐 열 명이었고, 그중 일곱 명이 회사 옆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집에 함께 살았다. 그렇게 모여 살던 시절은 고단했지만 아주 즐거웠다.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날마다 함께 모여 기획을 놓고 머리를 맞댈 수 있었다.
2005년 4월 《e스포츠》 잡지는 창간호를 냈고 큰 호응을 얻었다. 두 번째 달부터 광고가 들어왔는데, 출판업계에서는 보통 잡지를 창간하고 18개월은 지나야 광고가 붙는다고 한다. 당시 베이징 하이뎬(海淀)에는 여덟 개 대학이 모인 이른바 8대 대학가가 있었고, 그쪽 가판대에서는 매달 15일에 나온 《e스포츠》 잡지가 16일이면 다 팔렸다.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스포츠》 잡지는 종이 매체 가운데 유일한 e스포츠 전문지였기 때문에 내용과 만듦새를 오로지 e스포츠 애호가의 수요에 맞출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침 워크래프트 3이 떠오르던 시기였고, WE.Sky의 2005년과 2006년 WCG 세계 대회 우승처럼 영향이 큰 사건들이 e스포츠와 대중 사이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그래서 《e스포츠》 잡지에는 매달 수천 통의 편지가 왔다. 주로 중고등학생과 군사학교 생도였다. 편집자들은 이것을 궁금하게 여겨 더 폭넓은 조사를 했고, 정리하고 분석한 끝에 잡지의 주된 구매자가 이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컴퓨터 사용이 제한된 사람들, 곧 컴퓨터를 쓰기가 그리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 독자층을 겨냥해 《e스포츠》 잡지는 내용을 많이 손봤다. 시의성 있는 내용을 버리고 깊이로 파고들어, e스포츠를 더 전문적이고 더 읽을 만하게 다룬 내용을 발굴했다. 예를 들어 허추는 논평 성격이 강한 허추 칼럼을 시작했다. 큰 대회를 글과 사진으로 상세히 전하는 경기 리포트도 그런 것이었다.
여기에 잡지 편집장 리셴이 오랜 세월 쌓은 출판과 유통 경험이 더해졌다. (짚어 둘 것이 있다. 편집장(主编)과 집행편집장은 크게 다른 자리다. 국가가 출판물 편집장의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정해 두고 있으며, 이 글에 나오는 e스포츠인들은 모두 집행편집장이다.) 리셴에게는 이미 자리 잡은 유통망이 있어서 잡지를 1선, 2선, 3선 도시까지 깔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원래 《e스포츠 차이나(电竞中国)》라는 또 다른 e스포츠 잡지가 경쟁 상대로 있었다. 그러나 《e스포츠 차이나》는 간행물 등록번호가 없어서 유통에 제약을 받았고 규모가 점점 작아졌다. 마지막에는 등록번호가 필요 없는 DM 무료 배포로 방향을 틀었지만 아쉽게도 결국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때와 자리와 사람이 다 맞아떨어진 《e스포츠》 잡지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남몰래 웃고 있었다.
왜 남몰래 웃었다고 하는가? 그 몇 해 동안 어디서나 《e스포츠》 잡지를 살 수 있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실제 판매 부수를 듣고는 그래도 놀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잡지의 실제 판매 부수는 대외비다. 진짜 숫자를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인데, 잡지사에서 발행을 맡은 사람이다. 인쇄소의 실제 인쇄 부수를 아는 사람이 그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 사람은 아주 베일에 싸여 있다. 예를 들어 《e스포츠》 잡지에서 발행을 맡은 사람은 열여덟 살 때부터 리셴을 따라다녀 지금은 서른이 넘은 사람이라고 한다.
대다수 잡지가 대외적으로 말하는 판매 부수는 부풀린 숫자다. 이것은 출판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초기의 규칙은 이랬다. 실제 판매 부수는 공식적으로 알린 숫자를 4로 나눈 값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공식이 더 복잡해졌고, 나도 그 규칙을 깨지는 않겠다.
그런데 2005년부터 2006년까지 《e스포츠》 잡지의 월 실판매 숫자를 듣고 나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그 숫자를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터뷰에 응한 사람도 나에게 그 숫자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말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인쇄소에서 찍는 다른 잡지 몇 종의 인쇄 부수를 비교로 알려 줬고, 나는 더 놀랐다. 다만 이 숫자들은 여러 잡지의 기밀에 걸리고 나로서는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이 부분은 덮어 두겠다.
여러분에게 알려 줄 것은 이것뿐이다. 당시의 《e스포츠》 잡지는 잡지를 파는 것만으로도 이미 잘 살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잡지가 잡지를 팔아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으로 사는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잡지는 광고로 먹고산다. 보통 잡지의 실제 월 판매 부수가 몇만 부만 되어도 아주 좋은 편이고, 한 부에 1위안이나 2위안 남는 이익으로는 잡지사를 먹여 살릴 수 없다. 특히 만듦새가 좋고 원가가 비싼 고가 잡지는 많이 찍을수록 손해가 커진다. 그래서 대다수 잡지는 판매 부수로 돈을 벌지 않는다.
《e스포츠》 잡지가 당시 잡지를 팔아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은 광고와 증간호와 행사에서 나오는 수입이 전부 순이익이었다는 뜻이다. 창간 2년밖에 안 된 잡지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2006년 3월 《e스포츠》 잡지는 판매가 워낙 좋아서 월 2회 나오는 반월간으로 바꿨다. 2006년 9월에는 편집자 Dog_mi가 쓴 증간호 《4대 천왕이 알려 주는 마이크로 컨트롤(四大天王教你微操作)》이 나오자마자 다 팔렸고, 초판 1만 부도 금방 동났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늘 짧다. 2006년 말 《e스포츠》 잡지에 내부 갈등이 하나 터졌다.
당시 집행편집장이던 허추가 편집자들의 처우를 올려 주려 했다고 한다. 그는 이 일에서 꽤 강경했고 잡지사와 대립했다. 구체적인 과정은 알 수 없지만 결국 이야기가 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허추가 화를 내며 편집자 일부를 데리고 경쟁지 《e스포츠 차이나》 쪽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제 막 자리를 잡아 가던 《e스포츠》 잡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2006년 2대 집행편집장 OGC가 부임한 뒤 사람을 새로 뽑아 상황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다. 이 기간에 OGC도 허추와 마찬가지로 논평 성격이 강한 OGC 칼럼을 시작했다.
저우이(周弈, 현 《e스포츠》 잡지 집행편집장)도 이 시기에 《e스포츠》 잡지에 들어왔다. 그는 당시 잡지의 스타크래프트 관련 내용을 맡았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몇 가지 내부 사정으로 OGC도 떠났고 편집자 유쯔(柚子)는 PGL로 갔다. 이때가 되자 창간 팀에서 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7년 말, 《e스포츠 차이나》의 집행편집장이던 모둥(漠东)이 《e스포츠》 잡지에 와서 3대 집행편집장이 되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꽤 기묘하다.
공식적인 설명은 이렇다. 2008년 초의 폭설로 잡지가 팔리지 않고 쌓였고, 5월 12일 원촨(汶川) 대지진이 또 한 번 잡지 발행에 타격을 줘서 그해 6월부터 8월까지는 합본호 한 권만 나왔다.
그러나 내가 들은 이야기는 다르다. 《e스포츠》 잡지의 편집자들은 모둥이 온 뒤로 계속 떠났고, DouDou와 저우이와 Dog_mi도 2008년에 잇따라 떠났으며, 마지막에는 모둥 자신도 떠났다는 것이다.
기묘한 것은 취재 과정에서 다들 그 시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다. 입을 다문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는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그 시기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떠났는지, 왜 말하지 않는지 나는 모르고 함부로 추측할 수도 없다. 이 부분은 일단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다음 이면사를 쓸 때는 다들 사정을 이야기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2009년 《e스포츠》 잡지의 팀은 무너졌다. 여기에 당시 세계 금융 위기로 전체 환경이 나빠지면서 업체들이 광고 집행을 줄였고 e스포츠 업계 전체가 침체했다. 그때가 진짜 겨울이었다. 《e스포츠》 잡지는 한동안 편집자 두 명과 디자이너 한 명만 남긴 채로 운영을 이어 갔다.
2010년이 되어서야 세계 경제도 나아지기 시작했고 업체들도 활력을 되찾았으며 e스포츠 클럽과 대회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저우이가 다시 《e스포츠》 잡지로 돌아와 집행편집장을 맡고 편집 팀을 맨바닥에서 다시 꾸렸다. 그렇게 《e스포츠》 잡지의 새 삶이 시작되었다.
저우이는 나를 몹시 놀라게 한 사람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의 생각이 아주 순수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들을 때는 조금 고지식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다 듣고 나서 곰곰이 되짚어 보니 그가 한 몇몇 말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먼저 저우이는 지금이 e스포츠에 가장 좋지 않은 시대라고 본다.
그는 미디어를 예로 들었다. e스포츠 미디어의 주된 수입원은 지금도 하드웨어 업체와 게임 업체다. 이것이 하나의 모순을 만들어 미디어가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대회를 평가하려는데 그 대회의 후원사가 자기 광고주인 경우가 있다. 어떤 게임을 평가하려는데 그 게임의 운영사가 자기가 보도해야 할 큰 대회를 열고 있어서 밉보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e스포츠 미디어의 수입원은 광고주가 다른 업종인 여러 전통 매체와 달라서, 보도할 때 업계 안의 사정에 이래저래 시달리게 된다.
저우이는 지금 미디어에는 미디어로서의 가치가 이미 없다고 본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아니라 눈길을 끌 수 있느냐가 성공의 가장 큰 척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우이는 집행편집장을 맡은 뒤 《e스포츠》 잡지에서 논평 성격의 내용을 많이 잘라 냈다. 그는 앞선 집행편집장들처럼 논평 기사를 쓰지 않았고, 편집자들에게 기사를 쓸 때 취재를 다섯 명 넘게 하고 반드시 사실로 말하라고 요구했다.
내가 e스포츠가 한창 뜨거운 상하이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우이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토록 놀랐던 것이다. 그는 요즘 많은 게임 사이트와 e스포츠 사이트가 당연하게 여기는 방식을 전부 부정했다. 나는 그때 살아 있는 화석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우이의 근심이 종이 매체가 다 같이 안고 있는 근심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다. 대중의 독서 습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종이 매체를 서서히 버리고 있고, 짧고 빠른 것이 정보를 얻는 데 대한 대중의 주된 요구 기준이 되었으며, 앞에서 말한 컴퓨터 사용이 제한된 사람들도 경제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e스포츠》 잡지가 이렇게 흐름을 따라가기는커녕 오히려 전통적인 저널리즘으로 돌아가면 스스로를 더 변두리로 몰아넣는 것 아닌가, 《e스포츠》 잡지도 그래서 도태되는 것 아닌가?
내가 처음에 놀란 주된 이유도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깊이 있는 보도를 더는 필요로 하지 않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디어에는 그런 미디어로서의 책임도 필요하다. 어쩌면 《e스포츠》 잡지는 앞으로 더 맞는 자리를 찾아 계속 나아갈지도 모른다.
저우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지금의 e스포츠 열풍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몹시 흥분한 사람이 갑자기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듯이, 나는 다시 차분한 눈으로 지금의 거의 광기에 가까운 e스포츠 판을 보게 되었다.
저우이의 말은 극단적이지만 나름의 이치가 있다. e스포츠는 미래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업체가 e스포츠를 주도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지금 마주한 큰 문제다.
간단히 말해 지금 단계에서 e스포츠는 달걀을 전부 한 바구니에 담아 놓았고, 게다가 다른 바구니가 없다.
하드웨어 업체와 게임 업체가 e스포츠를 지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e스포츠가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는데 언젠가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앞으로 텐센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시들해지고 중심이 다른 유형의 게임으로 옮겨 가면 e스포츠는 어떻게 계속 살아가는가?
지금 단계에서는 모두의 목표가 같지만 길게 보면 그들의 목표가 정말로 e스포츠의 목표와 같은가? 여기에는 물음표를 찍어야 하고 우리는 미리 대비해야 한다. 동시에 또 하나의 문제가 우리 앞에 있다. 그들이 없다면 누가 이 일을 주도하는 것이 더 맞는가? 이것은 어쩌면 우리 업계 전체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자, 본론으로 돌아가자.
《e스포츠》 잡지가 중국 e스포츠의 모색기에 한 역할은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기여이고, 실제로 그들은 이면에서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 예를 들어 잡지라는 비교적 전통적인 매체 수단을 통해 e스포츠의 올바른 개념을 위로는 부처급 감독 기관까지 밀어 올리고 아래로는 컴퓨터 보급률이 낮은 지역까지 넓혔다. 그렇게 e스포츠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길을 닦았고 업계 전체에 아주 깊고 오래가는 영향을 남겼다.
고민에 빠진 인쇄 매체 《e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