跳转至

제7장. 유시펑윈의 과거와 현재

《ONE MORE WAY: 중국 e스포츠의 이면사》 중 한 장. 저자 BBKinG(류양, 刘洋).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七 游戏风云的前世今生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3년 11월 22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620732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2006년, 제3회 StarsWar를 마친 뒤 나는 당시 아직 "유시펑윈GamesTV"라고 부르던 상하이 원광 인터랙티브(上海文广互动)의 유시펑윈(游戏风云) 채널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독립 운영하는 유시펑윈 유한공사가 따로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처음 손댄 프로젝트가 제1회 G리그(G League) 준비였다.

자료를 정리해 PPT를 만들다가 G리그에 아직 중국어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e스포츠 텔레비전 리그"라는 이름을 지어 윗선에 올려 심사를 받았다. 심사 회의에서 채널 총편집실 주임인 바이위하이(柏玉海) 선생이 의견을 냈다. "중국"이라는 말은 국가급 체육 부문만 쓸 수 있으니 우리는 "전국"을 쓰는 편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다들 좋다고 했고, 그렇게 G리그의 중국어 이름 "전국 e스포츠 텔레비전 리그"가 정해졌다.

세월이 흘러 7년 뒤...

2013년 3월 9일 아침 10시, G리그 제2시즌 결승전이 상하이 메르세데스 벤츠 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8000명이 들어가는 곳이고, 지금 상하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서트장이기도 하다. 대형 행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것이 무대 뒤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G리그를 벤츠 문화센터에서 여는 것은, 한편으로 모든 부문의 실행 난도가 크게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4000명에서 8000명은 단순히 2를 곱하는 관계가 아니다. 복잡도는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작게는 후방 지원과 매표 경로부터 크게는 프로젝트 인허가와 행사 비용 관리까지, 전에 없던 시험을 치르게 된다. 유시펑윈 팀의 실행력과 손발이 맞는 정도가 이 행사에서 전방위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e스포츠가 더 상업화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비싼 장소 비용, 지하철과 옥외 광고 비용, 이런 것은 모두 e스포츠 바깥의 사람들에게 소리를 내는 일이다. e스포츠도 이런 장소에서 공연을 열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질적인 도약이다.

결과가 어떻든, 한때 유시펑윈의 일원이었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 팀이 그동안 버티고 더듬어 온 길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 글을 중국 게임 영상 프로그램의 발전에 이바지한 모든 텔레비전 사람에게 바친다.

운명으로 정해진 게임 인연

2004년, FPS 게임을 좋아하던 우창(吴强, GamesTV 전 총경리), 축구 게임을 좋아하던 장저시(张哲希, 현 유시펑윈 부총경리), 콘솔 게임을 좋아하던 장루이(张锐, 현 유시펑윈 프로듀서), 그리고 이미 게임 판을 떠나 있던 원성커(文圣可) 등이 한 카페에 모여 GamesTV를 만들었다.

앞 장에서 StarsWar를 이야기할 때, 2005년 IGE 중국 총경리 쉬윈보(许云波)가 중국으로 파견되어 상하이 대표처를 세우는 일을 맡았다고 한 것을 기억하는가? IGE 미국 본사는 발언권을 얻어 가상 아이템 거래상이라는 이미지를 바꾸려고 미국에서 게임 미디어 회사 몇 곳을 사들였고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같은 길을 되풀이할 생각이었다.

마침 원성커가 쉬윈보의 동창이어서 이 선이 닿았다. 이것이 운이다.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2005년 초여름 IGE가 GamesTV를 인수했고, GamesTV가 바로 유시펑윈의 전신이다. GamesTV의 처음 생각도 비교적 단순했다. 게임 쪽 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광고를 팔 기회가 있는지 보자는 것이었다. e스포츠부터 시작한 것은 당시 카운터 스트라이크(CS)가 아직 뜨거웠고 워크래프트 3가 막 시작하던 참이라, 그때의 온라인 게임에 비하면 e스포츠가 목표가 비교적 분명한 진입점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무렵 IGE는 웨이하이로(威海路) 원신 신문그룹 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옮겼고, GamesTV와 내가 있던 http://Raplays.net 프로젝트 조도 뒤이어 모두 들어갔다. 두 프로젝트 조는 직선거리로 10미터가 되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때 야오모(妖魔), 곧 장저시와 우창, 원성커 등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들 동료로 지내게 되었다.

GamesTV가 시작 단계에 e스포츠부터 손대기로 했으니, "해설도 되고 화면에도 설 수 있는" e스포츠 인재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급선무가 되었다.

처음에는 http://Replays.net 창립자 Zax가 카메라 앞에서 해설을 맡아 워크래프트 3 강좌 영상을 전담해 만들었다. 그러나 Zax는 RN과 StarsWar 일이 있어 몸이 둘일 수 없었으니 더 알맞은 사람을 물색해야 했다.

그래서 BBC가 야오모의 소개로 GamesTV에 들어왔고 금세 일을 익혔다. 그때부터 그는 해설석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프로 선수 MagicYang도 그 무렵 끌어들인 사람이고, 뒷날 고전이 된 황금 조합 BBC와 라오양(老杨) 짝도 그때부터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GamesTV의 초기 장비는 상당히 단출했다. 녹화 스튜디오는 사무실 안 10제곱미터도 안 되는 빈방에 차렸고, 조명용 반사 우산은 직원들이 사람을 구해 직접 용접해 만들었으며, 카메라는 대부분 가정용이었다.

그래도 그 시기의 성장 속도는 제법 빨랐다. 아주 짧은 사이에 강한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장추치(张楚齐). 마흔이 안 된 장난기 많은 어른이라 우리는 보통 라오장(老张)이라고 높여 불렀다. 특수부대 공수부대원 출신이고, 키가 크고 우람하며 얼굴이 붉어 관우를 닮은 우한 사람이다. 제대한 뒤 방송국에서 십몇 년을 굴렀으니 전형적인 옛 텔레비전 사람의 습관이 배어 있었다. 성질이 불같고 기술이 뛰어났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욕을 먹었고, BBC는 진행을 막 맡았을 때 욕을 먹고 운 적도 있다. 그런데도 다들 그를 인정했다.

StarsWar 제2회부터 제4회까지 그가 중계 연출을 맡았고 내가 현장 연출을 맡았다. 나도 현장에서 적잖이 욕을 먹었다. 처음에는 좀 견디기 힘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는 일을 따질 뿐 사람을 따지지 않았다. 일이 잘되면 찻잔을 들고 아이처럼 웃었다. 그가 있으면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해야 했다. 그는 채찍 같은 사람이었고, 그때 팀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던 것이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오장도 그 성질 때문에 무너졌다. 급해지면 누구도 봐주지 않고 상사든 초대 손님이든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니, 방송국 안에서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2006년에 그는 유시펑윈을 떠났고 지금은 출판 쪽으로 갔다. 지난해 라오장이 상하이에 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성격은 여전했지만 결혼해 아들을 얻어서인지 사람이 제법 평온해진 듯했다.

강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상하이의 텔레비전 시청자에게는 비교적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2002년 상하이 라이프스타일 채널(生活时尚频道)이 《유뎬펑쾅(游点疯狂)》이라는 게임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뒷날 큰 사랑을 받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2004년 광전총국의 게임 프로그램 금지령 때문에 방송이 내려갔다. 몇 번을 돌고 돌아 이 프로그램의 총기획 황하오(黄昊)와 진행자 장루이가 2006년 GamesTV에 들어왔다.

황하오는 우리가 황라오다(黄老大), 곧 황 큰형이라고 높여 부르던 사람이다. 수염을 크게 기른 개성 강한 연출이고, 생각이 아주 또렷한 제작자이며 텔레비전 제작 경험이 풍부했다. 2006년 어느 행사 현장에서 그는 바쁘게 뛰어다니는 나를 보더니 무심코 한마디 했다. "현장에서 연출은 할 일이 없어야 한다." 이 한마디가 팀을 이끌고 프로젝트를 하는 법에 대해 내 눈을 트이게 했다.

장루이는 상하이 희극학원(上海戏剧学院) 연기과 출신이라 발성이 아주 정통이고 전문적이다. 내가 방금 써 놓은 원고를 그가 그대로 집어 들고 더빙할 수 있었고, 그것도 한 번 끊지 않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문장을 저절로 다듬어 가며 읽었다. 이것은 업이 다르면 세계가 다르다는 말을 자주 실감하게 했다. 그 자신은 엑스박스 360 같은 콘솔 게임을 아주 좋아해서 일찍 접했고 파고든 깊이도 상당하다. 콘솔 게임 쪽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다.

황하오와 장루이가 들어오면서 텔레비전 제작 쪽의 연출과 후반 작업 인력이 여럿 따라 들어왔을 뿐 아니라, 방송국의 프로그램 제작 사고방식과 기준도 함께 들어왔다. 덕분에 GamesTV는 프로그램 종류와 품질에서 한 단계를 크게 올라섰다. e스포츠 경기만이 아니라 싱글 게임 프로그램과 게임 뉴스 정보 프로그램도 생겼다.

샤오룽117(小荣117, 현 유시펑윈 대회 총감독)은 2005년 AS 팀에서 은퇴한 뒤 먼저 하오팡(浩方)에 들어가 대회를 맡았고, 나중에 2006년 유시펑윈으로 왔다. 샤오룽이 프로 선수의 시선으로 FPS 경기를 해설하는 것은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었다.

샤오룽은 아주 영리한 상하이 사람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대개 사람을 대하는 데 능한데, 샤오룽이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 또 하나는 그가 윗사람이 던지는 일을 받아 내고 끝까지 해내려 애쓴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은 몹시 지루하면서도 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압박을 나눠 지는 부하를 싫어할 상사는 없다. 그래서 2008년 유시펑윈이 갈라설 때도 샤오룽은 첫 번째로 지명되어 원광 쪽으로 넘어갔다.

같은 염소자리로서 이 몇 해 동안 샤오룽이 참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가도 상당했다. 지난달 유시펑윈에 사람들을 보러 갔더니 샤오룽은 머리숱이 많이 줄었고 마음도 많이 늙어 있었다. 그때의 기무라 타쿠야가 어쩌다 황보(黄渤)가 되었나 싶어 감회가 깊었다. 황보는 미남형이 아닌 연기파로 알려진 중국 배우다.

CS MTV 시리즈를 만든 톈카페이(甜咖啡)를 기억하는가? '달콤한 커피'라는 뜻의 아이디다.

그도 나중에 우창의 설득으로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와 GamesTV에 들어왔다. 그의 인생 역정은 제법 험해서 어려서부터 독특한 관찰력이 몸에 뱄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지나치는 일을 아주 다른 시선으로 발견해 낸다. 2008년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퍼펙트 월드(完美国际)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드러난 실력

GamesTV가 처음으로 힘을 쓴 것은 200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WCG 세계 결승이었다. 그 전에 장저시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WCG 조직위원회와 소통했고, 끝내 무료 대회 생중계 권리를 따냈다. 성공하면 절대다수의 중국 e스포츠 애호가가 WCG 현장 화면을 처음으로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IGE도 크게 밀어 주어 GamesTV 전방 취재조를 보냈다. 야오모 등 동료 몇 명이 싱가포르로 가서 현장 생중계를 뒷받침하고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때 찍어 놓은 영상 인터뷰가 너무 커서 제때 보내지 못했고, 시간을 아끼려고 전화 연결 녹음이라는 방법을 썼던 것이 기억난다. 한번은 인터뷰 전에 마침 내가 그들 사무실에 있었는데, 야오모가 몹시 지친 목소리로 우창과 잠시 뒤의 연결을 조율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며칠째 이어서 일하고도 쉴 수 없었다. WCG는 딱 그 며칠뿐이고, 일차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알 것이다.

부지런히 쏟은 만큼 보답도 아주 컸다. GamesTV는 WCG 생중계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목도가 크게 올라갔다. 특히 그해 Sky가 중국 워크래프트 3의 첫 WCG 세계 챔피언을, 그것도 상당히 무게 있는 세계 챔피언을 따내면서 중국의 e스포츠 애호가 전체가 들끓었다.

효과가 이렇게 좋았기 때문에, 이듬해인 2006년 WCG 세계 결승 중계권은 다투는 곳이 생겼다. WCG 조직위원회가 2005년 GamesTV와의 협력이 꽤 즐거웠다고 여겨 원래 GamesTV에 무료로 주려던 중계권이었는데, 당시 NeoTV가 10만 달러를 내고 그것을 가져갔다.

바로 이 일 때문에 NeoTV와 유시펑윈 사이에 원한이 심어졌다. 이것은 뒤에서 다룰 이야기이니 여기서는 펼치지 않겠다.

아래에서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GamesTV에 있던 문제를 이야기하겠다.

GamesTV의 이 2년을 돌아보면 StarsWar2 생중계와 WCG 2005 생중계가 비교적 뛰어났던 것 말고는, 일은 많이 했지만 눈에 띄는 대목이 많지 않다. 왜인가? 내 생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회사의 방향이 또렷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IGE와 GamesTV 윗사람들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먼저 곁가지 하나. 나와 쉬윈보는 지금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다. 가끔 같이 취해서 그때의 그를 면전에 두고 욕하기도 하는데 그는 화내지 않는다. 내가 그때 그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리라는 것을 둘 다 알기 때문이다.

당시 IGE의 하루 순이익은 30만 달러였고 외부의 회사 가치 평가는 6억 달러였다. 사람은 많지 않은데 대단히 돈을 잘 벌었다. 게다가 2006년 무렵 온라인 게임 시장이 뜨거웠던 것을 보면 앞날이 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IGE 윗사람들에게는 아래에 있는 정보 사이트가 돈 버는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되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어떻게 더 잘 만들 것인가? 위에서 압박도 방향도 없으니 시간이 지나자 아래 사람들은 자연히 막막해졌다.

  1. 당시 고정된 방송 플랫폼도 프로그램 물량도 없었고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

당시 온라인 게임 운영사가 해마다 17173 같은 온라인 게임 포털에 쏟는 광고비는 대단히 컸지만, 영상 미디어 쪽에 넣는 돈은 아주 적었다. 한편으로는 그때 게임을 하면서 영상을 보는 습관과 수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상 재생 플랫폼이 아직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쿠(优酷) 같은 동영상 사이트도 2006년 6월에야 나왔고, 그때는 네트워크 사정도 지금만 못해서 사용자가 지금처럼 편하고 매끄럽게 영상을 볼 수 없었다.

2006년이 되자 또 다른 골칫거리가 왔다. 《정보 네트워크 시청각 프로그램 전송 허가증》과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 경영 허가증》 문제였다.

사실 이 두 허가증에 관한 정책은 2004년에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 몇 해 동안 인터넷의 발전 자체가 어수선해서 다들 눈치를 보며 관망하고 있었고, 누가 돈을 벌어 먼저 나섰다가 표적이 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광전총국이 정책을 내놓기는 했어도 단번에 내리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머리 위에 매달린 칼 같았다. 언제 떨어질지 우리도 몰랐고 쉬윈보도 몰랐다. 다만 그는 압박이 컸다. GamesTV를 키운 다음 어디로 갈지 반드시 생각해야 했고, 그러지 못하면 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그때 쉬윈보는 상하이 원광에서 일하던 중학교 동창 장웨(张越)를 알게 되었다. 장웨가 다리를 놓아 뒷날 상하이 원광 인터랙티브 텔레비전 유한공사 총경리가 되는 가오웨(高越, 현재 퇴사)와, 지금 SMG 부사장인 장다중(张大钟)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상하이 원광 인터랙티브 텔레비전 유한공사 SiTV"를 소개해야겠다.

SiTV는 디지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다. 텔레비전 셋톱박스로 봐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그 아래에 유시펑윈 채널이 하나 있었고, 마침 게임 프로그램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한쪽에는 사람과 돈과 프로그램이 있으면서 허가증과 방송 통로가 없어 애태우는 GamesTV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통로와 모델이 있으면서 게임 프로그램이 없고 전문 인력이 없고 돈이 없는 SiTV가 있었다. 그러니 유시펑윈과 GamesTV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여기서 유시펑윈이 예전에 쓰던 구호 "유워쒀아이, 런워펑윈(游我所爱, 任我风云)"을 짚어 두겠다. 대략 "내가 사랑하는 것을 즐기고, 내 뜻대로 바람과 구름을 부린다"는 뜻인데, 문학 석사 학위가 있는 가오웨 선생이 어느 회의에서 불쑥 내뱉은 말이다. 방송국 안에서 자리를 잡고 올라가는 사람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사 합병은 금세 끝났고 유시펑윈GamesTV의 인원도 열몇 명에서 단번에 50명 가까이로 늘었다. 예전 사무실에는 다 앉을 수 없어 회사는 광중시로(广中西路)의 환웨이 멀티미디어 밸리로 옮겼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전문 스튜디오가 여럿 있었다. 그 시기에 꽤 인기 있던 예능 프로그램, 예를 들어 《자유하오난얼(加油好男儿)》이나 스타 팬 미팅 같은 것이 다 거기서 녹화되었고, 회사 건물 아래는 수백 명의 열광적인 팬으로 자주 꽉 막혔다.

여러모로 봐서 그때의 유시펑윈GamesTV는 정말 순조로웠고 앞길이 훤했다.

아래에서 핵심 인물 한 명을 소개하겠다.

천젠수(陈剑书). 상하이 원광 인터랙티브 SiTV 유시펑윈 사업부 총경리이자 G리그 창설자다.

2006년 6월 회사 합병 뒤 원광 쪽 대표로서 천젠수가 유시펑윈GamesTV에 합류했다. 그는 현 유시펑윈 총경리이고 우리는 젠수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이 사람도 아주 전설적이다. 영국에서 석사를 마쳤고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귀국해서 원광에 들어가 유시펑윈 채널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채널에 그 혼자였다. 영상을 찾고 편집하고 기획서를 쓰며 오래 버텨 냈다.

천젠수의 배경은 비교적 민감하고 본인도 대단히 낮은 자세를 지키니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관가를 잘 알고 게임에도 관심이 아주 많다는 것뿐이다. 그의 개성은 사실 아주 강한데, 그에게는 언제 거두고 언제 풀지 아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방송국 같은 국유 기업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하는지 알고, 그것을 여유 있게 해낸다. 덕분에 한편으로 원광 상층부와 선을 대고, 다른 한편으로 게임 인재를 끌어들이는 법을 안다. 관가에서 분수를 잡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윗자리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여러 방향의 갈등과 요구를 마주할 때는 전략 방향이 옳아야 할 뿐 아니라, 자주 적당히 어우르고 아슬아슬한 선을 타며 일해야 한다. 이런 것이 다 큰 학문이다.

2008년 이후의 유시펑윈이 반듯하기만 한 방송국 안에서 개척적인 시도를 여럿 따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젠수 같은 지도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야오모가 하나는 위를, 하나는 아래를 맡아 손발을 맞추는 솜씨는 이미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 2010년 무렵 유시펑윈이 대회와 웹 게임에서 성공적으로 흑자를 낸 데에는 그의 노력이 빠질 수 없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2007년 1월 G리그가 정식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전국 e스포츠 텔레비전 리그. 이것은 중국 e스포츠인이 여러 해 동안 생각해 온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텔레비전 방송국이 1999년 스타크래프트 시대부터 이미 텔레비전 리그로 스타를 만들어 냈고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우리가 여러 해 동안 실제로 볼 수 있었고 또 모두가 인정한 유일한 최고의 e스포츠 모델이었다.

G리그가 얼마나 좋은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다들 볼 수 있다. 시간을 지키고, 정규적이고, 규모가 크고, 상금이 높으며 제때 지급하고, 장소가 이름났다. 둥팡밍주(东方明珠) 타워와 난징로 보행자 거리에서 여러 번 성공적으로 열렸고, 국제 e스포츠 조직과 손잡고 대형 대회를 여러 번 열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G리그가 이 몇 해 동안 부딪힌 문제를 이야기하겠다.

  1.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의 수익 모델은 가까운 시기의 중국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 나라 자체가 크지 않고 초고속 인터넷과 디지털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높다. 이것은 유료 가입률과 시청률 자체가 비교적 높다는 뜻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광고주가 돈을 낼 마음이 생기니, 방송국은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월 이용료와 광고비만으로도 상당한 액수가 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다르다. 이 여러 해 동안 텔레비전을 공짜로 보는 것이 대중의 습관이 되었으니, 유료 디지털 셋톱박스의 보급은 지금까지도 아주 더디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이미 유시펑윈 채널을 공짜로 볼 수 있지만 대다수 지역은 여전히 요금을 내야 개통된다. 이것이 아주 어색한 판을 만들어, 디지털 텔레비전은 줄곧 인기는 있으나 크게 뜨지는 못하는 단계에 머물렀다.

그래서 G리그는 첫 3년의 후원 유치에서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2009년까지도 돈을 태우고 있었다. 그 기간 G리그 책임자였던 야오모의 압박은 상당했다. 나중에 보급률이 나아지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후원이 점점 늘었고, 지금 이 모델은 선순환을 이루었다.

  1. 리그 방식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리그의 선발은 상당히 긴 과정이다. 장점은 후원사 입장에서 브랜드 노출도가 비교적 높고 시청 습관을 기르는 데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하다. 경기 종목이 많고 참가 팀이 많아 볼거리가 흩어진다.

  1. 일하는 사람이 뛰어다니느라 지치고 기력이 소모된다.

나는 유시펑윈에서 나온 사람이라 방송국의 업무 압박을 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한 주에 정해진 분량의 방송 시간을 채워야 했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은 경기를 녹화하고 해설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깊이가 있어야 했다. 스스로 주제를 고르고, 기획안을 올리고, 자료를 찾고, 찍으러 가고, 인터뷰를 하고, 후반 편집을 하고, 심의에 올려서 심의 담당 선생님이 더 고칠 것 없다고 할 때까지 가야 끝이 났다. 게다가 프로그램은 2주 앞서 완성해야 했고, 방송국에 보내면 또 심의를 받아야 했다.

명절 같은 것이 오면 남들은 다 기뻐하는데 우리는 울고 싶었다. 휴가 기간에 선생님들이 심의할 수 없는 방송분까지 미리 만들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심의 담당 선생님이 제때 보지 못해 방송이 비게 되는데, 이것은 아주 심각한 방송 사고이고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주 내내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늘 머릿속으로 아이템을 굴렸다. 이 와중에 경기나 갑작스러운 행사가 하나 더 생기면 기력과 시간이 더 들어간다. 그러니 오래 하다 보면 취사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가장 만들고 싶은 그 한 편에 힘을 모으고, 나머지 일은 무난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유시펑윈과 G리그가 처음 몇 해 동안 준 인상은 바로 그 무난함이었다. 반듯반듯한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 스타일이라, 해마다 되풀이되는 CCTV 설 특집 프로그램 춘완(春晚)처럼 큰 변화도 돌파도 없었다. 그때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유시펑윈이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활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아주 기쁘게도 3월 9일 벤츠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큰 돌파다. 그래서 소식이 나오자마자 나는 흥분해서 곧장 뤄촨둥로의 유시펑윈 사무실로 달려가 다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쇼가 몹시 기대된다. 유시펑윈의 경험 축적이 이미 질적 변화의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역이 정상인지 아닌지는 이 한 걸음에 달렸다.

유시펑윈에는 하나하나 다 언급하지 못한 동료가 아직 많다. 그때 때를 기다리며 버티던 하이타오(海涛), 열심히 위로 올라가던 연출 왕관(王冠), 내 좋은 친구인 편집 연출 Garry, 웹사이트 부서 주관 쑨쥔(孙俊) 같은 사람들이 다 가장 이른 시기의 유시펑윈 사람이다. 떠났지만 아직 판 안에 있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지금 ACE 리그 책임자인 리쥔(李君)도 그때는 e스포츠부의 편집 연출이었다.

G리그는 우리 아이 같다. 우리는 그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다른 일로 바빠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 집 딸이 어느새 다 자란 것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고, 앞으로 그 아이가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