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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톈랑의 코스프레 산업화 꿈

저자 BBKinG(류양, 刘洋)이 계획했으나 끝내지 못한 두 번째 책 《중국 게임의 이면사》 중 한 장. 중국어 원문에서 번역: 五 天狼的COSPLAY工业化梦想

저자의 즈후(知乎) 칼럼에 2014년 10월 25일 처음 게재: https://zhuanlan.zhihu.com/p/19863755

이 번역은 2026년 8월 3일 중국어 원문과 대조해 검토했습니다. 오역, 잘못된 표기, 사실 오류를 발견하시면 이슈를 열어 주시거나 풀 리퀘스트를 보내 주세요.

장후이(蒋慧)는 1986년 3월 26일 상하이 훙커우(虹口)에서 태어났다. 전형적인 양자리로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강하며 한여름 태양처럼 뜨겁다. 아마 대다수 사람에게는 그의 다른 이름 톈랑(天狼)이 더 익숙할 것이다. 중국 코스프레 판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톈랑은 천랑성, 곧 시리우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면에서 톈랑이 운영하는 랑성 문화예술기획 유한공사(朗盛文化艺术策划有限公司)는 대단히 이름이 높다. 텐센트와 넷이즈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이 코스프레 소품 제작과 행사 실행을 맡기는 전속 회사다. 해마다 열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주년 기념 행사 같은 자리에서는 어디서나 이 회사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코스프레란 무엇인가

코스프레는 영어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를 줄여 쓴 말이다. 보통 의상, 장신구, 소품, 분장을 써서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게임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크게 번졌다.

오늘날 코스프레의 정의는 이미 대단히 넓어졌고, 분장하는 대상도 가상의 인물에서 실존 인물로, 나아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까지 넓어졌다.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스스로를 코스어(COSer)라고 부른다.

톈랑 자신도 코스어로 이 판에 들어왔고 뒤에는 진행자 일도 함께 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차이나조이(ChinaJoy) 코스프레 전국 카니발의 진행자를 맡고 있으며, 주청(九城) 시절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의 홍보 과정 전체를 함께 겪었다.

지금 톈랑의 회사는 항저우에 있다. 그는 별장 두 채를 빌려 한 채에는 코스프레 제작에 쓰는 물건과 장비를 두고, 다른 한 채는 사무실 겸 숙소로 쓴다.

그는 항저우에 자리를 잡은 것이 상하이보다 생활비가 싸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곳에 예술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스프레에는 미술 디자인이 대량으로 필요하고, 소품 제작은 조소 같은 공예와 장비에 대한 요구도 높다. 이런 것은 항저우에 있는 중국미술학원(中国美术学院)이 채워 줄 수 있다.

항저우는 비단과 온갖 원단이 많이 나는데 이것은 코스프레 의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제작에 필요한 봉제 기술은 저장이공대학(浙江理工)의 의상 전공에서 전문 인력을 찾을 수 있고, 크고 작은 장식품 수요는 저장의 발달한 소품 공방들이 뒷받침한다.

여기에 저장전매학원(浙江传媒学院)의 분장과 연기 같은 것까지 더하면, 이 모두가 코스프레 산업화에 더없이 좋은 발전 조건이 되어 준다.

최근 몇 해 톈랑과 그의 팀이 놓인 형편은 훨씬 나아졌다. 여러 해 함께 일해 온 텐센트 게임즈는 주문을 끝내는 데 충분한 시간과 창작의 여지를 주고, 비용 면에서도 크게 지원한다.

그러나 십여 년 전 톈랑은 이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부모의 이혼은 그를 몹시 화나게 했고 성격도 무척 반항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와 따로 살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일해 돈을 벌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직업소개소에 끈질기게 매달렸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소개소도 일자리를 붙여 줄 수 없었고, 결국 그를 그곳에 두고 자료 입력 일을 시켰다. 날마다 오래 타자를 쳐서 열 손가락이 다 검었다.

톈랑은 이 시기에 이미 코스프레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일과 학교를 함께 감당해야 해서 참여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이유가 좀 복잡하다고 말한다. 동질감, 성취감, 뜻이 맞는 무리를 찾는 것, 그리고 현실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2003년 사스가 터졌다. 바깥이 위험해지자 톈랑은 선생의 권유로 집에 돌아갔고, 떠돌던 생활을 끝낸 뒤에야 마침내 자기가 좋아하는 코스어가 될 수 있었다. 한 단체에도 들어갔고, 운 좋게 첫 무대부터 《겟백커스》(闪灵二人组)의 남자 주인공 코스프레를 맡았다.

그러나 코스프레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다. 초기에는 소품과 의상을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가 거의 없어서 물건을 하나하나 사서 직접 만들어야 했고, 품이 많이 들면서 값도 비쌌다. 그래서 그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코스프레 행사 진행자 노릇도 연습해 보았다. 진행자의 보수가 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우연이 겹쳐

2004년 톈랑은 차이나조이가 상하이의 학교들을 도는 코스프레 홍보 행사를 연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나서서 이 행사를 맡았다. 행사에서 잘해 낸 덕에 아오메이전자(奥美电子)의 초청을 받아 그해 차이나조이 부스의 진행자를 맡았고, 그 일로 차이나조이 주최사인 한웨이전람(汉威展览)의 책임자를 알게 되어 그때부터 차이나조이 코스프레 전국 카니발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때와 자리와 사람이 모두 맞았다

2004년 성다(盛大)의 상장은 중국 게임 회사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표지였다. 그 뒤로 주청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쥐런(巨人)의 《정투(征途)》, 스지톈청(世纪天成)의 《뤄치(洛奇, 한국명 마비노기)》, 성다의 《아이온》 등 온갖 애니메이션과 게임 제품의 홍보 수요가 밀려들었다.

톈랑은 마침 이 시대를 만났다. 그가 속한 코스프레 동아리 징즈런싱(镜之人型)도 이 회사들의 오랜 공급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가장 좋을 때는 차이나조이 1호관 전체의 코스프레 주문을 거의 다 그들이 맡았다. 이 회사는 예전에 《세인트 세이야》의 황금 성투사를 다룬 코스프레 작품 황금12궁(黄金十二宫)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대단히 이름이 높았다.

톈랑도 그 몇 해 동안 코스프레 진행에서 행사 기획과 실행까지 하게 되면서 경험과 인맥을 대량으로 쌓았고, 이것이 뒤에 자기 회사를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2008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중국 대행권이 바뀐 파동은 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줬다.

새 임금이 오면 신하도 새로 온다. 새 대행사는 기존 공급사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톈랑에게 돌아가는 일도 갈수록 줄었다. 그는 다른 업종으로 옮길 생각까지 했다.

바로 그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나온 국가의 4조 위안 투자가 톈랑을 다시 코스프레로 끌어당겼다.

알고 보니 이 4조 위안 가운데 일부가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데 쓰였고, 전국의 모터쇼 시장이 단숨에 달아올랐다. 여기에 《트랜스포머》 실사 영화 개봉까지 겹쳐, 미국의 이름난 자동차 브랜드 쉐보레가 범블비 오토봇을 만들되 전국 순회 전시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제 발로 찾아온 이 일감이 톈랑에게 다시 밥벌이가 되어 주었다.

일감은 생겼지만 톈랑은 무척 괴로웠다.

이 일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다. 다 만들어 놓은 범블비를 들고 전국을 돌기만 하면 되었다. 진행도 같고 내용도 같았으며 마음대로 더하거나 뺄 수도 없었다.

톈랑은 2010년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맡게 된 것이 바로 이렇게 지루하기 짝이 없던 상황에서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2010년 3월 텐센트 게임즈의 보비(波比)가 톈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가 그 뒤의 많은 일을 바꿨다.

보비는 새 게임을 내놓을 예정인데 코스프레 인물 18개에서 20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톈랑은 깜짝 놀랐다. 그전까지 게임 회사가 코스프레 수요를 낼 때는 보통 게임 직업에 맞춰서 냈기 때문이다. 전사, 도적, 사냥꾼, 힐러 같은 식이었고 그래 봐야 네다섯 인물이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새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네 명에서 여덟 명 정도를 만들었을 뿐이다. 텐센트의 이런 방식은 톈랑도 그전에는 정말 본 적이 없었다.

톈랑은 이 요구가 2008년 이전에 왔다면 아마 물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듣기에 너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터쇼 일이 정말 너무 지루했던 탓에 그는 이 일을 받았다.

이때부터 톈랑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2009년, 톈랑은 자기 회사를 세우기 전에 자기가 몸담은 업계를 한 번 정리하고 생각해 봤다.

그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코스어가 되어 이름을 알린 뒤에 자기에게 쏠린 관심을 돈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을이 되어 애니메이션과 게임 업체 같은 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톈랑은 코스프레 판에서 이름을 낸 사람이라면 한 해에 행사와 사진 같은 굿즈 판매로 30만에서 50만 위안 정도를 벌 수 있지만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첫 번째 길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봤고, 먼저 살아남고 나서 발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차려 두 번째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까다로운 고객에게도 변함없는 책임감

2010년, 톈랑은 팀이 먼저 살아남게 하려고 텐센트의 주문 말고도 다른 회사의 주문을 많이 받았다. 이를테면 판빙빙(范冰冰)을 위해 《완왕즈왕 3》(万王之王3)의 코스프레 소품을 만들었고, 창유(畅游)의 차이나조이 주문도 맡았다.

그러다 2011년 9월, 톈랑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뜻밖에 크게 떴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텐센트 게임즈의 주문과 행사 수요가 갈수록 많아졌고, 톈랑은 회사의 모든 힘을 여기에 쏟아붓고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홍보

처음에 톈랑은 대립하는 진영을 보여 주는 무대극으로 이 게임의 배경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때부터 자주 쓰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호드를 위하여!"라는 그 대사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대단히 성공한 기획 사례다.

그래서 2012년 9월 22일 《리그 오브 레전드》 1주년에는, 황자(皇子), 곧 자르반 4세를 맡은 코스어가 한 걸음 뗄 때마다 누군가 "데마시아"를 외치는 무대극이 나왔고, 그 뒤 "데마시아!"라는 구호가 중국에서 현상급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고 플레이어의 요구도 달라졌다.

톈랑은 게임 홍보 초기에 새 플레이어 상당수가 배경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새 게임 상당수는 배경 이야기 자체가 뒤엉킨 난장판이어서 온갖 신화 속 인물과 역사 속 인물이 뒤섞여 있었다. 대립 진영의 형식으로 만든 무대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가슴과 다리를 내세우는 연출이나 영웅 퍼레이드(刷英雄)만큼 뜨겁지 않았다.

영웅 퍼레이드란 무엇인가

수많은 코스프레 인물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세를 잡고 자기 게임 속 명대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대의 검은 곧 나의 검이다!" 하는 식이고, 무대 아래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진다.

이 점이 톈랑을 무척 괴롭혔다.

이때의 톈랑은 이미 연출, 극본, 무대미술, 특히 소품 제작 기술을 끌어올릴 만한 충분한 경험과 인력과 물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용 연마 기준까지 끌어다 썼고, 하루 열여덟 시간씩 석 달을 틀어박혀 소품에만 매달릴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 2주년 때 여러 방면에서 인정받은 미래전사(未来战士) 코스프레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해외 동종 업계에서도 축하 인사가 올 정도였다.

그러나 톈랑은 영웅을 줄줄이 내보내며 무대를 도는 표현 형식에만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때문에 한동안 벽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다행히 게임 홍보가 깊어지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가 보여 주는 경기성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영웅의 이야기와 e스포츠 선수들의 분투가 생기자 톈랑의 팀은 다시 e스포츠 요소를 녹여 넣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를테면 3주년의 한국 최강에 맞서는 마음(抗韩之心)이 그렇다. 관객은 코스프레를 통해 게임 속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되새겼다.

톈랑은 언젠가 코스프레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더 많이 공감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다들 함께 앉아 영웅의 이야기, 플레이어들 서로의 이야기, 친구들과 파티를 짜고 함께한 이야기, 어이없게 말아먹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게임이고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코스프레의 앞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톈랑은 많은 것을 생각했다. 미국에는 마블 코믹스가 있고, 그들은 여러 해에 걸쳐 다듬은 끝에 성숙한 IP(지식재산권)를 갖게 되었으며, 지금 그 IP를 들고 만화 속 인물의 실사 영화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코스프레도 이런 가상의 그릇에서 태어난 것이니, 앞으로는 거꾸로 돌아가 실사 영화의 요람이 되거나 그 일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대단히 먼 길이다.

당장 톈랑은 업계 안의 몰이해와 무질서한 경쟁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그는 이것이 몇 해 전 e스포츠 판과 좀 비슷하다고 말한다. 먼저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고 지지하지도 않으며 코스프레는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다음으로 업계에 아직 규칙이 서지 않았다. 좋은 코스프레 재목이나 팀을 키워 놓으면 다른 팀이 곧바로 돈을 들고 와서 빼 간다. 위약금도 무시하고 억지로 사람을 데려가는데 붙잡아 둘 방법이 없다. 이 판이 깨지지 않으면 누구도 마음 놓고 발전할 수 없고, 규모를 키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아마 지금은 업계 규모가 아직 작고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톈랑은 코스프레의 각 단계를 개선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이를테면 소품 제작 인력을 더 키우고, 제품의 산업 기준을 높이고, 산업 디자인, 더빙, 몰드 제작, 조명과 무대미술 디자인, 뮤지컬 같은 무대극의 연출 작업을 개선하는 것이다.

톈랑은 우리가 하는 것이 산업만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창작이라고 말한다. 산업적 돌파의 목적은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주는 데 있지 않고, 그런 수단을 통해 이야기를 더 잘 전하고 플레이어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시대다. 우리는 수많은 것이 무에서 유로 생겨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고통스러운 시대다. 우리는 아주 긴 시간의 개간과 혼란을 겪어야 한다.

톈랑의 코스프레 산업화 꿈.